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_와카치나 사막
사막은 아름답다.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순백의 모래도화지 위에 찬란한 태양빛이 쏟아지면 백(白)과 백(白)이 만나 그리는, 형태 없는 그림이 눈부시게 시각을 자극한다. 그러다 해가 기울어가면 붉은 노을과 모래언덕 너머로 지는 그림자가 화려하면서도 서글픈 노래를 부른다. 밤이 되면 완전한 흑(黑) 속에서 낮에 반짝이던 것들이 하늘로 올라간다.
나에게 사막에 대한 이미지는 그런 것이었다. 광활하면서도 반짝이고, 거대하면서도 슬프고, 한없이 어두우면서도 밝은 것이다.
처음 사막을 만난 것은 인도에서다. 인도 서북부의 작은 도시 비카네르에서 낙타를 타고 8시간을 가서 만난 타르 사막은, 그러나 내 이미지 속의 사막이 아니었다. 최근에 비가 자주 내려서인지 어디든 작은 식물들이 자라 있었다. 사막이라기보다는 갓 묘목을 심기 시작한 과수원 같았다.
사막 여행에 대한 아쉬운 추억을 잊고 살아오던 내게 진짜 사막이 불쑥 찾아왔다. 페루 와카치나 사막. 남미에 사막이 있다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이동하다 얻어걸린 경우다. 리마에서 쿠스코로 가야 하는데 장거리 버스가 익숙해졌다 해도 24시간은 여전히 너무 긴 시간이라 잠시 쉴 곳으로 정한 게 이카, 보다 정확히는 와카치나다. 사실 페루에 왔다면 모르고 지나가기엔 너무 힘든 장소이기도 하다.
와카치나 사막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은 버기카 투어다. 사막 위를 신나게 달리는 4륜차 안에서 모래 섞인 바람을 맞아보기도 하고, 빠른 속도로 모래 언덕의 정상을 지날 때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언덕에서는 샌드보딩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사막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샌드보딩을 하느라 근처에 모여 있던 버기카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시야 안에서 한두 대 정도만 보일 뿐이다. 차에서 내려 적당한 높이의 모래언덕 정상에 흩어져 앉는다. 푸르기만 했던 하늘의 색깔이 변하고 있다. 노을이다.
모래 위를 달리던 버기카의 엔진 소리도, 샌드보드가 모래 위를 달리며 내는 소리도, 이 모든 것들을 즐기는 사람들의 소리도 없다. 사위가 조용한 가운데 태양이 천천히 지평선을 향해 다가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그 소리는 시각으로 환원되어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것이 사막의 노을이다. 장엄하고 거대하고 우아하고 슬픈 이 장면을 부족한 내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붉음이 검정에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할 무렵, 안전한 귀가를 위해 마을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이러한 노을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와카치나를 떠나기 전 사막을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에 마을을 감싸고 있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올라 길 같은 게 만들어져 있지만 쉽지 않았다. 몇 걸음 걸을 때마다 신발에 가득 찬 모래를 털어내야 했다. 맨발로 올라가기엔 햇볕에 달궈진 모래가 너무 뜨거웠다. 금방 오를 것 같았던 그 언덕은 그러나 30분이나 소요되었다. 그런 나에게 보답이나 하듯 눈부신 사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깨끗하고 평화스러워 보이는 모습. 비록 그 안에 삶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마음이겠지만, 하루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에겐 기억에 남을 아름다움이다. 그 안에 살포시 자리 잡은 오아시스와 이를 둘러싼 작은 마을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었다.
찌는 낮과 추운 저녁, 옷 속을 파고드는 모래와 거친 바람 등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실 낭만을 뺀다면 사막은 힘든 곳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 없다고 여겨지는 ─ 사막의 아름다움은 잃어버린 낭만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Adios, Huaca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