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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Oct 04. 2020

억울한 옥살이

  누명을 써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를 것이다. 누명의 한자를 陋(더러울 누), 名(이름 명)이라 쓴다. 더러운 이름이다. 하지도 않은 나쁜 일을 했다고 의심받거나 그 죄를 뒤집어써 이름을 더럽히는 억울한 말, 사실이 아닌 일로 의심받고 손가락질을 받는 속상한 경우에 '누명을 썼다'라고 한다.


  나는 2년 동안 누명을 쓴 채 지냈다. 2016년 11월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내 집을 전세 놓고, 비교적 싼 집에서 살았다. 세 든 지 1년 만에 건물주는 내가 ‘두꺼비 형상을 훔쳐갔다’며 경찰에 고소했다. 금(金)도 아닌 돌로 깎아 만든 두꺼비다. 경찰서와 지방검찰청 그리고 고등검찰청, 고등법원에 ‘고소’와 ‘항고’, ‘재정신청’을 거듭했지만 모두 ‘혐의 없음’, ‘기각’으로 처분이 됐다. 건물주는 다시 대법원에 ‘재정신청 기각 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했다. 고등검찰청이나 고등법원에 항고, 재정신청을 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떳떳하기에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이번은 대법원 최종 판결이 아닌가!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이 생각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2000년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살인범으로 다방 커피배달원이던 최 모 씨(당시 16세)가 지목돼 10년의 감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뒤 재심을 청구해 16년 만인 2016년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최 씨에게 자백을 강요했다고 한다.

2019.3.6 방영된 mbc-tv 실화탐사대 캡쳐 화면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사건이 또 밝혀질 것 같다. 최근 화성 연쇄살인 사건 진범으로 복역 중인 이춘재가 1988년 발생한 화성 연쇄살인사건 중 여덟 번째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당시 진범으로 지목된 윤 모 씨는 재판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허위 자백했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19년 6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출소했다. 만약 윤 씨가 범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면, 누명이라면 22세 때부터 52세가 된 지금까지 30년간 살인범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은 누구에게 무엇으로 보상받아야 할지 가슴이 답답하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다.


  미국에서도 억울한 옥살이 사례가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소도시 시미밸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크레이그 콜리라는 백인 남성이 31살 때 여자 친구와 아기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이 확정돼 무려 39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71살이 된 2017년에 범인이 아님이 드러나 풀려났다. 시 당국이 그에게 ‘잃어버린 삶’에 대한 대가로 2,100만 달러(약 236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했으나 콜리는 연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한다.


  나는 너무 억울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도 힘들었지만, “나도 이러다가 재판에서 엉뚱한 판결로 절도범이 돼 감옥에 가기라도 하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고소를 당한 지 1년이 지나 대법관 4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최종 ‘기각’이 결정될 때까지 ‘혹시’, ‘만약’이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가슴 조이며 지내야 했다.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으로 옥살이한 최 씨는 1, 2년도 아닌 10년 감옥살이와 6년이 지날 때까지 얼마나 분하고 억울했을까. 출소 후 피해자의 산재보험료(1억 4천만 원)까지 물게 됐다고 한다. 최 씨는 보상금 8억 4여만 원을 받았지만 잃어버린 청춘은 되찾을 수 없다. ‘재심’이라는 영화가 이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다.


  내가 세 산 집 건물주는 대법원 ‘기각’ 결정도 인정할 수 없다며 이사를 가야 하는 나에게 “훔쳐간 돌 두꺼비 갖다 놓기 전에는 전세보증금 받을 꿈도 꾸지 말라!”라고 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 신청과 임차보증금 반환 소송을 거쳐 강제경매신청을 했다. 그는 당연히 반환해야 할 보증금을 주지 않고 버티다가 현장조사와 감정평가가 끝나자 보증금 원금과 이자를 법원에 공탁해 찾아왔다. 경매로 집을 날리기도, 연 15%의 지연손해금도 물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의 변호사나 법무사 선임비용 그리고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보증금 반환청구소송, 경매신청 등 모든 내 소송비용까지 족히 1천여만 원 이상의 돈을 날렸다. 그는 세입자 보증금을 덜 주고 쫓아내기를 상습적으로 해 온 악명 높은 임대인이다.


본문 사건과 관련된 돌 두꺼비

  돌 두꺼비 절도범으로 죄를 씌워 보증금을 안 주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 ‘모욕’, ‘협박’, ‘재물손괴’ 혐의로 고소를 했으나 모두 ‘각하’ 처분했다. ‘포도나무를 독살했다’, ‘보일러를 고장 냈다’, ‘옥상 배수구를 틀어막아 물이 안 내려가게 했다’, ‘화분을 훔쳐갔다’ 등 별별 고소를 다했으나 모두 ‘혐의 없음’으로 끝났다. 양산을 훔쳐갔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협박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옷깃 한번 스친 일이 없는 나와 아내를 ‘폭행’ 혐의로 경찰서에 고소했다. 그냥 폭행이 아니다. 상습폭행, 공동폭행이란다. 역시 지방검찰청, 고등검찰청, 고등법원에 ‘고소’와 ‘항고’, ‘재정신청’을 거듭했지만 모두 ‘혐의 없음’, ‘기각’으로 처분했다. 이번 폭행 건도 대법원에 ‘재정신청 기각 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했다. 또 가슴 조이며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임대인 그녀를 ‘리플리 증후군’ 질환자로 의심하고 있다. 자신의 상상 속 허구를 사실이라고 믿는 심리적 장애,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 말이다.


  범죄 없는 세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요원한 것인가! 지은 죄 값이야 치러야겠지만 억울하게 누명 쓰는 일, 특히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억울한 옥살이만큼 사법 정의를 불신하게 만드는 것도 없을 것이다.     


<참고> mbc-tv 실화 탐사대 2019.3.6 방영(유튜브 검색창 “돌 두꺼비" 1, 2막 시청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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