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금 아픈 엄마입니다

3. SOS

by 마담살롱

조울증은 조증과 울증이 널뛰기를 하듯 요동치며 가쁜 그래프를 만들어 낸다. 조증이 심할 때는 하루 종일 단 한숨을 안 자도 뻗치는 자신감에 며칠잠을 안 자도 하나도 힘들지 않다.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 온 집안을 다 뒤집어 놓고야 만다. 나는 그때가 가장 두렵다. 곧 닥쳐올 하강곡선이 어디까지 떨어질지를 예측할 수 없기에

사람마다 그래프의 모양은 다 다르겠지만 나는 하루에도 수시로 변하기도 하는 아주 가파른 곡선을 그려낸다. 남들에 비해 조증과 울증의 기복이 큰 편이다. 그래서 약을 쓰는 것도 효과도 남들에 비해 힘들다.

최근 며칠 동안 침대 한켠에 움직임 없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약으로도 진정이 되질 않았고 나는 떨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무 생각도 감정도 없는데 알 수 없는 눈물만 흘러내렸다. 그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마음은 돌을 올려둔 것처럼 아팠고, 그 불편함은 분노로 표출되었다.

나는 그냥 말이 하고 싶었다. 이 돌덩이를 내려놓고 싶었다. 아무라도 붙잡고 이야기라도 하면 마음이 가벼워질까 전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목록을 다 뒤져도 전화를 걸 데가 없었다. 점점 더 아려오는 아픔에 아이와 잠든 남편에게로 갔다. 나는 그가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는 참으라고 화만 낸다. 십 년을 같이 살았지만 아직도 그는 나를 달래는 방법을 모른다. 그럼에도 곧 사단이 날 것 같은 불안감에 남편을 깨웠다. 역시나 잘 거라고 짜증을 냈고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내방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말한다. 정신이 나약해서 슬픔을 이겨내지 못해서 아픈 것이라고, 팔자 좋게 몸이 편하니 그런 생각도 하는 거라고, 하루살이도 힘든 사람은 몸이 고달파 머리는 움직이지도 않는다고, 그러니 미친 듯이 힘들게 움직이고 정신력을 키우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받고 태어난 기질에 살아온 환경이 스위치를 켜는 것이라고 말이다.

죽고 싶어 죽는 사람은 없다. 어떤 순간에도 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게 휘몰아친다. 죽겠다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는 순간에도 각자만의 방식으로 나 좀 살려달라, 나 좀 말려달라 구조 요청을 한다. 그 순간에는 죽겠다는 마음과 살겠다는 마음이 요동친다. 경험해 보지 못한 죽음은 일생에 딱 한번 마지막 순간에만 알 수 있다. 너무나도 살고 싶은데 너무나도 죽고 싶은 순간이 있다. 이 가슴을 짓누르는 돌덩이를 칼로 베어 버리면 마음이 시원해질 것 같은 욕구가 올라온다. 어제가 그러했다.

아이가 잠들기 전 나를 꼭 안으며 평소와 다른 말을 남기고 갔다. “엄마, 아프지 마. 엄마 죽으면 안 돼. 살아서 우리 내일 아침에 꼭 웃으면서 다시 만나자?” 그때까지만 해도 자살충동은 없었기에 인사가 뭐가 그러냐며 5살 난 아이와 웃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아이 눈에는 엄마가 평소와는 다르단 걸 알았을까? 잠시 뒤, 갑자기 몰아치는 감정에 나는 속절없이 당하기만 해야 했다. 난 살아야 하기에 버둥거렸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실행에 옮겨지는 행동 속에 주먹을 꽉 쥐고 살아야 한다는 말만 되뇌었다. 항상 그랬다. 상극인 두 마음이 힘겨루기를 했다. 몸은 행하고 있지만 머리로는 멈추라고 정반대의 신호가 한꺼번에 켜진다. 살아야 했다. 핸드폰 요금을 충분히 충전하고서 자살방지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상대의 음성, ”지금 계신 곳에서는 이용할 수 없습니다. “ 나는 와르르 무너졌다. 해외에 있는 나는 그 전화 한 통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 봐도 내가 도움 받을 곳은 없었다.

웅크리고 앉아 손깍지를 강하게 꼈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살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죽고 싶은 마음도 덩달아 커져갔다. 나는 꼭 내일 아침에 아이와 약속을 지켜야 한다. 죽음을 향하는 발걸음에 살려달라 외치며 두 시간을 내가 나를 끓어 안고 나를 말렸다. 두 시간이 지나 오열하는 내 소리를 듣고 남편이 내방으로 건너왔다. 역시나 한숨을 쉬며 화를 냈다. 약을 더 먹고 그냥 자라고, 그러다 센터도 해외는 안되더란 말을 하며 나는 그냥 누군가에게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말했다. 그제야 그는 미안하다며 잘 참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늘 생각한다. 스위치가 딸깍하며 켜지는 순간 그 사람은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SOS 신호를 보낸다는 걸. 때마침 누군가 잡아줬더라면 그들은 살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낸 신호에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마지막 신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이 진정 필요한 건 너무 아픈 내 가슴 이야기를 잠시라도 누가 들어주기를 원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나는 오늘 아침, 약속을 지켰다. 환하게 웃어 주는 아이를 보며 애썼다. 잘 견뎠다. 나에게 칭찬을 건넸다. 그렇게 부모는 자식을 살리고, 또 자식은 그렇게 부모를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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