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까르따헤나
까르따헤나는 오묘하게 정적이며 묘한 분위기가 있는 도시다. 스페인 풍의 건물들이 있다고 하나 스페인을 가보지 않아 무엇이 스페인 느낌인지 알 수는 없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이곳. 건물들이 풍기는 역사적인 아우라가 있지만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이전에 예뻐 보였다. 깨끗하게 잘 정돈되고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모습들은 절로 카메라를 들게 할 정도다. 프레임 안에 사람이 있어도 상관없다. 이 건물들은 그 아래에서 여유롭게 걷고 있는 사람마저 너그럽게 포용한다.
발걸음을 보카그란데 쪽으로 옮겨본다. 긴 제방을 따라 인위적인 듯 아닌 듯 조성된 해변을 끼고 걷다보면 보카그란데의 중심이 나온다. 신시가지인 듯 높은 건물들이 즐비해 있는 곳. 그곳 바로 앞에는 또 하나의 해변이 있다. 고층빌딩 바로 앞에 있는 해수욕장. 얼핏 해운대가 떠올랐지만 해운대의 그것보다 훨씬 아담하고 훨씬 가까웠다. 쁠라야블랑카를 가려다 방법을 몰라 못 간 아쉬움을 이곳에서 달래본다.
천막 하나를 빌려 자리를 잡고 바닷물에 들락날락 하기를 여러번. 물놀이는 필연적으로 출출함을 가져온다. 따뜻한 햇볕 아래 노곤함을 놓치고 싶지 않을 때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파는 사람들이 천막을 들른다. 과일을 사먹고 치킨 볶음밥을 사먹었다. 해변가에 잡상인은 때론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귀찮음과 게으름을 바탕으로 안고 있는 우리에겐 그만한 서비스도 없었다.
날이 저물고 공기가 선선해지면서 성벽으로 자리를 옮겼다. 적절한 바람과 파도 소리. 은은한 노란색 조명들이 어둠의 한 부분을 채우려 애쓰는 공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넓은 곳이기에 우리들만의 사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또래의 이성이랑 온다면 연인이 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직 만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지만 각자의 고민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고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열린 대화의 장이 되었다. 까르따헤나의 분위기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 대화의 흐름이 깨어질까 맥주캔이 비어갈 때 쯤 되면 혹시 더 필요하지 않은지 물어봐주는 아저씨는 덤이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 이름도 몰랐던 까르따헤나라는 곳은 준비 안 된 여행자마자 포근하게 품어주는 여유와 배려와 쉼이 있는 따뜻한 도시였다.
까르따헤나가 주는 현재적 느낌과는 달리 역사적으로는 침입과 방어가 격렬하게 공존했던 치열한 곳이었음을 알게 되면 또 다른 상념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