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은 조용히 숨이 끊어지길
나는 조울증,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
십 년간 내 병은 돌고 돌아 병명이 바뀌었지만 현재 내 병명은 조울증, 공황장애가 아닌 조울증에 기인한 불안장애
가파른 그래프에 나는 물론 가족들은 평범하지만은 않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집 앞을 가득 메운 택배상자, 언제 어디서 시켰는지도 모르는 택배가 문을 열 수조차 없게 가득가득 쌓인다. 하룻밤에 몇백만 원에 달하는 물건을 사고 정신을 차리면 하나하나 찾아가며 반품, 환불처리를 익숙한 듯 처리했다. 기간이 지나 반품이 안 되는 물건들, 어딘가에 박혀 있는지도 모르게 쌓여 가는 물건들이 방 하나를 가득 채웠다. 그냥 단순 쇼핑중독이라 생각했기에 남편의 불만 속에서 우리는 피 터지는 싸움을 이어나갔다. 6.25에 결혼한 우리는 전쟁 같은 결혼 생활을 이어 나갔다.
아이들을 좋아했던 나는 아이를 셋 정도 낳고 싶었다. 화목한 가정을 꿈꿨다. 아이 셋을 안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를 소원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사치였다. 주치의는 단호했다. 남편을 불러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말했다. 둘 다 살릴 순 없다며 약을 먹지 못한 내가 견디지 못해 죽거나 아니면 임신 중 약 복용으로 아이가 건강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평생 자식은 없다 생각하고 살라 했다. 그때 난 세상을 잃은 듯 방황했었다. 그러다 결심했다. 병원 따위 가지 않으리라,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약은 절대 먹지 않으리라, 매일이 고통스럽겠지만 딱 한 번만 아이를 품고 싶다 빌고 빌었다. 의사의 경고에도 내 멋대로 단약하고 내 멋대로 아이를 품었다. 매일 죽음을 꿈꾸는 그 고통 속에 열 달이 지나고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열 달 내내 아기가 주먹을 펴지 않아 손가락이 붙은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했기에 내 첫마디는 손가락 발가락이 10개씩인가요? 손가락이 붙었나요? 였다. 단약으로 인해 열 달 내내 구토를 하며 링거액으로 열 달을 보낸 내가 건강한 아이를 품에 안은 건 기적이었다.
커가는 모습을 보는 보는 낙에 참 많이도 행복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나는 또다시 뱃속에 아이를 품고 싶었다. 몸이 힘들고 끝없는 발작 속에서도 빛나는 아이를 보는 것은 행복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허락해 달라고 빌었다. 당연히 의사는 절대 안 된다고 화를 냈지만 매번 나는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2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의사는 2년 만에 항복했고 우리는 아기를 위한 단약을 시작했다. 여전히 많은 약을 복용하지만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은 용량이기에 많은 부작용을 감당해야 했다. 가장 먼저 구토가 시작되었고 한 달 만에 10킬로가 넘는 체중감소가 있었다. 불면증을 앓고 있고 수면제도 복용하고 있지만 나는 밤이 되는 것이 두렵다. 취침 전 약의 부작용으로 수분이 빼앗겨 목 안까지 파스락거리고 그로 인한 호흡곤란에 시달린다. 약을 먹으면 내 몸은 사지가 찢겨 나가는 고통과 몸이 뒤틀리는 고통 속에 차라리 몸을 잘라버리고 싶을 만큼 괴로움에 온몸을 때리고 할퀴며 매일 밤을 맞는다. 살려달라 애원하며 몸을 사정없이 때린다. 잠들 수도 없는 고통에 이제는 밤이 오는 것이, 취침 전 약을 먹는 것이 두렵다.
오늘은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뜨거운 햇살 아래 아들의 축구경기를 보고 대기줄로 가득 찬 식당 안에서 밥을 먹으며 식은땀이 내내 흘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발작을 수도 없이 반복했고 이른 저녁에 취침약을 먹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약이 몸에 퍼지면서 평소보다 더 강렬한 발작과 근육경련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엄마가 이상하다고 했다. 눈도 뜰 수 없는 상황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음성, “엄마가 이상해, 엄마가 왜 저러는 거야?” 그렇다. 평소에도 아이는 내가 발작하는 모습을 종종 보지만 오늘처럼 심한 발작은 아이도 처음 마주한 현실이었다. 나 또한 견딜 수 없어 남편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다. 병원 좀 데려가 달라고… 남편은 병원 가도 달라질 게 없다 말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경우에 처방전을 확인한 후에 진정제와 근육이완제 주사를 놔주었다. 하지만 여기는 외국, 셋만이 전부인 이곳에서 별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걸 안다. 잔뜩 겁에 질린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로 눈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나를 이상하게 보고 있을 아이가 그려졌다.
새벽 3시, 전쟁을 끝내고 잠에서 깨어났다. 평소와는 사뭇 달랐던 아이의 말들… 잠에서 깨면 아이는 나를 두려워할까? 약에 취해 매일 잠드는 엄마, 매일밤 난동을 부리며 잠드는 하루의 끝.
아이 눈에 비쳤을 엄마의 모습, 우리가 마주해야 할 아침, 도망치고 싶은 오늘, 가끔 난 조용히 숨이 멎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