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여행
음악의 '음'자도 잘 모르는 사람이 음악을 찾아 산티아고를 찾아간 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결정이었다. 음악을 찾아 여러 군데 찾아다녔지만 역시 음악이 나에게 감동 같은 것을 선물해주지는 못했다. 다만 낮이나 밤에 돌아다니며 보고, 만났던 사람들이 더욱 많이 기억에 남았다.
쿠바의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산티아고 역시 혼자 돌아다니는 낯선 이방인을 가만두지 않았다. 산티아고는 특히 더했다. 까사에서 점심을 먹고 고작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세스페데스 공원을 가는 길에서부터 시작됐다.
한 남자가 좀 전에 큰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것을 봤다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산티아고에서 둘러봐야 할 것들을 하나둘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설명이 길어지며 내가 지루한 기색을 보이자 여자 친구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전화를 걸더니 한 여자가 나왔다. 여자는 몸을 내빼지만 남자는 여자 친구가 발레리나라며 공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때부터 느낌이 싸했다. 애써 대화를 피하며 그들에게서 빠져나왔다.
공원 벤치에 앉아 어디로 갈까 고민하고 있자니 또 한 중년이 다가온다. 가볍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본인이 DJ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잠시 후에 공연을 하는데 녹화해줄 사람이 없다며 내게 녹화를 부탁했다. 그럴까? 언제 어디서 하니? 세부적인 내용을 물어보는데 공원을 순찰하던 경찰이 그 남자에게 다가와 옆으로 데리고 갔다. 그들의 대화가 길어졌다. 남자의 공연이라는 것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경찰과의 대화가 길어지자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잠시 번화가를 떠나 바닷가 쪽으로 향했다. 미치도록 뜨거운 날씨에 사람이 별로 없는데 바닷 쪽 난간에서 뭔가를 하는 소년들이 있어 가봤다.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게를. 신기해서 한참 지켜봤다. 줄에 묶은 고깃덩어리로 게를 유혹하고 작살로 내려쳐 잡는 것이다. 그렇게 잡히기는 하나 궁금했는데 웬걸, 작은 걸 이미 몇 마리 잡았고, 순간 꽤 큰 놈 하나도 잡았다. 소년들이 내게 통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작살을 건네주며 한번 잡아보라고 하는데 발 한번 잘못 디뎠다가는 깨끗하지 않은 바닷물에 빠질 것 같아 사양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노을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곳 사람들도 뜨거운 햇빛은 피하나 보다. 그 와중에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가 눈에 띄었다. 뭔가 불만인 듯 칭얼대는 아이가 귀여웠고, 이내 지친 듯 엄마한테 기대 저녁의 선선한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꽤 많은 가족들이 저녁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커플들도 있었지만 그 비중은 크지 않았다. 가족 위주였다.
까사로 돌아오는 길에 알렉스, 조르디를 만났다. (이름까지 기억하네). 아바나에서 날 봤다며 반가워하며 따라왔다. 아바나에서 보고 차로 15시간 걸리는 산티아고에서 나를 만난다고? 의심스러워서 아바나에서 날 본 경위를 말해보라 하니 맞는 것 같다. 일주일 전쯤에 플로리디따에서 다른 한국인들과, 남자와 여자가 섞인 다른 한국인들과 칵테일을 마시다가 금방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설명이 꽤 디테일하고 정확하다. 진짠가보다. 아바나에서 공연하고, 산티아고로 돌아와 다시 공연을 하는데 내일 공연에 나를 초대하겠단다. 매니저에게 말해 입장료 및 술을 공짜로 제공해 줄 테니 오늘 밤 술 한잔을 사달라고 했다. 결국 목적은 그것이었구나. 설사 아바나에서 나를 본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들의 말에 사기의 냄새가 술술 났다. 근데 뭐 술 한잔쯤이야. 까사로 들어간다 해도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심심할 것이 뻔했기에 그들을 데리고 바에 들어갔다. 알렉스 한잔, 나 한잔, 조르디 한잔. 합계 12쿡. 2쿡 아끼려고 2킬로미터가 넘는 터미널에서 까사까지 낑낑대며 걸어왔는데 그것에 비하면 큰돈이다. 하지만 나도 어지간히 심심했나 보다. 모히또 한 잔씩을 앞에 두고 꽤 많은 얘기가 오고 갔다. 그리고는 메모지에 내일 있을 공연의 장소와 시간, 알렉스의 이름과 사인을 받았다. 그 메모를 내면 그냥 들어올 수 있다고. 99%는 믿지 않았다. 그냥 그들과 얘기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이밖에도 나열하지 않은 만남들이 많았다. 푹 삭힌 고등어 같은 생선을 사 먹고 역겨워하는 나를 보며 웃던 노점상, 우연히 찾은 계란빵이 그나마 산티아고에서 먹을 괜찮은 음식이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갔더니 어느새 나에게 가게를 맞겨버리는 주인, 혁명 광장의 무료 가이드, 세스페데스 광장에서의 오케스트라.
음악을 찾아 떠난 산티아고에서는 예상치 못한 만남들이 나의 산티아고를 풍부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