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어에 꽂히고,
그는 말투에 꽂힌다.

by My din


결혼을 하면 싸움의 이유가 거창할 줄 알았다.

가치관이 다르다거나, 경제관념이 다르다거나, 인생 계획이 다르다거나 하는 그런 문제들 말이다.

그런데 막상 함께 살아보니 우리의 다툼은 대부분 아주 짧은 문장에서 시작된다.


집안일 상황을 예시로 들어보면 내가 “이거 왜 안했어?” 하고 말하면, 남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귀찮아. 난 원래 그렇게 안 해. 이게 편해.” 라고 답한다. 그 순간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


ChatGPT Image 2026년 2월 25일 오전 10_31_59.png AI로 만든 이미지 입니다.


‘원래’라는 말이 나는 쉽게 넘겨지지 않는다. 무엇이 원래이고, 누구에게 원래인지. 내가 말한 방식은 제안이 아니라 간섭이 되고, 남편의 방식은 ‘원래’라는 단어 하나로 정리되어 버린 느낌이 든다. 설명은 생략되고 결론만 남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곧바로 반응한다. “뭐가 원래야?”, “원래 그런게 어딨어”, “그렇게 귀찮으면 밥은 어떻게 먹고 살아?” 이미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높아져 있고, 말에 가시가 돋는다.


나는 단어에 꽂히는 사람이다. 말의 표면보다 그 안에 담긴 태도와 결론을 먼저 읽는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방금 던진 말투를 먼저 듣는다. “왜 말꼬리를 잡아?”, “말 좀 부드럽게 하면 안 돼?”, “꼭 그렇게 말해야 해?” 나는 내용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태도가 문제라고 느낀다. 나는 “원래 그렇게 안 해”라는 단어에 걸리고, 남편은 내 말의 온도에 걸린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서로 다른 지점을 붙잡고 싸운다. 나는 단어를 설명하라고 하고, 남편은 말투를 고치라고 한다. 대화는 같은 자리를 맴돌고, 감정만 조금씩 올라간다.


연애할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만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불편한 공기가 생겨도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며 식힐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은 다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하루를 공유하고, 사소한 말들이 반복된다. 무심코 던진 한 문장이 그날의 분위기를 오래 붙잡는다. 싸운 날 밤이면 우리는 같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지만, 각자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불은 꺼져 있고 방 안은 조용한데, 이상하게 더 멀게 느껴진다. 같은 이불을 덮고 있지만 공기가 다르다.


나도 안다. 기분이 상하면 말투가 먼저 달라진다는 걸. 그래서 한동안 ‘말 예쁘게 하는 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감정은 낮추고, 속도는 줄이고, “나는”으로 시작하기. 영상 속에서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막상 “난 원래 그렇게 안 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간다. 결국 나도 쏘고, 남편도 쏜다. 누구 하나 일부러 상처 주려는 건 아닌데, 반응이 너무 빠르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 못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지점에 먼저 반응해서 싸운다.


결혼은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말의 습관을 조율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단어에 흔들리고, 그는 여전히 말투에 흔들린다. 그래도 조금씩은 속도를 늦춰보려 한다.


오늘도 유튜브에서 본 무지개 톤으로 하루를 시작해본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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