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만에 도착한 이삿짐
처음 낯선 미국에 도착해 몇 달을 살며 힘든 점이 있었다.
서울에서 보낸 이삿짐이 도착하지 않아서였다.
점차 옅어지는 한 해의 끝자락을 넘어섰으니, 보낸 후 석 달은 되었던 것 같다.
기다림의 시간은 고되고 지루했다. 더 이상 내가 무얼 하겠나 싶어 돌아설 때쯤 통관이 마무리되어 곧 배송 예정이란 소식을 들었다.
미국에 도착해 한 달은 가져온 살림만으로 꾸렸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딱 그 정도의 살림살이였다.
이민 가방 언저리에 더 욱여넣지 못한 걸 후회하고, 어딘가에 있을 물건을 끝없이 뒤척이다 결국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하곤 했다.
흰 벽이 환히 드러나는 빈자리는 까닭 모를 불편함을 불러왔다.
그리고 가끔, 그 빈자리가 잡히지 않는 아득함으로 물드는 착각이 일었다.
내 미약한 불안을 잠재우고자 끊임없이 밀어내고 채움을 반복했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꺼져가는 몸을 끌어다 뉘어봐도 아직은 내 집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낯선 이질감이 작은 것 하나도 온전히 풀어놓을 수 없게 했다.
신랑에게 어지러운 마음을 이야기하니, 그는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그게 또 위로가 됐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냈다.
그럼에도 살아지는 게 신기할 정도로 미니멀한 삶이었다.
언젠가 이런 삶을 꿈꾸지 않았었나 자문하다 설핏 웃어버렸다.
이삿짐이 채워지면 과연 이 공간은 내 것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야 할 것만 같아서.
인테리어, 가구, 소품 하나까지도 정성 들여 꾸미고 싶은데
현실은 누가 한국 가며 두고 간 물건, yard sale에서 10달러에 구매한 가구들이 에워싸고 있다.
내 몸과 마음을 와락 쏟아낼 수 있는, 그렇게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