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마마

03. 미안하니더

by 마담살롱

진료시간이 아침 일찍 잡히는 바람에 우린 고민 끝에 서울에 있는 친척집에 하루 먼저 가있기로 했다

6남매 중 맏이인 할머니의 막내 여동생

남자 셋, 여자 셋

그중 두 분은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셨고 한분은 당뇨로 한밤중에 죽음을 맞으셨다

경찰은 혼자 밤에 자다가 인슐린 주사를 맞지 못해 발생한 사고로 수사를 종결했다

몸이 인슐린에 손을 뻗은 상태로 돌아가셨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동생들이 먼저 가는 걸 다 지켜본다며 혼자 몰래 우셨다


역에 도착하자 배웅 나온 여동생이 손을 흔든다

“언니야! 여기다 여기! 온다꼬 힘들었제? 얼른 올라온나! 할마시 좀 따시게 입고 오지, 안춥나?“

“응 괘안타, 안춥다. 아이고 김서방! 내가 면목이 없니더, 내가 살아가 이 은혜를 다 갚고 죽어야 되는데 미안하니더, 때때마다 우리 동생들이 고생시키고 이제 내꺼정 고생시켜서 참말로 미안하니데이, 미안하니데이”

할머니는 연신 미안하다며 고개를 떨구셨다


지금 살아계시는 남동생도 위암 판정을 받고 서울 할머니댁에서 치료를 받았었다

돌아가신 분도 할머니댁에서 치료를 받았었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 할머니만은 암도 비켜 가기를 빌었다

점점 더 연세가 드실때마다 나이가 많으면 암도 잘 생기지 않는다고 젊은 사람만큼 빨리 움직이지도 않는다는 얘기를 들으며 팔순이 지나고부터는 ”이제는 되었다 “ 마음을 놓았다

그랬기에 더 충격이 컸다

‘아직 조직 검사도 안 했어,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암이라고 하더라도 수술만 하면 될 거야..’

‘오진일 거야, 그냥 종양일 거야’


그날 밤, 우리는 아프신 할머니만 컴컴한 집에 우두커니 혼자 남겨두고 나가 보쌈에 술을 걸쳤다

아무도 없는 집에는 죽 한통, 물 한 병만 남겨 두고서..

“할마시 그 나이에 암일리가 없다, 조직 검사도 안 했는데 아이다 아이다, 걱정하지 마라 “


그런데.. 내 새끼가 이상하다! 열이 나는 거 같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열이 40도가 넘고 지난번엔 열경기도 했는데.. 하필 오늘 열이 나는 거 같다. 체온계 같은 건 없다.

주말에도 문을 여는 약국을 찾아 종합감기약과 교차복용할 해열제를 구입했다. 괜히 우리까지 보태는 거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애가 계속 보채는 통에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낯선 집에 혼자 남겨졌던 할머니는 불 켜는 방법도 몰라 컴컴한 방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내 눈엔 오직 불덩이같이 뜨거운 내 새끼만 걱정이

됐다. 열이 점점 오른다. 체온계는 없지만 이미 39도는 넘은 거 같다

그제야 집에 있던 비접촉식 체온계를 가져와 온도를 체크했지만 이상하게도 36도로 나온다

“봐라 열 하나도 안 난다. 아를 너무 곱게 키운다. 마 됐다. “

모든 사람들이 애 이마를 한 번씩 짚어본다

“마 됐다, 이 정도는 괘안타, 감기약도 먹었다 아이가 됐다, 술이나 묵자.”


아니다, 이상하다, 저 체온계보다 엄마가 더 정확하다, 옷을 벗기고 물수건으로 애를 닦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두 유별나다며 물수건을 뺏는다

잘 노는 애 울리지 말라며 약도 물수건도 다 뺐는다

우리 애는 열이 나도 잘 논다. 나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열이 점점 더 오르는걸 나는 느끼고 있다

참고 참다가 나는 버럭 화를 내었다

“내 새끼는 엄마가 더 잘 알아! 애 지금 펄펄 끓는다고!”

그제야 모두 아무 말이 없다

“아이고, 괜히 이 늙은이 하나 때문에 아까정 아프고, 아가 아파가 우야노… 우야노…“


이 밤이 평생 한이 맺힐 밤이 될 줄 그땐 몰랐다

내 걱정은 오로지 내 새끼 하나,

할머니 걱정 따윈 없었다

나는 그저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밤새 애를 끓어 안고 약을 먹이고 몸을 닦이며 무사히 지나가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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