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연 Oct 30. 2015

귀를 자른 천재화가 반 고흐, 그 광기 뒤엔…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그의 삶을 엿보다


출처:wikimedia commons


# 푸르스름한 털모자를 쓴 누런 얼굴, 어딘가 응시하고 있지만 고독해 보이는 눈, 고집스러워 보이는 매부리코. 하얀 붕대로 귀를 싸맨 한 남자가 파이프를 물고 있다. 자신의 귀를 잘라 매춘부에게 "잘 간수하라"며 하얀 종이에 담아 주었다는 일화 때문일까.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은 광기가 서려 보인다.



이 책을 읽기 전 까지 그의 그림 속에 엄청난 고뇌가 담겨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의 삶의 태도에 대한 존경김이 생겼다.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네덜란드의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와 남동생 테오, 가족 및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엮었다.


고흐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881년 28살의 나이었다.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가난에 시달리던 고흐는 유화물감이 다 떨어지면 데생을 하고, 필요한 물감 색 목록을 적어 동생에게 사달라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때로는 고질적인 가난 때문에 넌덜머리가 나서 '파멸'을 이야기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처절하게 고민하며, 더 열심히, 더 열정적으로, 동생과 자신의 야망을 위해 밤낮없이 작품에 몰두했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약 1년이 지난 즈음의 편지에서는 자신의 발전에 기뻐하며 동생에게 칭찬을 기대하는 순수한 모습도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흐는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유를 느낀다. 하지만 그림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구절은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사람을 바보처럼 노려보는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그 위에 무엇이든 그려야 한다. 너는 텅 빈 캔버스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모를 것이다. (…)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 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확신 힘 열정, 그의 삶이 녹아있는 세 단어

가 가장 초라해보이고 힘들었던 때는, 취업준비를 하던 때였다. 자기소개서를 써야하는데 하얀 워드파일에서 껌뻑이는 커서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보잘것 없어보이는 나의 경력, 무의미한 하루하루, 꿈과는 평행성을 달리는 일상. 그럴때 고흐의 편지는 내 영혼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위대한 일이란 그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이루어진다


이 말은 눈물이 날만큼 힘이 됐고, 무의미한 하루를 유의미하게 보낼 수 있는 노력을 하게 만들었다.


열정으로 다져진 그의 의지에 어떤 보답이 있었을까? 안타깝지만 그에겐 어둡고 혼란스러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1888년, 고흐는 프랑스 아를에서 화가 공동체를 꿈꾼다. 고갱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작품에 더욱 열중한다. 고흐는 이 시기에 '해바라기', '씨 뿌리는 사람',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포럼 광장에 있는 밤의 카페테라스'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명작들을 완성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고갱과 고흐는 예술에 대한 견해 차이로 논쟁이 잦아졌고, 큰 말다툼 끝에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기까지에 이른다. 이 사건으로 고갱은 파리로 떠나버리고, 고흐의 발작과 환각 증상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동네 주민들의 고발로 병원에 강제 입원하게 된다.


"사랑하는 동생아, 너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아서 그걸 모두 갚으려면 내 전 생애가 그림 그리는 노력으로 일관되어야 하고, 생의 마지막에는 진정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유일한 문제는 그림 그리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늘 이렇게 많이 그리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다."


동생의 절대적인 믿음과 경제적 지원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 고흐에게는 큰 짐이었나보다. 발작으로 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림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해졌다. 물감 튜브를 빨아먹다가 발작이 진정되면 그림을 그리곤 했다. 1890년 7월 스스로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했고, 동생 테오에게 "이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고흐가 죽은지 6개월 후 동생 테오도 숨을 거둔다.


광기로 서려 보였던 그의 자화상, 다시 보니 참 애처롭다.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 자극적 일화들이 그의 그림을 온전히 보고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었던 건 아닐까. 책을 통해 알게 된 그의 삶은 너무나도 외로웠다. 하지만 확신과 힘이 있는 삶의 태도,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에게도 영감을 불어넣기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막'에 울그락 불그락 해본 적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