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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Dec 22. 2021

크리스마스엔 하얀 코끼리?

홍콩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첫 연말 시즌을 맞이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약 2주 정도 앞두고 부서 사람들과 크리스마스 런치 파티를 하기로 했다. 팀원들은 어떤 테마로 파티를 할지 토론 중이었다.


"크리스마스엔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지! 아니면 비밀 산타(Secret Santa)로 할까?"


코끼리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나는 다른 동료에게 다시 물어야 했다. 아니 여기서 코끼리가 왜 나와...? 동료는 내게 화이트 엘리펀트 선물 교환식(White Elephant Gift Exchange)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크리스마스나 연말 파티에서 종종 하는 게임이라고 했다. 시크릿 산타는 학창 시절 하던 마니또 게임이다. 어릴 적엔 게임을 하지 않아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던 때가 있었고, 중국에 유학을 가서는 크리스마스나 연말은 기말고사 기간이라 특별히 따로 파티를 열어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일은 생각하지 못했다. 홍콩에 오고 나서 화이트 엘리펀트나 시크릿 산타가 연말 파티에 빠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심지어 화이트 엘리펀트 공식 규칙을 알려주는 웹사이트도 있다.




화이트 엘리펀트(White Elephant)라는 단어는 원래 활용도에 비해 유지비용이 아주 많이 들거나 비싼 것, 혹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엄청난 부담 등을 뜻한다. 이 표현은 동남아에서 신성시하는 하얀 코끼리에서 유래되었다. 과거 버마, 태국, 라오스 왕국 등에서는 신성한 하얀 코끼리를 가진 것이 왕조의 힘의 상징이 되고, 또 왕국이 평화와 번영의 축복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왕들은 신하에게 하얀 코끼리를 선물로 주기도 했는데, 이는 받는 사람에게 축복이자 저주였다. 실상 하얀 코끼리는 노동에서도 제외되었기 때문에 신성한 뜻과는 달리 유지비용만 많이 드는 애물단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화이트 엘리펀트는 재미있고 실용적이지 않은 물건들을 가지고 와 교환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그룹에 따라 선물의 가격대나 조건을 걸기도 하기 때문에 꼭 실용적이지 않은 물건만 가지고 오지는 않는다.

Photo by Olesia Buyar on Unsplash


화이트 엘리펀트의 규칙

1. 참가자들은 모두 선물을 포장해 가져와 한 곳에 모두 모아둔다.

        - 주최자가 선물의 종류, 가격대 혹은 다른 조건을 정할 수 있다. (예: 현금, 기프트 카드 등을 제외한 1-3만 원대 선물)

        - 게임의 테마를 정할 수도 있다. 북클럽에서는 책을, 동창회에서는 학창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선물을.

2. 참가자들은 제비뽑기로 선물을 고를 순서를 정한다.

3. 선물을 모아둔 곳에 둘러앉는다.

4. 첫 번째 참가자가 선물을 고르고 모두 볼 수 있게 포장을 연다.

5. 다음 참가자는 아직 뜯지 않은 선물 중 하나를 고르거나 앞사람이 고른 선물을 훔쳐 올 수 있다. 선물을 빼앗긴 사람도 마찬가지로 풀에서 고르거나 다른 사람의 선물을 훔쳐온다.

        여기서 원할 경우 다른 조건도 추가할 수 있다.
        - 세 번 이상 선물을 빼앗긴 사람은 아웃 -- 더 이상 해당 참가자의 선물을 빼앗을 수 없다;

        - 한 물건을 세 번 이상 훔칠 수 없음 -- 네 번째 주인이 선물을 가져가는 것으로 확정된다;

6. 마지막으로 첫 번째 참가자에게 선물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 외에도 추가 변형이 가능하다.




북클럽에서 한 화이트 엘리펀트


지난 몇 년 간 이 게임으로 받은 선물로는 미니언즈 램프처럼 내게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처럼 마음에 쏙 드는 것도 있었다. 또 2년 전에 아주 번듯해 보이는 선물을 열었을 때 안에서 두루마리 휴지 10개입 두 세트, 물티슈, 양파 2개(!)가 나와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던 적도 있다. 물론 아무도 내가 연 선물을 빼앗아가(기를 바랐으나 그렇)지 않았다. 한 달 뒤 코로나로 생필품 사재기가 시작될 때까지 그렇게나 유용한 선물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말이다.


2020년 몇 년 만에 이 게임 없이 조용한 연말을 보냈다. 그리고 올해, 바깥세상은 아직도 코로나로 비상이지만 많은 방면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이곳에서는 다시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축하하는 모임이 시작됐다. 상점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판매하는 물건들이 많이 보이고, 길에는 예쁘게 포장한 물건을 양손 가득 들고 행복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늘었다.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한 모임에서 화이트 엘리펀트를 했다. 선물을 고르고 나서 포장을 뜯기 전의 설렘과 내가 원하는 것을 앞사람이 먼저 뽑았을 때의 아쉬움, 내가 고른 선물을 누가 빼앗아 갈까 봐 걱정되는 마음 그리고 내가 사 온 선물을 서로 갖겠다고 싸울(?) 때 흐뭇한 마음이 게임 내내 계속됐다.


Photo by krakenimages on Unsplash

아무래도 요즘 상황에는 많은 이가 모이기는 어렵지만 가족들과, 또 가까운 사람들과의 모임에 소소한 재미를 줄 하얀 코끼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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