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뻬뇰에서의 생각들

콜롬비아 과타페

by 상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만 흡수하면 될 터인데 가끔은 그 단순한 것을 하지 못하고 머리라는 녀석이 나도 있다는 듯 존재감을 뽐낼 때가 있다.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 머리이면서 어떻게든 있어 보이려 하는 것인지 남들 그냥 즐길 때 빠져드는 생각으로 인해 혼자 심각해지곤 한다. 엘뻬뇰에서 그랬다.


메데진에서 차로 한 시간 반 거리. 바로 옆에 있는 과타페 마을과 더불어 세트로 구경하게 되는 엘뻬뇰이다. 뻬뇰(peñol)은 암벽, 암산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즉, 엘뻬뇰은 다른 설명 필요 없이 그냥 바위산인 것이다. 단 하나 설명을 추가하자면 바위산에 바위가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바위 하나가 그냥 산이다.


바위 하나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호주의 울룰루다. 둘레만도 8.8킬로미터나 돼서 괜히 뙤약볕 속에 한 바퀴를 돌았다가 엄청 후회했을 정도의 크기다. 울룰루에서의 기억은 그 자체로서의 신기함과 주변의 경치로 인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울룰루와 비교해 엘뻬뇰은 어떤 모습일까.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도착한 엘뻬뇰. 규모로만 보면 울룰루와 비교해 초라할 정도였다. 하지만 여전히 컸고 무엇보다 우뚝 솟아오른 바위산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어디선가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찌어찌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지진을 비롯한 자연재해가 빈번한 이곳에서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궁금증은 꽤 오래갔지만 결국 완전히 해소되지는 못했다.

06140167.JPG 그냥 큰 돌 하나

울룰루와 달리 엘뻬뇰은 정상까지 올라가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700여 개에 달하는 계단을 가쁜 숨과 함께 올라가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더 시원한 과타페 호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작은 호수인가 했지만 사이사이 이어져 전체로는 큰 호수이며 중간중간 섬처럼 이어진 육지들과 어우러진 모습은 계란판 같기도 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인공호수라는 것.

06140109.JPG 과타페 호수

자연의 신비함을 보여주는 엘뻬뇰 옆에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과타페 호수가 있다.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미미하다고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무시할 만큼 작은 존재는 아니라 생각해봤다. 그 예를 보여주는 듯한 파블로 에스코바르. 그가 이 인공호수를 만들었다고 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 콜롬비아의 전설적인 마약상이다. 마약거래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었던 그는 돈이 썩어나게 많아서 콜롬비아의 재정을 책임지기도 하고 메데진의 수많은 인프라 건설에도 지원했다. 그리고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인지 지역주민과 빈민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빈민의 로빈후드라는 별명까지도 생겼고 지금까지도 추종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엘 뻬뇰 위에서 멋있는 호수를 바라볼 수도 있게 됐다.


셀 수 없이 많은 범죄행위와 빈민들의 삶에 기여한 행위. 한 단어로 평가하기 힘든 그의 행적이다. 엘뻬뇰 꼭대기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계속 이런 생각만 났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 ‘목적에 따른 수단의 정당화’. 이런 것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어떻게 내려야 하는 것인가.


단순히 신기하게 생긴 돌 하나를 보러 왔을 뿐인데 생각이 복잡해진다. 자연의 신비함, 그리고 인간의 힘, 그 인간의 힘에 대한 가치 판단. 계속 생각해 봐도 결론이 나지 않는 질문에 잠시 어지러워진 머리는 옆에 있는 과타페 마을을 둘러보며 진정시켰다.

06140183.JPG 과타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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