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_쿠스코
마추픽추를 보지 못하는 줄 알았다. 쿠스코에 오기 전까지는. 페루에 오기 전부터 페루레일이나 잉카트레일이 이미 매진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이드북을 보며 다른 방법은 없을까 찾아봤지만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은 포기하고 반은 일말의 기대를 가지며 쿠소코까지 흘러들어왔다.
그런데
‘마추픽추 투어’. 너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어느 여행사를 가더라도 마추픽추를 취급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뜻밖이었다. 페루레일이나 잉카트레일은 마추픽추에 가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였을 뿐이다. 편리함과 트레킹이라는 이유 등으로 인기가 많아 얼리버드 급의 예약이 필요했다. 미리 준비하지 않은 나는 나머지 방법 중에 1박2일 버스투어를 신청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일 싸다. 더구나 숙박, 3끼의 식사, 입장료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가격은 75달러. 페루레일의 기차 요금이 100달러, 혹은 그 이상 가는 거에 비하면 공짜인 수준이다.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투어의 내용은 이렇다. 쿠스코에서 버스를 타고 이드로일렉트리카 까지 6시간 이동, 이드로일렉트리카에서 2~3시간 걸어 아구아스깔리엔떼로 이동, 저녁 먹고 다음날 새벽 마추픽추 입장, 하산 후 다시 이드로일렉트리카로 걸어서 이동 후 쿠스코까지 버스로 이동이다. 마추픽추를 보는 시간에 비해 이동시간이 10배 가까이나 되지만 19세기에 겨우 발견될 만큼 꼭꼭 숨어 있는 마추픽추이기에 어쩔 수 없다.
쿠스코-이드로일렉트리카 (버스)
지루하다. 지루하기만 하면 다행이겠지만 힘들다. 쿠스코를 출발해 4시간가량은 포장도로를 달리는데 중간에 페루의 만년설을 한번 보여준다 해도 지루했다. 15인승의 미니버스는 좁았고 승차감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약과, 비포장도로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지루한 틈을 타 잠도 잘 수 없다. 길에 가득 깔려 있는 자갈과 돌을 온몸으로 그대로 느끼면서 까마득한 낭떠러지 옆을 달리는 스릴을 느낄 수 있다. 마주 오는 차와 교행이라도 할라치면 기사의 거리 감각이 최고라 버스의 바퀴가 낭떠러지로 이탈하지 않기를 기도해야 했다. 이렇게 두개골을 흔드는 진동과 시야를 위협하는 낭떠러지의 공포 속에서 6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날의 진짜 목적지는 아니었다.
이드로일렉트리카 – 아구아스깔리엔떼 (도보)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철길을 걷는다. 무작정 걸어가면 된다. 약 8km 정도. 철길이라 크게 경사는 없어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철길이라는 게 문제였다. 처음에 신나게 걸었더니 나중에는 철길에 쌓여 있는 자갈들이 발바닥을 심하게 압박해 왔다. 이를 피하기 위해 철로 위를 걷기도 했으나 더 힘들었다.
발바닥은 힘들었으나 가는 길은 재밌었다. 예비역 남자 4명이 함께 걷다 보니 행군하는 듯한 느낌도 났다. 가끔 침묵의 시간도 있었으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농담 따먹기도 하다 보니 가는 길에 웃음이 많이 있었다. 만화 ‘천사소녀네티’의 주제가가 은근 야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음란마귀가 씌면 그렇다.
다른 사람보다 일찍 도착하고자 빨리 걸었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예쁜 곳을 발견하여 쉬고, 사진 찍고 놀다 보니 시간이 한참 지났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곳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앞이 깜깜해지면서부터는 말수가 줄었다. 힘들기도 했겠지만 넘어지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앞을 보기 위해 온 신경을 발끝에 집중시켜야 했다. 그렇게 해서 3시간 만에 아구아스깔리엔떼에 도착했다.
숙소를 배정받고 저녁을 먹고 샤워를 했...... 이럴 수가. 3시간 걸을 것을 대비해 짐을 최대한 줄이다 보니 아무도 수건을 안 가져왔다. 프런트에서 수건 한 장 유료로 빌려 돌려 쓰기도 하고 알몸으로 맨손 체조를 한 뒤 가만히 말리기도 했다.
밤이 되어버린 아구아스깔리엔떼는 고요하다. 내일 아침, 아니 새벽에 올라갈 마추픽추를 위해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해본다.
