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머무는 자리

by 문용대


음악이 머무는 자리


음악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예술이 사람에게 무엇을 주는지 묻는 말에 답하기란 쉽지 않다. 그중에서도 음악은 설명보다 먼저 작용하는 예술이다. 의미를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소리는 몸에 닿고, 그 반응은 생각보다 빠르다. 소리는 머리보다 먼저 몸에 스미고, 의식하기도 전에 호흡을 바꾼다. 그래서 음악은 논리보다 감각에 가깝다.


이러한 음악의 힘은 치유의 현장에서 증명된다. 병원이나 상담실에서 음악은 훌륭한 보조 수단이다. 느린 템포는 심박을 낮추고, 반복되는 선율은 불안을 가라앉힌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은 소리를 통해 더 쉽게 드러나기도 한다. 음악 치료는 환자를 설득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견디도록 돕고, "지금 네 마음이 이렇구나" 하며 곁에 머문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얻으며, 마음의 긴장은 서서히 누그러진다.


요즘 나는 색소폰을 배운다. 음은 자주 흔들리고 숨은 금세 가빠오지만, 한참을 불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것은 잘 불어서 얻는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서툴기에 가능한 경험이다. 악보를 쫓고 숨을 이어가는 데 집중하는 동안 어떤 근심도 끼어들 틈이 없다. 그 순간만큼은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이 아니라 오직 ‘지금 여기’에 머문다. 음악의 행복은 완벽한 연주가 아니라 그 시간에 온전히 빠져드는 데 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음악의 역할은 개인의 내면을 넘어 공동체로 확장된다. 갈등이 깊은 곳에서 음악은 설득이 아니라 공유를 통해 긴장을 낮춘다. 자메이카의 평화 콘서트나 북아일랜드 분쟁 시기의 공연들이 그랬듯, 같은 노래를 듣는 시간은 상대를 적이 아닌 나와 같은 호흡을 가진 인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음악은 담장 너머로 건너가는 가장 조용하고도 단단한 다리가 된다.


그 다리의 힘은 극적인 순간에 더욱 선명히 보인다. 2024년 파리 올림픽 비치발리볼 경기에서 판정 논쟁으로 팽팽한 긴장이 감돌 때, 경기장에 Imagine이 울려 퍼졌다. 선수들이 자연스레 노래를 따라 부르자 날 선 공기는 웃음으로 바뀌었다.


2025년 미국의 한 콘서트에서도 실랑이를 벌이던 관객들이 ‘God Bless America’를 함께 부르며 갈등을 멈춘 사례가 있었다. 음악은 차가운 긴장 속에서 다시 사람을 사람 곁으로 불러온다.


전쟁과 재난 속에서도 음악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악은 총알을 막지 못하고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도 못한다. 그러나 폭격이 쏟아지는 곳에서도 연주가 이어지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인간답게 살고 있음을 증언하기 위해서다. 음악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기보다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준다.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지만, 우리가 세상을 견디는 방식을 바꾼다. 그것이 음악이 우리 곁에 머무는 이유이며, 오늘도 내가 서툰 숨으로 악기를 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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