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재혁 May 11. 2020

발렌시아 회고록(1)

긴 이야기

  



2018년 8월 말 발렌시아에 홀로 떨어졌다. 유럽여행을 한 번 경험했던 터라 두려움은 없었고 오로지 기대감만 가득했다. 집을 보러 다닌 날, 공기가 무겁고 뜨거웠다. 마지막 집을 보고선  숙소로 돌아가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다 떨어졌다. 날은 어두워지고 숙소 근처인 거 같은데 길을 찾지 못해 계속 주위를 맴돌았다. 어찌어찌 물어물어 겨우 도착한 선풍기도 없던 방 안에서 무더운 첫날밤을 보냈다. 


  외국 친구들과의 시끌벅적한 동거에 대한 로망이 있던지라 유쾌한 룸메들이 있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대학가 주변으로 blasco ibanez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다녔지만 소득은 없었다.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Cabanal의 방을 보게 됐는데 창문으로 조그맣게나마 보이는 바다에 바로 계약해 버렸다. 위험하다고 소문난 까바냘에 방을 구하다니. 시내에 가려면 족히 30분은 열심히 자전거를 타야 한다. 그래도 바닷가 3분 거리에 산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수건 하나 달랑 들고 매일매일 바다에 갔다. 귀까지 물에 담그고 물에 둥둥 떠 있으면 그보다 더 평화로울 수 없다. 내가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는 온몸으로 가장 가까이, 가장 확실하게 자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에 들어가면 온 몸으로 그 감촉을 느낄 수가 있으니 말이다. 뜨거운 태양에 몸을 말리고 적시고를 반복하며 새까맣게 탄 내 피부마저 자랑스러웠다. 여름 바다에 들어가 바다를 등지고 모래사장을 바라보면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다 방향에도 핑크빛 하늘이 물들어 이쁘지만 나는 바닷물에 노을이 비쳐 마치 타는듯한 바다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오션뷰 옥상.
거실

  바닷가 로망에 취해 있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까바냘은 히피들이 사는 동네다. 여름의 뜨거운 아지랑이가 거리의 찌린내를 돋워 주었으며 부랑자들도 종종 보였다. 동양인인 내가 지나가면 쳐다보는 노인분들도 많았다. 도시의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거칠고 원초적인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알아보고 갔던 학교 수업은 개설이 되지도 않았고 처음 접하는 스페인 대학교 플랫폼에 꽤나 고생했고 학교는 왜 그렇게 복잡하던지 생겼던지...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학과 사무실에 가서 되지도 않는 스페인어로 대화를 시도했던 내가 애처롭고 용감하다. 음식까지 나를 괴롭혔다. 누가 한국음식과 스페인 음식이 비슷하다고 했나... 게다가 내 유일한 낙인 쇼핑은 꿈도 꿀 수도 없었다. 이 곳이 내가 일 년을 살아야 할 곳이라니. 살 곳이 버텨야 할 곳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당시에는 서유럽 근처에서 유학하는 친구들이 부러워졌었다. 위치도 위치이거니와 서울에서 온 나에게는 발렌시아 적응이 쉽지 않았다. '나는 역시 대도시에 살아야 해'라고 수없이 생각했다. 

장 보러 가던 길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던가. 하나, 둘 귀여운 모습들을 발견해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색을 정말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해가 질 때면 어두워지는 하늘과 타오르는 태양 사이의 그라데이션과 노을에 반짝이는 바다는 황홀했다. 스페인의 작열하는 태양은 눈부셨다. 모든 사물이 제 색을 온전히 갖도록 했다. 특히 오후 햇살의 찐득함의 농도는 서울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끈적한 바닐라 아이스크림 색. 색 매니아인 나에게 까바냘의 색색들이 타일 무늬로 아기자기하게 지어진 집들이 오래전부터 어여쁜 모습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그중에는 종종 점심을 때우곤 했던 케밥집과 카페 그리고 달마다 핸드폰 충전을 하던 타바코가 있었는데 그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던 건물은 파란 타일의 케밥집 건물. Carrer de la Reina 237.


녹진


 발렌시아에 조금씩 적응해 갈 쯤에는 날도 추워졌다. 스페인은 일 년 내내 따뜻할 거라 생각했던 내 실수였다. 물론 한국의 추위와 비교할 건 못되지만 얇은 옷을 입고 나간 날은 쌀쌀한 날씨에 꽤 혼쭐이 났던 것으로 기억난다. 12월로 접어드는 시기에 좋은 인연을 만났다. 금방 떠나보내야 했지만 덕분에 겨울 내내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사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만이 가진 유일한 권력이다. 어떤 것이든 사랑스러운 감정을 불어넣던 힘을 가진 사람이었고 덕분에 세상 모든 게 귀엽게 보이던 시기이다. 특히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취미였던 우리는 스페인 사람들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알게 되었다. 


스페인 사람들 얘기가 나와서 조금 하자면 사실 나는 우리와 크게 다른 건 느끼지 못했다. 다만 조금 더 여유롭다. 감정적으로든 실제 생활로 써든. 유럽 여러 나라에서 당연한 매너지만 문을 잡아준다거나 마트에서 항상 소소하게 장을 보는 나 먼저 계산하게 해 준다거나 등등,,, 뭐 물론 말도 많고 시끄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페인에서 내가 정말 크게 깨달은 것은 날씨가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정말이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날씨의 지배를 받게 된다. 스페인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 미세먼지 걱정에 마스크에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우리 모습과는 대비된다. 우리만의 잘못이 아니라 날씨도 한몫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들이 연속이다. 건물들도 높지 않아 길 곳곳에 햇빛이 스며들고 사람들은 길거리 바 바깥 자리에서 에스프레소와 꼬르따도, 맥주를 즐긴다. 바닷가는 항상 선탠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햇빛이 있으면 있는 대로 맞는다. 선크림을 안 바르는 것은 아니지만 필수품은 아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 사람인 것이 티가 난다. 허옇게 바른 선크림이 그 증표이다. 한 번쯤 덜어내고 사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타고 까무잡잡하면 어떠랴.



스페인에 있으면서 몇 가지 새로운 것들을 해보았다. 사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그렇게 외향적인 사람은 아닌지라 한국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를 움직였던 건 '시간'이라는 것에 대한 강박 아닌 강박 같은 게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얻어야만 한다, 일 년 안에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압박이 알게 모르게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서 까지 굳이 일 년을 선택해서 온 나에게 혹은 부모님에게 변명거리가 필요했다. 


  글쓰기도 그중 하나였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것도 스페인에서부터 였다. 글을 쓰면서 '글을 쓴다'는 자체가 내 안에 있는 감정의 배설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느꼈다. 굳이 배설이라고 한 이유는 처음 글을 썼던 시기의 글들을 다시 보면 우울함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내가 힘든 날, 우울한 날들에만 표현할 곳 없는 내 감정을 글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조금이나마 풀어보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지만 한 번 배설하고 나면 화장실에 갔다 온 듯 속이 시원하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머리로만 맴돌던 생각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온전히 내 것이 되게 할 수 있었는데 이 것은 퍽 좋은 일이지 않나 싶다. 좋은 생각, 영감들이 머릿속에서만 부유하다 날아가버리지 않게 한 편에다 오래오래 저장할 수 있다. 사실 나는 내가 쓴 글을 보는 게 아직까지는 부끄럽다. 항상 감정이 넘쳐오를 때 글을 쓰기 때문에 차분해진 상태에서 마주 보는 게 어색하고 민망하다.


일기장에 썼던 스페인어로 썼던 또르띠야 데 빠따따 레시피 ㅋㅋ




2부에서 계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