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유학생 가족으로 산다는 건
미국에서 생활한 지 두 해가 지났다.
2018년 11월에 도착했으니, 2년을 훌쩍 넘겼음에도 체감상으로는 훨씬 오래된 것 같다.
나의 삶은 제법 익숙해졌다.
아직 낯설고 불편한 현실이 산재해있고, 어딜 가나 의사소통의 강박으로 긴장하지만.
반면 영어는 좀처럼 늘지 않는다.
수업을 들으러 갈 수도, 아이들이 자는 틈을 타 공부를 해보자는 의지도 없다.
그냥 쉬고 싶을 뿐 아무 생각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예전에는 읽던 책의 뒷이야기나 넷플릭스의 다음 에피소드가 궁금해 고요한 밤만을 기다렸는데
요즘은 성경을 몇 장 읽고, 듣고픈 설교를 찾아 유튜브를 배회한다.
그렇게 두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아무것도 안 한 채 잠드는 날이 대부분이다.
누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유학생에게도 어려운 시기이다.
분명 어드미션과 함께 보장받은 장학금임에도, 코로나 앞에서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다.
당장 학교에서 지급되는 생활비를 걱정하고, 제대로 된 펀딩을 받기 위해서는 프로젝트를 찾아 나서야 한다.
처자식이 셋이나 딸린 우리 신랑은, 말해 뭐 하겠나.
슈퍼 갑인 교수와 슈퍼 을인 대학원생, 그것도 인터내셔널은 평생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없을 테니.
아쉬운 우리가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며, 돈을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게 현실임을 자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연구, 관심 있는 분야 그게 무슨 소용인데?
어차피 원하는 분야에 전문화된 교수가 없고, 중요한 때에는 발을 빼며, 아이디어도 뺏기는 현실에
한 학기라도 빨리 졸업하는 게 유익 아니야.
어느 날은 신랑과 이런 대화를 나누며 절망하다가도 다시 소망을 두며, 쓰러짐과 일어섬의 반복을 거듭한다.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안전하지 않다.
이 불안한 세상에서 무작정 박사라는 '허상'을 쫓는 건 아닌지 자문하며, 어설픈 목표와 애매한 실력으로 버티기에는 만만치 않은 곳임을 깨닫는다.
먼 타국에서 살아내는 유학생에게는 감내하고 결단하며, 버텨내야 할 것들이 많다.
난 공부하는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그의 어려움을 백분의 일도 알아차릴 수 없다.
그럼에도 신랑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며 기꺼이 행동한다.
또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이 땅으로 건너온 이들은 얼마나 될까.
약간의 무모함과 또, 열심을 품은 유학생들이 이 힘든 시기를 건강히 깨치고 나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