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블랙홀, 나의 블랙홀은 어디에

콜롬비아 메데진

by 상현

Medellin. 메데인 같지만 메데진이기도 하고 메데신이기도 한 도시에 도착했다. 나는 이곳을 메데진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모두가 메데진이라 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메데진에 가장 오래 있었던 사람이 다른 모두에게 그 발음을 전수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메데진에 이미 한 달 정도 체류했으며 한 달 정도는 더 머무를 예정이며 언제 떠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메데진이 너무나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서 ‘여행자의 블랙홀‘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06120047.JPG 메데진 야경. 잔뜩 기대했지만 보고타의 그것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여행자의 블랙홀

여행자는 일반적으로 일정한 주거 없이 이곳저곳 잠자리를 옮겨 다니기 마련이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계속 이동하는 것은 여행자의 숙명이다. 그런데 그런 여행자의 숙명을 거부하게끔 하는 곳이 있단다. 모든 것이 너무 마음에 들어 떠나야지 떠나야지 마음먹으면서도 차마 떠날 수 없는 곳, 여행자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강한 중력으로 그들을 끌어당기는 곳, 바로 여행자의 블랙홀이다.


그에게 있어 여행자의 블랙홀은 바로 메데진이다. 메데진은 어떻게 그에게 블랙홀이 되었을까.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는 날씨였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4계절 봄 날씨의 메데진은 특별한 일 없이 그냥 걸어 다니기만 해도 맑은 날씨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과연 메데진의 날씨는 잠깐씩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맑고 화창한, 저절로 산책을 부르는 날씨였다.

06150206.JPG 푸른 하늘. 미세 먼지 가득한 한국에서 머물다 보니 이런 하늘만큼은 다시 봐도 부럽다.

날씨가 전부는 아니었다. 콜롬비아 제2의 도시답게 인프라가 충분했다. 많은 쇼핑몰과 문화공간, 밤문화, 편리한 교통(대부분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를 이용하니 편할 수밖에), 맛있는 음식, 가끔 한국을 느낄 수 있는 한식당, 그리고 남미 최고의 미녀(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했다). 듣다 보면 그의 메데진 예찬은 끝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데진은 나에게 보통의 도시였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시를 즐기는 타입은 아니다. 그가 얘기한 것들 중 날씨를 제외한 어떤 것도 내게 크게 다가오는 것이 없었다. 이런 얘기를 하니 그는 내가 남미 여행의 시작에 있기 때문일 것이라 말했다. 남쪽에서 여행을 시작해 갖은 고생을 하다 보면 메데진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을 거라고. 반의반 정도는 동의했다. 전후 사정이야 어떻든 마음에 꼭 드는 도시를 만난 그는 행복해 보였다.


여행자의 블랙홀. 그에게는 메데진이었다. 나를 붙들어둘 블랙홀은 어디일까? 만날 수 있을까? 남아 있는 여행에 작은 기대를 해본다.


06150212.JPG EAFIT 대학교. 대학교를 둘러본 후 일행들은 역시 미녀가 많다며 감탄했지만 나는...
06150220.JPG 쇼핑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 쇼핑몰은 피곤한 공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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