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 리마
바뇨스에서 8시간 걸려 쿠엥카로, 하룻밤 자고 다시 12시간 버스를 타고 치클라요로, 다시 12시간 버스를 타고 리마에 도착했다. 바뇨스에서 리마까지 오는 데 세 번의 밤이 필요했다. 그 중 두 번은 버스에서 밤을 보냈다. 3일이나 걸려 급히 리마까지 오게 된 것은 T의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T는 리마에 도착하고 나서 이틀 후에 멕시코로 떠난다.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리마에 머물렀던 그는 남겨두었던 짐을 모두 챙겨 남미를 떠난다. 별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T가 한 달 간 머물렀던 민박집에 같이 머물렀다. 한인민박이다. 그곳에서 T는 매니저인 듯 아닌 듯 살았다. 오래 머물다 보니 자연스레 매니저 역할을 하게 된 것 같다.
리마에서는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그저 H,T와 함께 많은 얘기를 나누며 함께한 여행을 정리했다. 사이사이 카지노를 가기도 하고 마트를 가거나 몇군데 구경도 하긴 했다. T와 아쉬운 작별을 한 이후 H와 나는 한인민박의 가격이 조금은 부담스러워 조금 더 싸고 조금 더 중심지에 가까운 곳으로 숙소를 옮겼다. T가 없이 둘이서 만들어 먹는 저녁은 종류도 그렇고 맛도 조금 모자라서 T의 빈자리를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동안 옆에서 본 것이 있으니 흉내는 내볼 수 있겠지 생각하며 한인마트에서 여러 가지 재료들을 샀다.
H가 리마에 머무르고 있는 지인을 만나러 나가고 나 혼자 남았다. 나는 리마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혼자 다닐 수밖에 없다. 한번 들렀던 사랑의 공원에 야경을 찍어보고자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여기저기 키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약간 불편했지만 뭐 나름 로맨틱한 장소였고 공원을 조금 벗어나니 해변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웠다. 외로웠지만 아름다웠다.
T를 보낸 아쉬움을 채우지 못해 방황하다 이내 리마를 뜨기로 했다. 특별히 보거나 체험할 것이 없이 헛헛한 마음을 계속 유지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와라즈도 가보고 싶었지만 이미 8시간 거리만큼 더 남쪽으로 내려왔다. 다시 올라갔다 내려오는 게 내키지 않아 이카로 간다. 이카는 가깝다. 버스로 5시간 밖에 안 걸린다. 이때부터 타기 시작한 크루즈델수르. 남미여행 중 타본 버스 중에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