한국이 더 좋은 유쾌하지만은 않은 이유

최저임금 인상에 부쳐

by 상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면 상대적으로 한국이 더 좋은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인터넷 속도였다. 동영상 하나 보기 힘들고, 페이지 하나 열기 힘든 속도에 한국이 마구 그리웠었다. 또한, 사건 사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치안 상태가 좋고 밤에 혼자 편의점을 갈 수 있는 나라이기도하다. 이외에도 신속한 공공서비스, 대중교통 환승제도, 깨끗하고 무료인 화장실 등이 있다.


이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서비스와 관련된 것들이다. 한국에서 더 좋고 뛰어났던 것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배달 서비스였다. 실제로 여행하는 동안 배달해주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또한 구매자의 입장에서 돈을 주고 물건을 사려하는데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상인, 그리고 종업원을 보면 '손님은 왕'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던 한국이 생각나곤 했다. 택배 배달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게 마냥 한국은 서비스가 좋다고 생각하다가 SNS 친구의 짧은 글을 보고 아차 싶었다. 그것은 한국이 좋다고 말하는 것들이 취약계층의 노동력 착취를 통해 얻어진 것이라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다 싶었다. 택배 기사님들의 과로와 엄청난 배달량, 손님의 갑질 횡포에 떨어야만 하는 단시간 근로자들, 정신노동이라는 말을 만들어내기까지 한 서비스업 종사자들. 과연 그들은 제대로 대접받으면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데에 내 생각이 쏠린다.


한국은 유독 노동력이 값싸게 거래된다. 브랜드화, 명품화 되지 않은 노동력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내가 겪은 나라들은 선진국일수록 노동력의 값이 비쌌다. 청소나 수리 등 우리가 기피하는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이 남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린다. 그만큼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그런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것은 직접 고치고 청소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영화나 드라마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전화기부터 찾는 한국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들도 하기 싫은 법이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기 싫은 정도의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왜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는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어느 것도 명확히는 설명이 안된다. 확실한 것은 지불하는 금액에 비해 많은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올랐다. 더불어 사용자들의 부담도 늘어났다. 일부 사장님들은 차라리 폐업을 하고 알바를 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을 한다. 그 사장님의 말이 맞다. 겨우 시간당 7530원도 못 줄 정도의 사업이라면 그냥 접고 알바를 하시라 말해주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사업은 위험을 감수하며 일반 노동자 이상의 수익을 내는 종류의 직업이다. 사업주의 수입이 알바를 해서 벌 수 있는 정도의 수입이라면 애초에 접어야 하는 게 맞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유지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최저임금의 인상은 소비자들의 부담도 가중시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의 인상을 통해 내가, 우리가 누리는 서비스들이 자본을 통해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얻는 결과가 아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얻게 되는 거래의 결과라는 사실에 가까워진다면 반길만한 일이 아닐까. 그리하여 싸고 좋은 서비스라는 장점은 사라지겠지만, 건강한 노동시장에 대해 한국이 더 좋다고 자랑할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 또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가고 다시 돌아오더라도 알바만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일을 구할 때마다 일자리 얻기가 힘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