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房)과 관(棺) 사이에서

by 문용대

방(房)과 관(棺) 사이에서


며칠 전 ‘지상의 방(房) 한 칸’이라는 글을 읽었다. 그 글 첫 소절이 이렇다.

“요즘 관(棺) 구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요?" "시내에 있는 고시원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니 이렇게 작은 관에서라도 마음 편히 지내자 마음먹었죠.…”

집값이 끝없이 오르면서 고시원마저 감당하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결국 ‘관’에 세 들어 산다는 풍자극이었다. 방(房)과 관(棺)이 겹쳐지는 현실이라는 말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좁은 방은 때로는 안식처가 되지만, 때로는 몸과 마음이 눌려 답답해지는 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희곡 속의 관은 원룸, 옥탑, 반지하, 고시원과 별다르지 않은 작은 공간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고독사나 재난사로 생을 마감하는 1인 가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옥탑방과 반지하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나에게도 그 공간들은 방이자 관이었다. 숨을 고르고 서 있어야 하는 삶의 좁은 경계선이었다.

전북 익산에서 빵 가게를 하던 중 1997년 IMF 외환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저가 경쟁을 벌이는 리어카 상인들에게 밀려 결국 가게 문을 닫았다. 서울 성동구에 올라와 컴퓨터 학원을 열었지만, 가진 자본을 모두 쏟아부은 탓에 거주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결국 반지하 방으로 들어갔다.

반지하의 삶은 곰팡이 냄새와의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방, 벽지 아래로 스며드는 습기, 닦아도 다시 피어오르는 곰팡이. 그 냄새는 옷과 이불까지 배어 나갔다. 환기를 시켜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가장 큰 공포는 장마철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면 깊은 잠은 엄두도 못 냈다. 현관 틈으로, 심하면 문턱 넘어 빗물이 들기 시작하면 아내와 나는 양동이와 걸레를 들고 물과 실랑이를 벌였다. 흙탕물이 서서히 방 안으로 배어들던 그 긴장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시절, 아내의 친구 두 분이 집에 찾아왔다. 지방에서 인연을 맺었지만, 이미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어 나와도 잘 아는 분들이었다. 서울에 다시 돌아온 우리 부부를 축하해 주러 온 반가운 이들.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습기 냄새가 가득하고 창문 하나 변변치 않은 좁은 반지하 방을 그들에게 보여 줄 자신이 없었다. 나의 지금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부끄럽고 두려웠다. 그래서 결국 반지하 집이 아닌 학원에서 그분들을 맞았다. 그날 느꼈던 미묘한 부끄러움, 그리고 그 뒤에 자꾸 남았던 마음의 울림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지금도 그분들을 만나면 그때 일이 화제다.

어쩌다가 한때 옥탑방에서 살았던 적도 있다. 건물에서 가장 높은 곳이지만, 삶의 질은 가장 낮은 곳이었다. 여름이면 한낮의 태양열이 지붕을 달궈 방 안이 열기로 가득했다. 에어컨을 틀어도 뜨거운 바람만 돌아다녔다. 겨울이면 콘크리트 벽과 바닥의 냉기로 온몸이 얼어붙었다. 어디선가 비가 새면, 양동이를 들고 이리저리 옮기는 일이 또 하나의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을 구경하러 가다 중심을 잃고 넘어진 사고를 겪었다. 잠시 한눈을 판 대가였다. 오른쪽 발목을 심하게 다쳤고, 이후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목발을 짚어야 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옥탑방 4층까지 목발을 짚고 오르내리는 일은 매일이 생존 체험이었다. 손바닥과 겨드랑이에 멍이 들고, 성한 다리도 금세 지쳐 흔들렸다. 그때 비로소 몸의 자유를 잃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절실히 알게 되었다.

출근도 해야 했다. 매번 택시를 탈 수는 없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곧 위험이었다. 앞으로 넘어질까, 뒤로 굴러 떨어질까 늘 긴장했다. 특히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목발을 짚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그때 나는 참 많은 따뜻함을 만났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한마디 말없이 팔을 잡아주던 사람들, 정류장에 차를 바짝 붙여 세워준 버스 기사들, 몇 번이나 도와준 이름 모를 여성들.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뜻밖의 온기로 채워졌다.

반지하의 눅눅함, 옥탑방의 뜨거움과 추위, 목발로 지내며 겪은 불편함. 이 모든 경험은 내 삶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어떤 공간은 나를 가두었고, 어떤 순간은 나를 멈춰 세웠지만, 결국 모두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타인의 배려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걷고 움직이는 일상의 기본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건강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절실히 배울 수 있었다.

돌아보면, 그곳들은 단순한 고난의 장소가 아니라 내 안에 생의 의지와 희망을 새겨 넣은 삶의 교실이었다. 이제 그 시절 신세 졌던 따뜻함을 떠올리며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그 모든 방들, 그리고 방 같기도, 관 같기도 했던 내 삶의 공간들이 나에게 남겨준 선물이다.

원고가 더 매끄럽게 다듬어진 것 같습니다. 혹시 특정 문단이나 표현에 대해 추가적인 질문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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