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점이 그립다
미국에서 생활하며 후회스러운 건 한국에서 읽던 책을 더 챙겨 오지 못한 것이다.
책은 워낙 두껍고 몇 권만 넣어도 묵직해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책을 정리하고서야 부피로 책정하는 해외이사 짐에 실어 보내면 된다는 걸 알았다.
종이 냄새가 묻은 박스에 열심히 테이핑을 하고 책을 차곡차곡 담았다. 어떤 책은 표지의 일러스트만 봐도 아, 하며 이야기가 떠오르고, 어떤 책은 먼지를 쓱 닦고 휘리릭 책장을 넘기며 기억을 불러와야 했다.
막바지 이주 준비로 통장의 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자고 일어나면 각종 공과금이나 인터넷 쇼핑 결제 비용, 카드대금 등이 딱딱한 활자로 찍혀있었다. 둘이 벌 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경제활동을 책임지는 이가 없다 보니 부부의 통장은 점멸하는 작은 우주 같았다. 그땐, 날 두렵게 하던 범주 안에 책을 보내는 비용까지 얹히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처음 우체국에서 책을 보내며 179,000원을 결제했는데, 그 가격이면 읽고 싶은 책을 열 권도 넘게 살 수 있었다. 아깝고 억울했다. 금액이 너무 충격이어서 책을 다 가져갈 수는 없다는 걸 직감했고, 대부분은 중고서점에 팔거나 시댁 창고에 두고 왔다. 꽤 대중적인 책이었지만 천 원도 채 안 되는 돈을 현금으로 받아 들고는 중고서점이 들어선 대형 쇼핑몰을 하릴없이 배회했다. 그러다 결국 다시 서점에 들러, 책을 판 돈에 내 돈을 보태 다른 책을 사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무리해서 많은 책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책장을 채운 건 아이들 한글 책, 영어책, 학교 교재 따위가 대부분이다. 내 책은 가장 위 칸에서 무감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보는 것 같았다. 곧게 뻗은 책장 사이로, 빼곡히 늘어선 책들이 주는 위화감의 느낌을 몇 번 받았다.
그즈음 한국에서 친구가 책을 보냈다. 아이들 장난감과 마스크팩, 미역, 돌김, 일회용 조리음식 등과 함께.
뭘 보낼까 묻는 그녀에게 책 두 권을 부탁했다. 다음에는 책만 따로 보내준다고도 했다. 내 취향과 감성을 전적으로 존중해 주는 친구, 어렵게 어렵게 택배를 발송하고는 '나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힘차게 말해주는 친구가 있어 좋다.
낮은 조도의 전등 아래서 그녀의 편지를 읽고 구김 하나 없는 새 책의 빳빳한 질감을 느끼며, 이 새벽의 고요함을 접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