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도전의 끝
약을 끊을 자신은 없었다. 충분히 많은 약을 넣어 주고 있음에도 끝없는 발작과 요동치는 그래프, 과호흡에 발버둥 치다 실신하는 상황에서 둘째를 갖겠다는 건 내 욕심임이 분명하다.
몸이 얼마나 버틸 수 있나, 얼마나 버티면 죽는 걸까 내 몸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것이냐 의사는 화를 냈다. 당장이라도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단약을 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의사 귀에는 고깝게 들렸을 것이다.
임신 중에 먹을 수 있는 약은 단 하나도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굳이 매번 의사가 상기시켜 주지 않아도 나도 안다. 어쩌다 피임을 하지 않았을 때, 2주라는 시간을 기다리며 약을 먹지 않을 때 나는 괴물이 된다. 혹시나 생명이 찾아왔을까 내가 먹은 약이 세포분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 울부짖다 결국 약을 삼킨다.
의사는 말했다. 임신 시도 3개월 전부터 모든 약을 끊고 3개월이 지나야 비로소 시도할 수 있다고, 그전에 내 눈엔 당신이 먼저 죽을 거 같다고.
그다음에는 엄마와 연결되기 전까지 먹은 약은 괜찮다고, 임신이 확인되면 그때부터 한순간에 모두 끊어야 한다고.
마지막 세 번째는 리스크를 안고 최소한의 약을 먹으면서 임신을 유지할 수 있다고
2년을 한결같이 둘째를 고집하는 나를 보며 의사는 화를 냈다가 또 어느 날은 달래도 봤다가 이제는 포기한 듯 세 번에 걸쳐 말이 바뀌었다. 마지노선인셈이다. 임신 시도를 해도 괜찮을 정도로 약을 모두 빼주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럼에도 한주먹의 약이 매일 들어가고, 절대 먹어선 안된다고 했던 약들이 여전히 들어 있다는 걸
어젯밤에도 나는 발작을 일으켰다. 입 안이 파스락 거리면 여지없이 호흡곤란이 온다. 목젖까지 파스락 거리는 상태에 이르면 삼킬 침이 없어 구토가 나온다. 그렇게 두 시간의 사투 끝에 잠이 들었다.
요즘은 응급상황에 대비해 머리맡에 내 의료기록이 담긴 파일과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위해 처지기록까지 챙겨 두고 잠자리에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더 초조해지고 단약에 실패할 것이란 예감이 더욱 깊게 자리 잡는다. 결국 임신 시도는 해프닝으로 끝날지도 모른다고
12월 말, 의사는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마지막 진료를 본 이후에 임신이 가능할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나의 길고 길었던 도전의 끝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마지막 남은 달력을 보며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