마추픽추를 향하여
새벽 4시가 조금 안된 시간. 여기저기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조금은 쌀쌀한 방 안, 그 온도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이불속에 얼굴을 파묻고 게으름을 피운다. 하지만 이내 일어나야 했다. 마추픽추에 올라가는 버스는 5시부터 운행을 시작할 것이고 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을 것이며 그 줄의 어느 정도 앞에 서지 못한다면 올라가는 시간은 한없이 늦춰질 것이고 쿠스코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내려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4시 20분인데도 이미 버스 기다리는 줄이 몇 백 미터는 되는 것 같다. 두 명이 먼저 줄을 서고 한 명이 티켓을 구하러 다녔다. 한 명은 걸어서 올라간다며 일찌감치 다른 길을 향해 갔다. 기다리는 시간은 은근히 길고 배도 고프고 해서 마침 줄 바로 앞에 있던 가게에서 빵을 샀다. 5시가 조금 넘자 버스 운행을 시작한다. 앞에 있는 사람들 다 버스 타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될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도 우리끼리 수다 떨고 줄 앞뒤로 있는 다른 여행자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실제만큼 길게 느껴지진 않았다. 줄 서서 기다린 지 1시간 20분 만에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시간은 얼마 길지 않은데 그 짧은 와중에도 잠깐 눈을 붙였다. 바깥구경을 할까 했었지만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해서는 걸어올라 오는 일행을 기다렸다. 10분 조금 넘게 기다렸다. 그가 왔다. 마치 설인 같은 포스를 풍기며. 올라오는 길은 가파르고 힘들어 땀이 엄청 나는데 그 땀들이 머리카락과 얼굴에 있는 잔털에서 얼어붙어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 버스를 선택하기 진짜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입구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엄청 많다. 혼란 속에서 겨우 자리를 잡았지만 정작 이곳에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시간은 6시 10분. 드디어 마추픽추에 입성한다.
마추픽추
이 새벽부터 마추픽추를 찾은 이유는 투어 일정에 맞춰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일출을 보기 위한 것도 큰 이유다. 하지만 산 위에서 다른 산 위로 뜨는 일출이란 이미 밝아진 이후에 해만 덩그러이 떠오른 모습이라 그리 특별해 보이진 않았다. 아침이기에 볼 수 있는 햇살의 줄기를 잠깐 구경하다 자리를 옮겼다.
드디어 마추픽추와 대면했다. 그러나 ‘우와’하는 함성, 또는 감탄이 내겐 나오지 않았다. 첫째, 가려진 것이 많은 도시 중간부에서는 시각적으로 크게 와 닿는 것이 없었다. 둘째, 마추픽추가 진짜로 유명하기에 그냥 와 본 것이다. 특별한 기대를 하거나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왠지 사진 찍고 놀기에는 꽤 괜찮다. 정면으로, 돌아서서, 앉아서, 누워서, 그리고 점프샷까지. 얼마 전 점프샷을 찍던 독일일이 실수로 언덕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기까지 했지만 안 뛰어볼 수 없었다. 그래도 조금은 살살. 뒤늦게나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시 쿠스코로
햇빛을 받아 빛나는 마추픽추를 구경하다 내려가기로 했다. 오래 봐서인지 이젠 못 봐서인지 가는 마당에 마추픽추가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야 했다. 너무 늦으면 쿠스코로 돌아가는 버스를 못 탈 수도 있다. 새벽에 버스 줄 서면서 샀던 빵으로 점심을 대충 해결하고 이드로일렉트로니카로 돌아간다. 이미 한번 걸었던 길이라 그런지 올 때보다는 재미가 덜하다. 다들 말이 별로 없다. 나도 그렇다. 재미가 덜한 것도 있지만 피곤하고 반은 졸리리라. 4시간 정도 겨우 잤으니 말이다. 경쾌함이 붙지 않은 발걸음은 쉬이 속도가 나질 않았고 우리는 버스 일행 중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덕분에 버스 뒤쪽에 앉아야만 했다. 그리고 쿠스코로 가는 내내 신나는 롤러코스터를 즐길 수 있었다. 힘들고 피곤한데 원치 않는 스릴을 즐겨야만 하는 고난의 6시간을 거쳐 쿠스코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곤 빵 두 개밖에 없다. 배가 고프다. 그런데도 식당을 찾아다닐 여력이 없다. 아르마스광장에서 제일 만만한 메뉴, 빅맥을 시켜먹고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