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고 씩씩한 둘째
미국에 잠시나마 정착하는 지금이 잘 한 선택인지 되묻고
그러다 어서 한국에 돌아가 자리를 잡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공존하는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아이들의 친구를 떠올릴 때다.
한국 나이로 8세, 6세이면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는 때인데 아이들은 오랜 시간 못하고 있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도 분명히 한몫하지만
낯선 환경, 이방인, 의사소통, 이런 요소들이 그들을 주춤하게 하고, 또 다가오는 이들을 밀쳐내게 한다.
생각보다 한국인이 적고, 성별과 나이가 맞는 친구는 더욱 만나기 어렵다.
둘이서 의지하고 토닥이며 일상의 대부분을 함께 꾸려가는 모습을 보면 다행이지, 감사하다가도
또래들과 얼마나 놀고 싶을지 생각한다.
형은 동생에게 놀이나 대화의 기준을 낮춰야 하고, 동생은 불가능한 것도 일부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마음 약한 엄마는 차마 묻지 못한다.
엄마 말이 맞아,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한국 가고 싶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또 며칠을 앓을 테니까.
둘째 지안은 봄 학기부터 프리스쿨에 다닌다.
일 년을 쉬고 갈 뿐 아니라, 형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는 터라 학교를 안 간다.
자신만 유치원에 가는 게 싫고 이해되지 않을 법도 한데 그는 차분히 수긍했다.
유찬과 달리 지안은 의사소통이 거의 안되니 더 힘들겠지.
먼저 나서고 친근히 구는 성향과도 거리가 머니, 어쩌면 외로운 생활을 하리라 예상했다.
오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의 유치원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 우리 반에 Able 알지? 걔가 Rex를 좋아해"
"아 그래? Rex는 어떤데?"
"Rex도 좋아해, 그래서 둘이 매일 함께 놀아"
Rex는 작년, 지안이가 유치원을 한 학기 다니는 동안 친했던 친구다.
사실 소통이 어려운데도 함께 놀며 친해진 사실에 놀랐고, 한편으로는 Rex에게 고마웠다.
유치원을 다시 보내며 같은 반에 Rex가 있어 다행이라 여겼는데, 그는 지안이가 없는 동안 다른 친구들과 더욱 친해진 듯했다.
자연스레 그를 잊은 거다.
유찬이 물었다.
"너도 Rex와 놀아?"
"아니, 안 놀아"
"그럼 누구랑 놀아?"
"난 혼자 놀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나치게 덤덤한 목소리로 직접 들으니 코끝이 아렸다.
마음이 울렁울렁 흔들렸다.
한동안 말이 없었는데, 위로를 해야 하나 아무렇지 않게 다른 대화를 이어가야 하나 고민했다.
이런 순간들.
차가운 현실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상황이라든지,
한국이라면 이 같은 감정이나 어려움을 굳이 안 겪어도 됐을 텐데 하는 약간의 후회,
거기다 미안함까지 더하면 답이 없어진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 아침 마음의 준비가 되면, '엄마 나 이제 준비됐어, 갈래'라고 말해준다.
늘 그렇듯 믿기로 했다.
씩씩하게 집을 나서고 다정한 목소리로 오늘을 들려주는 그들을.
가족의 무한한 사랑과 인정이 마음을 채운다면, 감정의 너울 없이 충분히 잘 해내리라 믿는다.
여전히 기온이 낮은 겨울이지만, 바람결에 실려 오는 도시의 냄새가 청량하다.
가끔 머리와 가슴을 쓸고 가는 바람을 맞고 있자면 정신이 바짝 든다.
난 뭘 하고 있는 건지,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우린 왜 이곳에 왔는지.
낯섦 속에서도 부지런히 제 길을 가는 모든 것이 경이로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