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같은 아바나로

by 상현

아바나를 떠난 지 열흘, 아바나로 되돌아가는 비아술 표를 예매하고는 설레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바나로 돌아간다.'

그 기분은 흡사 오랜 여행 뒤에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남부지방 여행이 나쁘지 않았지만 아바나로 돌아가면 왠지 더 재밌을 것 같고 더 편안할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처음 쿠바에 도착했을 때 까사에서 만난 여행자들이 일주일, 열흘의 일정 동안 다른 곳은 가지도 않고 아바나에만 머물던 것이 뒤늦게야 가슴으로 이해됐다. 그럼에도 이 느낌과 기분은 생경했다. 아바나로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되는 느낌과 흥분에 왜 그런지 계속 고민해봤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론으로 다가온 것은 '까사'였다.


'호아끼나 까사'. 쿠바 까사의 대부분이 주인의 이름을 딴 것처럼 이곳 역시 주인아주머니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 주인공인 호아끼나 아줌마는, 혹은 할머니는 매우 호탕한 성격에 관심을 두는 듯 안 두는 듯 츤데레의 모습이 보였고, 대부분은 여행자의 시선에서 빠져 있었다. 강한 성격 탓에 아주머니에 대한 호불호도 있지만 까사에서 그렇게 자주 볼 수 있는 인물 타입은 아니다.


내가 머문 까사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은 했고, 무엇이 왜 좋아서 집에 가는 느낌이 들었을까?


여행하는 동안 대부분의 숙박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이루어졌다. 가끔 좋은 곳도 있었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의 위치는 역시 '게스트'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바나에서 머물렀던 호아끼나 까사는 마치 집 같은 느낌이었고 내가 주인인 것은 아닐까라는 착각을 심어주기도 했다. 진짜 주인인 호아끼나 아줌마는 자주 볼 수 없고 일을 도와주는 아들과 며느리만 보인다. 그것도 가끔. 그러다 보니 새로운 손님이 오면 다른 손님이 까사 안내를 해준다. 빈 방, 빈 침대가 있는지 확인하고 짐 푸는 것을 도와주고 화장실과 주방을 설명해준다. 애초에 처음 방문할 때부터 문을 열어주는 것이 다른 손님이다. 손님에게 무례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얼굴과 자연스럽게 얘기를 하게 만들어주고 잠깐이라도 더 있었던 사람으로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뿌듯함이 있다. 나 또한 먼저 온 사람으로부터 안내를 받았고 그 안내를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것뿐이지만, 까사 안의 모든 사람들과 연결되고 적어도 내 지분이 조금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커다란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안정감 덕분인지 거실도 좋았다. 커다란 창문, 그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과 그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있기에도 좋았다. 새롭게 오는 사람이 있으면 거실에서 머물다 안내를 해주고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잘 가라고 인사를 하고, 구경 갔다 오는 사람이 있으면 무엇을 봤으며 어땠는지 물어보다 보면 거실에만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고 아바나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서로 다른 나라를, 다른 도시를 둘러보고 온 사람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20160515_154055.jpg 까사에서 바라본 풍경1
20160515_154100.jpg 까사에서 바라본 풍경2
20160515_155603.jpg 까사의 거실

게스트하우스에서 겪던 진짜 게스트 중의 소외된 게스트 같은 느낌, 공용공간에 있을 줄을 모르고 늘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던 답답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지난 게스트하우스들은 왜 불편하고 답답했을까. 영어를 하긴 하지만 잘하지는 못하는 동양인이란 게 이유 중의 하나다. 그리고 혼자라는 사실이 있지도 않은 자신감을 빼앗아갔다. 신기하게도 여기는 혼자 온 사람들밖에 없다. 그래서 세력의 힘을 등에 업은 사람들이 없다. 그리고 말이 잘 통하는 한국인이 많다는 것도 좋았다. 내가 머무는 동안 일본 사람들도 반 정도는 되었지만 대세에는 영향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편안함을 즐기다가 밤에는 함께 술을 마시며 쿠바의 밤을 지새웠다.

05190015.JPG 韓日합작 술자리

아침에 늦게 일어나더라도 할아버지가 아침을 만들어주신다. 가끔 너무 늦게 일어나면 미안해서 사양하기도 하지만, 간단한 그 한 끼가 주는 든든함을 꽤 컸다.(그만큼 쿠바 음식은 전체적으로 맛이 없었고 조금 맛있게 먹으려면 미국 못지않은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어차피 다 비싸면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싼 음식이 있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비싼 음식은 더욱 비싼 음식이 된다.)


그런 곳으로 되돌아간다. 정말 집에 가는 느낌이다. 단 하나 걱정이 있다면 과연 나 한 명 누울 수 있는 침대가 비어있을까 하는 걱정뿐이다. 그러는 사이 택시는 까사 앞에 도착했다. 나는 벨을 누르고 2층에서 던져주는 열쇠를 받아 문을 열었다. 내게 열쇠를 던져 준 사람은 또 어떤 여행자일까. 들어가서 얘기를 나눠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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