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렬하는 태양빛이 잦아드려 할 때쯤, 시엔푸에고의 중심 호세마르띠 공원으로 나갔다. 역사적인 건물과 관공서가 모여있는 그곳에 잠시 앉아 그 의미를 되새겨볼까 하던 찰나 가브리엘 할아버지를 만났다. 아무튼 쿠바는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할아버지께서 영어를 할 줄 아셔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이름 가브리엘. 74년 평생을 시엔푸에고에서만 사셨다. 네 아들을 둔 할아버지는 40년 가까이 까미옹을 운전하다 은퇴한 지 5년 정도 되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지금 연금 138 모네다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 (138 모네다=6~7 CUC=6~7$=7~8천 원) 아들이 넷이나 있긴 하지만 할아버지의 생활비는 연금이 전부라 하셨다.
항상 궁금했었던 쿠바혁명에 대해 물어보니 반기셨다. 그 이전의 삶은 정말 힘들었다고. 혁명 이후에는 그래도 조금은 더 살만해졌다고 하셨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만 원이 채 안 되는 연금을 수령하는 지금이 더 낫다면 혁명 이전에는 어떠했을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길게 뻗은 말레꽁을 따라 시엔푸에고의 끝을 향해 걸어본다. 그곳에서 보는 노을이 아름답다는 소문에 따라 움직인 발걸음이다. 그렇게 걷던 길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만났다.
요트.
그것은 아직 나에게 부富의 상징이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25 CUC, 많으면 30 CUC정도로 한 달의 삶을 유지하는데 급급했고, 거리에는 100년이 넘은 자동차들이 아무렇지 않게 굴러다닌다. 물가는 비싸지만 그 비싼 물가 때문에 일상을 살아가는데 더욱 힘들어하던 쿠바인들의 모습 사이에서 갑자기 아무렇게나 요트가 나타났다.
요트는 배다. 배의 본질은 물 위에서의 교통수단이다. 사람이나 물자를 실어 나르기도 하고 물속에서 식량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쓰인다. 그런 측면에서 요트는 배의 본질을 벗어난 물건이다. 직접적으로는 생산적인 활동을 위한 것이 아닌 유희와 여가, 감정의 소비 및 충족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쿠바에서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물건을 만나버린 당혹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쿠바는 공산국가 아닌가. 특별한 누구만을 위한 물건인지 부두로 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쩌면 사유지인 듯 굳게 쳐진 울타리가 나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가뜩이나 7천 원의 생활비로 한 달을 나는 할아버지를 만난 바로 다음이다. 아무렇지 않게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쿠바, 그러면서도 공산주의 혁명이었던 쿠바혁명을 반기고 기리는 쿠바. 어떤 것이 쿠바의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