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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혁 Jul 07. 2020

로봇, 인간 그 경계

영화 - Blade runner 1982

대학 생활동안 처음으로 글쓰기 과제를 하는 것 같다. 항상 문제를 풀어 제출하는 레포트만 했었는데 뭔가 색다르기도 하고 요즘 글을 조금이나마 끄적이는지라 전만큼 글쓰기가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주제 자체도 요즘 관심있게 보고 있는 분야에 대해 정해져서 더 관심을 가지고 과제를 했던 것 같다. 사실 이 수업을 신청할 때만 해도 삶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진지하게 해답을 찾기 위해 토론하는 식의 수업을 기대 했지만 실상은 전에 존재 했던 철학적 이론들을 수박 겉핡기 식으로 살펴보는 정도여서 적잖이 실망했다. 철학 수업에 대한 로망 같은게 있었나 보다. 그래도 주먹구구식 교수님은 아니라 다행이다. 뭐 어쨌든 과제를 하면서도  글쓰기 프로젝트를 노려서 겸사겸사 한 것도 있으니 한 번 읽어 보시길...




Q. 로봇(또는 컴퓨터, AI, 프로그램, 안드로이드, 사이보그, 기계 등)이 등장하는 SF 영화를 한 편 골라, 그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이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마음을 가지고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시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복제인간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개발된 일종의 ‘노예’다. 하지만 단순히 일만 하는 기계와는 달리 인간의 기억을 기반으로 설계돼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고한다. 또한 반란을 일으키거나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기도 하는 등의 감정도 갖는다. 외관상 인간과 다르지 않은 영화 속의 그들을 보며 우리는 그들이 표출하는 감정에 공감하게 된다. 심지어는 그들을 인간과 동일시하여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복제인간(혹은 로봇)이 나타내는 감정, 생각의 실체는 무엇인지, 어떤 점에서 우리가 로봇을 인간처럼 인식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로봇의 감정 혹은 생각이 인간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심리철학의 기능주의에 따르면 인간이 표출하는 감정과 복제인간이 나타내는 감정은 기능적으로 같다. 심적 상태의 실재를 전제로 하는 기능주의는 인간에게서의 ‘마음’과 기계에서의 ‘함수’가 서로 동일선 상에 있다고 본다. 인간과 기계에 같은 값을 입력했을 때, 출력되는 값이 같으면 이 둘은 같은 심적 상태를 가진다는 것이고, 이는 인간이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계도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제인간 로이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여 눈물 흘리는 장면을 예로 들어 보자. 눈물을 흘리기까지의 메커니즘이 복잡한 함수를 이용한 기계 작용이라 할 지라도 결국 어떠한 원인에 의해서 ‘눈물’이라는 결괏값이 출력된 것을 보아 메커니즘과 기능 자체는 인간이 눈물을 흘리는 것과 동일하다는 입장이 기능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같다고 해서 과정이 같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고 과정에서 인간만이 가진 것, 인간과 기계를 구분 지어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빅데이터, 머신러닝 등을 이용한 AI 로봇들을 비롯해 기계의 능력치는 이미 인간의 것을 뛰어넘었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섬뜩함을 느꼈다고 했다. 논리력 측면에서 봤을 때 더 이상 기계의 사고가 결코 인간의 사고 능력에 뒤쳐졌다고 볼 수 없다. 기능주의에서 강조하는 기능의 측면은 이미 만족되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논리력을 갖추었다고 해서 우리는 기계가 스스로 생각한다고 믿지 않는다.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에 내가 정말 보고 싶었던 주제의 동영상이 뜬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기계를 인간처럼 사고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고와 기계의 어떤 점에서 다를까. 인간이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쉽고 자연스럽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우리가 기억 속에서 어떤 단어나 순간을 찾지 않아도 사고할 수 있으며 순간적으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반면 기계의 사고 과정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함수를 충실히 따른다. 데이터가 없다면 출력되는 값도 없으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못한다. 원래 가지고 있던 데이터를 가지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일 뿐 새로운 감정이나 생각은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처음 맛보는 음식을 먹는다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느낌을 표출할 수 있지만 기존에 없던 데이터를 받아들인 로봇은 오류가 날 것이다. 인간도 경험으로 쌓인 기억들이 사고의 기반이 된다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태어나서부터 가지는 감정과 사고들은 인간이 기계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예시일 것이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보아 로봇의 사고는 인간의 사고와 같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인간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영화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라는 슬로건으로 로봇을 만들지만 대부분의 로봇이 노동, 전투, 성적 쾌락에 이용되다 쉽게 폐기된다. 인간의 입장에서 로봇은 로봇일 뿐이다.


그렇다면 훗날 인간의 생각 회로를 완벽히 카피한 로봇이 발명된다면 어떨까. 인간과 같은 신체구조로 작동하는 로봇은 인간과 같다고 봐야 하는가 아니면 로봇은 로봇으로만 대하는 것이 맞는 가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로봇을 인간이 마음대로 제조하고 없애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남아 있다. 인간은 굳이 그런 머리 아픈 길을 가지 않겠지만 인간의 권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기 때문에 언젠간 맞닥뜨릴 이 문제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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