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연 Dec 27. 2015

인간에게 '고통'은 어떤 의미일까

정호승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우리는 사랑하는 부모 혹은 자식의 죽음, 갑작스러운 질병이 찾아오는 것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한다. 인간에게 '고통'은 어떤 의미일까. 시인 정호승은 "인간에게 고통이란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과 같은 삶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한 일간지에 연재한 정호승 시인의 칼럼과 새로 쓴 글을 더한  산문집<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명상화가' '시 같은 그림'으로 유명한 박항률 화백의 그림이 함께 실려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책에는 정호승 시인의 소박한 일상이 담겼다. 다시는 잡을수 없는 아버지의 손을 그리워하고, 지금은 장정으로 성장한 아들의 아기적 발가락을 떠올리며 미소짓기도 한다.  

정호승 시인은 특히 '고통'에 주목한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누구에게나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오는 고통을 피해갈 길은 없는 법.  이 고통을 어떠한 태도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고 말한다. 고래의 상처에서 생겨난 부산물이 향수의 원료인 '용연향'이 되기까지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하는 것을 예로 든다.

한여름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과 비바람을 이겨낸 벼를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20대 청년들에게는 인생의 쓴맛을 한껏 음미하길, 자살의 유혹에는 침을 뱉으라 말한다.


또한, 정호승 시인은 나의 고통이 아니면 다행이라 여기고, 모두 네 탓이라 남을 원망하는 태도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사회의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두 사람이 똑같은 걸 보면서도 그것을 서로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왜 인정하지 않느냐"고 일침을 가한다. 가톨릭 신자인 그가 절에 들러 부처님께 절을 하고, 법정스님과 성철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는 모습에서 우리가 어떻게 소통하고 화해해야할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산문집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를 통해 시인 정호승이 아닌 '인간' 정호승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자연의 섭리에서 삶의 본질을 찾는 그의 글은 진리와 맞닿아있다. 바쁜 일상에 매몰된, 알고 있지만 잊어버린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상기시킨다.


 '가끔은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보세요'

내 인생을 지구라고 생각하고, 우주의 크기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지금 내 삶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일들, 결코 원하지 않는 슬픔이나 비극들은 아주 사소한 먼지와 같은 의미를 지닐 것이다. (중략) 넓은 우주 속에 떠도는 모래알보다 작은 지구, 거기에서 또 티끌보다 작은 나라에 살면서 마음 상한다고 상하고, 절망에 빠진다고 절망에 빠지는 내가 그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깊게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말한다. 우주는 지구가 얼마나 작고, 그 속에 사는 인간이 얼마나 작고, 그 인간이 이루는 삶 또한 얼마나 사소하나를 증명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책77p)


 나는 산에 오르거나 높은 빌딩에 올랐을 때 시야가 확 트인 광경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곤 한다. 성냥갑보다 작은 차들, 그리고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 '그동안 내가 저 밑에서 얼마나 안달복달하며 살았던 걸까' 새삼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됐다. 이 책에서 읽었던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욕심과 고통에 매몰돼 있다면, 시인의 말대로 광활한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보자. 존재의 하찮음, 존재의 감사함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팔팔한 육체에 감사를…젊음에 찬사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