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_바뇨스
하늘을 무대로 놀아보고 싶었다. 물은 젖는 게 싫고 땅은 이미 지겹도록 밟고 있다. 남은 것은 하늘이고 그 공간 속에서 또 다른 느낌을 받아보고 싶었다. 번지점프, 스카이다이빙, 패러글라이딩 등등. 이곳 바뇨스에 와서 그 첫걸음을, 아니 첫 날갯짓을 시작하게 되었다.
바뇨스에 도착하자마자 살펴본 투어맵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번지점프였다. 일행의 눈치를 잠시 살폈지만 오래 고민하지 않고 예약해버렸다. 번지점프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15달러라는 매력적인 가격을 뿌리칠 수 없었다.
예약 당일 아침, 도착했을 때부터 내리던 비는 계속 그치지도 않고 꾸준히 내리고 있었다. 대충 우의를 둘러메고 약속 장소로 갔다. 픽업장소가 아닌 점프를 뛰어야 하는 장소로 알고 있는데 아무도 없다. 시간이 조금 일렀기에 아무도 없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아무 것도 없다. 이 장소에서 번지점프를 한다는 것을 추측할만한 그 어떤 단서도 없다. 그냥 다리 하나만 있을 뿐. 설마 그냥 줄 매달고 다리에서 뛰는 건 아니겠지. 못된 상상과 함께 시간이 지나지만 상황에는 변화가 없어 뭔가 잘못됐다 싶어 자리를 정리하려 했다. 그 순간 차 두 대가 와서 멈춘다. 그들인가 보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트렁크에서 이것저것 꺼내더니 그제야 다리에 장비들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불안했다. 처음 하는 번지점프에 대한 불안함이 아닌 장비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함이었다. 사람들을 기다리며 농담처럼 했던 말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이걸 뛰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낯선 곳에서 처음 번지점프를 하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비가 계속 와서 계곡물의 기세도 엄청난데 자칫 시체도 못 찾겠구나, 이번에 안 하면 또 언제 기회를 가질 수 있지? 그래도 그냥 무시하기엔 아쉬운데. 이런 저런 생각이 깊어지는 사이 그들은 어느새 내 몸에 장비를 착용시키고 있었다.
이젠 늦었다. 돌이킬 수 없다. 일행들에게 ‘살아 돌아올게’라는 말을 남기며 점프대 위에 섰다. 그 순간 장비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당장 발밑에 보이는 시뻘건 흙탕물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그리고 귀에 들렸다. “Five, Four, Three, Two, One, Jump!” 두 다리에 잔뜩 힘을 주었지만 나는 그대로 있었다. 뛰지 못했다. 어색한 웃음이 오고가는 사이 두 번째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그리고 역시 또 뛰지 못했다. 수많은 예능프로그램, 점프대 위에서 머뭇대던 많은 연예인들이 떠올랐고 그제야 그들이 이해됐다.
그렇다고 마냥 거기 서있을 순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걸어내려오긴 또 싫었다. 차분히 숨을 고르고 카운트다운은 내가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잠시 후 다시 “Five, Four, Three, Two, One, Jump!”
뛰었다.
시선이 마구 흔들린다.
강물이 점점 눈앞으로 다가온다.
순간 누군가 강하게 나를 낚아챘고 턱을 강타했다. 자유낙하의 시간이 끝났다. 나는 다리 아래에 매달려 애처로이 진자운동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내 턱을 강하게 친 것도 줄이었다.
그때 알았다. 이 줄에는 탄성이 전혀 없다. 애처로운 진자운동만이 줄이 다하는 순간의 충격을 완화시켜줄 뿐이었다. 다리 위를 바라보니 사람들이 손으로 번지 줄을 늘이고 있었다. 두발이 땅에 닿을 때까지 안심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리고 끝났다. 두 발로 원래 위치까지 걸어오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시 만난 동행들을 보고 “I’m survived.”를 외치며 그제야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번지점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허술해 보이는 장비 속에서 뛰니 더욱 그랬다. 나중에 내가 뛰던 순간의 동영상을 보니 웃음이 한번 더 나왔다. 나는 뛴 적이 없었다. 그저 스르륵 쓰러졌을 뿐. 그래도 무사히 끝냈음에 안도하며 다음엔 좀 더 안전해 보이는 곳에서 시도하자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