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뒤바뀐 인구 정책의 역설: 격동의 한 세기를 지나며

by 문용대

경남 창원에 사는 지인 이정우 씨는 무려 일곱 명의 자녀를 낳아 잘 키웠다. 나는 창원에 살 때 반지동 까치아파트 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자녀가 3~4명일 때다. 성실하게 자녀들을 키워낸 아내 신영주 여사가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기혼 여섯 자녀 밑에 손주가 14명이다. 많은 자녀와 손주들이 슬픔을 함께 나누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삶의 풍요가 무엇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다자녀를 축복으로 여기는 그들의 문화는 당시 사회의 기조와는 완전히 다른,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 부부는 종교 단체로부터 다자녀 가정으로 상을 받고, 포상으로 미국 여행까지 다녀왔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1980년대, 거리마다, 가정마다 이 표어가 울려 퍼지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은 죄악처럼 여겨지던 시대. 당시 나는 경남 창원의 한 회사에서 신입사원들을 교육하며 정부의 인구 억제 정책을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 정책에 대한 회의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인구는 곧 국력’이라는 옛 지혜를 되새기며, 독일과 프랑스처럼 일관된 출산 장려 정책으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선진국의 사례를 소개하곤 했다. 심지어 조선 시대에도 나라에서 혼수를 대주며 백성의 결혼과 출산을 독려했는데, 불과 한 세대 만에 정반대의 정책으로 돌아선 대한민국의 현실은 기묘한 역설로 다가왔다.


나는 당시의 정책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이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무색하게,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는 구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정관수술을 받으면 훈련을 면제해주는 파격적인 혜택이 주어졌고, 셋째 아이부터는 건강보험 혜택에서 제외하는 등 다자녀 가정을 향한 사회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이러한 분위기는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며 우리 사회의 인구 구조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인구 대국 중국의 기묘한 반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극적인 인구 정책 변화를 겪었다.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었던 중국은 1970년대 후반부터 강력한 '한 자녀 정책'을 시행했다. 인구 증가를 억제하여 경제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명분이었다. 이 정책은 단순한 권고를 넘어, 초과 출산 시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고 심지어 강제 낙태까지 서슴지 않는 강제성을 띠었다. 그 결과, 중국의 출산율은 급격히 감소하며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30여 년간 이어진 한 자녀 정책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해 성비 불균형이 심화되었고, 외동으로 자란 아이들의 의존성이 높아지는 '소황제(小皇帝) 현상'이 만연했다. 또한, 생산 가능 인구는 감소하고 노인 인구는 급증하면서 급격한 고령화라는 난제에 부딪혔다.


결국 중국 정부는 2016년에 '두 자녀 정책'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며 산아 제한을 완화했고, 이어서 2021년에는 '세 자녀 정책'까지 허용하며 사실상 산아 제한 정책을 끝냈다. 인구 억제를 위해 강력한 정책을 펼쳤던 중국이 이제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책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인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정책이 더 큰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다자녀 가정의 삶과 우리의 시선


나는 그 거센 흐름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꾸려가는 다자녀 가정들을 보며 희망을 발견했다.


2017년, 11명의 자녀를 둔 전다혜 씨(남편 신성훈)를 직접 만났을 때의 일은 내게 큰 충격과 울림을 주었다. "피임을 시도했지만 몇 차례 실패했어요. 그 후로는 운명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주시니 받아야지요." 아내 전다혜 씨의 이 담담한 고백은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들이 겪었을 고통을 짐작하게 했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가 유행하던 시절, 그들은 자녀 셋, 넷까지는 죄인처럼 숨죽여 지내야 했다고 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편견 때문에 가정 이야기가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꺼렸고, 깊은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조차 없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 반지하 집은 종일 제습기를 가동했지만, 습했고 사방에는 남들이 보내준 옷가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남편의 300만 원 남짓한 월급으로는 13명의 식구가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고, 아이들은 사교육은커녕 뮤지컬이나 놀이공원 같은 소박한 꿈조차 꾸기 어려웠다. 특히, 2005년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2년 넘게 고향인 일본에 가지 못한 아내의 눈물은, 다자녀 가정의 어려움이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 사연을 접한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모금 활동을 시작했다. '어금니 아빠' 사건으로 사회 공헌 분위기가 위축된 상황이었지만, 여러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였다. 목표액 천만 원에는 한참 모자랐지만, 평화운동단체 강남지부장 김희영 여사와 얼마 전 아내가 별세한 이정우 씨 등 많은 분들의 소중한 성금이 모였다. 이 성금을 김희영 여사와 함께 전달했다. 그 후 거주지 관할 동주민센터에서는 가족이 일본을 다녀올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작은 불씨가 한 가족의 오래된 소망을 이루어주길 바라는 마음은 지금도 간절하다.


또 서울 광진구에 사는 조영미 여사 네도 일곱 명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특히 맏아들은 2017년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온 가족의 자랑이 되었다. 나는 이처럼 굳건한 가정을 볼 때마다 깊은 관심과 존경을 표하곤 한다.


과거의 교훈과 미래의 과제


우리나라의 인구 정책은 1960년대 '인구 억제'에서 1990년대 중반 '정책 전환'을 거쳐, 2005년 이후 '저 출산·고령사회 대책'으로 급변했다. 그러나 합계출산율은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을 맴돌고 있다. 부모 급여, 첫 만남 이용권 등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는 단순한 금전적 지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불편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조선 시대에 임신부에게 출산휴가를 주고 아이를 국가의 근본으로 여겼던 것처럼,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축복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하다. 한때 11명의 아이를 낳고도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다자녀 가정의 슬픈 현실은, 오늘날 우리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인구 정책의 나아갈 방향을 묻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 역설적인 정책의 굴레를 벗어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글 중 이름은 모두 가명임.)


※중국의 "소황제(小皇帝)"란 1979년부터 시행된 중국의 한 자녀 정책(독생자 정책)으로 인해 태어난 외동아이들을 지칭하는 용어. 이 아이들은 가정에서 부모와 조부모의 극진한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며 자라나는 경우가 많아, 마치 "작은 황제"처럼 응석받이로 키워진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칭.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게 치매가 온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