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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연 Dec 07. 2015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바로 '그날'

소재원 작가의 위안부 소설

 지난주,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다른 칸으로 가려는 한 남자가 서있던  할아버지의 어깨를 '툭' 치고 갔다. 미안하다는 말도,  목례도 없이 그냥 지나치자, 할아버지는 그 사람을 불러 세웠다. 그런데, 그 남자는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들었고, 그 모습에 할아버지는 삿대질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는 듯이 무시하고 제 갈길을 갔다. 사과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겁박을 당한 할아버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억울한 듯 한참을 분노에 떨었다.               




할아버지의 분노가 이해가 갔다. 나 같아도, 그 사람을 쫓아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분노가 마음 속에 가득했을 것 같다. 문득,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소설이 생각났다. 바로 위안부 소설 '그날'. 일상 속에서 부딪히는 억울한 상황에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한 사람을 가장 치욕스러운 기억 속에 가둔 일본의 만행에 어찌 두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있었을까.

치욕스러운 기억에 평생 분노에 살았을 위안부 할머니들. 사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위안부 할머니를 응원하고, 일본의 미온적 태도에 분노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가 겪었던 일이라고 '직접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에 결국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었다. 혹시, 당신도 그렇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소설 <그날>은 수탈이 극심해지면서 한반도를 병참기지로 삼고, 전시동원을 하던 일제 말을 배경으로 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순정을 간직한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순정'을 나눈 정혼자 신수철, 오순덕.

신수철은 18살에 강제 징병으로 전쟁터로 내몰린다. 그는 만주에서 총상을 입고 균에 옮아 한센병에 걸린다. 그렇게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 수용한 소록도로 끌려가고, 그 곳에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도 짓밟힌 채 살아간다.

오순덕은 동네 이장 말대로 공장에 돈을 벌기 위해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당한다. 천황폐하께 충성을 할 수 있는 영광이라며 일본군에 치마가 벗겨지고 겁탈당했다. 반항하면 기절할 때까지 때리고, 칼을 휘둘렀다. 하루에도 수십 번 들이닥쳐 괴롭혔다.


졸지에 성노예가 되어버린 오순덕.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인 수 많은 조선의 처자들. 그중에 반은 정신을 놓기도, 자살했다. 일본군들은 도망가려 뛰쳐나가는 여인을 죽이기 위해 떼로 달려들기도 했다.


오순덕은 그곳에서 만난 친구 하춘희를 통해 독립의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일본이 패망했을 때 그들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글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작지만 큰 독립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강요에 못 이겨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 그리고 순정을 다 바친 그 정혼자를 위해 버텨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오순덕은 사과를 받았을까. 일본은 이런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고도 사과는커녕 ‘매춘부’라고 이야기한다. 만약 당신의 이라면 어떻겠는가. 이것이 당신의 청춘을, 평생을 족쇄처럼 자리 잡고 있는 기억이라면 어떻겠는가.


일제강점기, 가장 잔인한 운명에 처해진 두 남녀. 비단 허구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 소재원은 "작가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이라며 "창작이 아닌 역사를 기록하고 싶었다" 말한다.


나를 17살로 돌려주오


1994년 8월 14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증언을 나선 故김학순 할머니의 외침이었다. 그들에겐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군홧발에 유린당한 청춘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시간을 되돌려 달라는 할머니의 외침은, 결국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적어도 그 못된 짓을 한 인간들에게 제대로 된, 진심이 담긴 사과는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주말에 위안부 피해자 최갑순 할머니가 별세했다. 올해에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9명이 세상을 떠났고, 이제 생존자는  46명뿐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말했다. 잊지 말자 그들의 청춘을, 우리의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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