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 에콰도르
육로를 통하여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그동안 비행기로, 배로 국경을 넘었었던 내게는 육로로 국경을 통과하는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로망이 있었다. 그동안 그려본 육로 위의 국경은 넓은 초원 위에 초라한 건물이 출입국 심사소로 있고 그 모습과는 대비되는 위압감을 가진 철조망이 있으며 그 철조망을 총을 든 국경수비대가 지키고 있고 근처 덤불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한 무리의 군대가 잠복해 있는 것이다. 삼엄한 경계 속에 출입국 심사는 언제 끝날 줄 모르며 그 와중에 통행자의 짐을 노리기 위한 좀도둑들이 산재해 있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그야말로 겪지 않으면 좋을 그런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두 발로 국경을 건너보고 싶었다. 콜롬비아에서 에콰도르로 육로를 통해 국경을 넘어보고자 시도한 건 내 상상 속의 국경과 실제의 그것을 비교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H와 T가 함께한 육로로 국경 넘기 도전 팀은 메데진에서 이피알레스로 가는 24시간짜리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실제로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고민과 걱정의 시간이 길었다. 보고타에서부터 이미 들은 소문에는 에콰도르로 가는 국경이 닫혀 있다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만나는 사람마다 국경의 안부를 물었으나 명확한 답변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까르따헤나로 갔고 다시 메데진으로 갔으며 결국 메데진을 떠나야 할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다시 보고타로 가서 비행기로 키토까지 가는 것은 비싸고 마음 내키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100퍼센트의 방법이었고 버스로 이피알레스로 가서 다시 에콰도르의 툴칸까지 가는 것은 저렴한 대신 장거리 버스의 압박이 있고 무엇보다 에콰도르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도박적인 수였다. 그 와중에 T는 파나마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포기하고 이 여행에 함께 하기로 해 걱정의 크기가 커졌다.
결국 메데진-보고타-키토 비행편의 티켓값의 압박과 잘 맞지 않는 환승 시간편을 핑계로 이피알레스로 가는 방법을 택하고 말았다.
잔뜩 중무장한 음악과 동영상에도 불구하고 24시간은 길었다. 국경의 개폐 여부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 시간은 더 길게 느껴졌다. 메데진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한 버스는 다음날 아침 7시 30분, 운 좋게도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한산한 터미널의 모습에 불안함을 느끼며 나는 안내소로 가 국경의 개폐 여부부터 확인했다.
다행이다.
다시 메데진으로, 24시간의 여정을, 그리고 비행기를 선택하지 않아도 됐다. 국경은 아주 잘 열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피알레스를 통해 국경을 넘는 모든 여행자가 구경한다는 라스라하스 성당을 구경했다. 언덕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라스라하스 성당의 모습은 귀한 구경거리였지만 잠시 후 건너게 될 국경에 대한 기대감을 넘지는 못했다. 조금씩 떨어지는 비에 서둘러 택시를 타고 이피알레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미니버스를 타고 드디어 국경 앞으로.
터미널과 달리 국경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두리번거리다 출국심사를 받는 것으로 보이는 줄 뒤에 섰다. 기다리고 기다려 내 차례. 그동안 느껴왔던 걱정과 불안감, 그리고 출입국 심사에 대한 무서운 상상과는 달리 간단하게 끝났다.
이제 두 발로 에콰도르를 향해 걸어갈 일이 남았다. 저 앞에 에콰도르임을 알리는 큰 표지판이 나를 환영하고 있었다. 상상과는 많이 달랐지만 설렘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특별히 경계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그냥 일반 도로라고 착각할 정도로 국경은 자유롭게 열려 있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다리를 건너다 결국엔 카메라를 꺼내고 말았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콜롬비아와 에콰도르를 가르는 국경 앞에 서 있음을 잔뜩 상기된 모습으로 사진에 남겼다. 그리고 정말 평화롭게 에콰도르 땅을 밟았다. 입국심사마저 간단하게 끝났다.
드디어,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앞으로 몇 번 더 맞이하는 이 상황은 더 이상 특별할 것이 없는 일이 되었지만 이 순간만은 내 여행 역사의 특이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