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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Feb 22. 2022

사자를 닮은 소녀

책 읽기 프로젝트 50 #7

그다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한국을 떠나 살고 있지만 말만 하지 않으면 이곳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외모라 이방인 취급을 당할 일도 별로 없다. 그래도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일을 굳이 하나 꼽아 보자면 “언어"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 중국에 갔을 때, 같은 학교 한국인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일 기회가 있었다. 열 다섯 명 남짓한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내가 입을 열자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나만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내 주변에는 사투리를 쓰는 사람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사투리를 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제는 달랐다. 나는 남들과 달랐고, 그 점이 두드러져 보였다. 나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는 문제가 없었고, 그들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하기가 싫었다.


<사자를 닮은 소녀>는 남들과 다르게 태어난 한 소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보여 준다. 소설은 주인공 에바가 해외에서 공연 무대에 오르기 전, 서커스 단장이 그녀를 소개하는 광고 멘트로 시작한다.



에바는 1912년 작은 기차역에서 역장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성가대에서 오르간을 치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에바는 태어나던 날 아버지에게 외면당했다.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이고, 또 온몸이 금색 털로 뒤덮인 채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 함께 있었던 의사와 약사 부부가 잠시 돌봐주었고, 곧 보모를 구해 아버지와 보모 그리고 에바 셋이 함께 기차역 집에서 살았다. 자라면서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금색 털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라면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늘 남의눈을 피해서 살아야 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도 학생들은 그녀를 놀리고 괴롭혔다. 에바는 남들과 같지 않았지만, 남들과 같은 경험도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에바는 같은 반 친구와 가까워지면서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아버지는 방을 나설 때마다 소리 나지 않게, 그러나 매우 단호하게 문을 닫았다. 찰칵, 소리가 날 때까지 문을 끌어당겼다. 아버지는 아이도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도 문은 확실하고 철저하게 닫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p173


한편 에바의 병은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던 특이한 것이었다. 자신을 어렸을 때부터 관찰했던 노르웨이의 유명 의사는 에바의 케이스를 자신의 연구 사례로 정하고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의학 총회에 데려간다. 에바는 아버지와 함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살던 마을을 벗어나 멀리 덴마크까지 여행을 하게 되었다. 온몸을 뒤덮은 털을 없애는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 하지만 그곳에서는 많은 의사와 연구자들 앞에서  ‘연구 사례자'로 옷을 벗고 실험체가 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날 밤, 다른 ‘연구 사례자'로 참가한, 온몸이 비늘로 뒤덮인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속해있는 유람단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을 포함해 샴쌍둥이, 키가 몇십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사람, 가슴에 머리가 하나 더 달린 사람, 힘이 아주 센 사람 등 남들과 아주 다르지만 그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속해있고,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소설은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며 에바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은 마을에서 남들과 다르게 태어나 겪을 수밖에 없었던 수모와 차별, 외로움과 절망, 하지만 그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까지 읽다 보면 마치 독자가 에바가 된 것처럼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에바가 자라나며 겪는 일들을 잘 대처해가기를 응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로움은 이런 것이다. 너무나 외로워서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외로움은 더욱 강렬해진다. 그럴 때면 선택을 해야 한다. 미친 듯 소리를 질러 보거나 방 안에 가만히 앉아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p.223
그 독립심은 내가 비참한 고통에 이르렀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p.319


소설에서는 외모를 통해 남들과 다른 삶에서 얼마나 감내해야 할 것들이 많은지를 보여 준다. 평범한 것이 오히려 권력처럼 느껴진다. 평범한 삶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들 말한다. 남들이 가진 것만큼 있어야 하고, 남들이 하는 것만큼 해야 하고, 너무 특출 나거나, 또 너무 못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게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우리는 이질적인 것을 배척한다. 특히나 누군가 선택한 것이 아닌 선천적인 것으로 말이다. 에바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의심한다. 어떻게 그렇지 않겠는가. 일생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괴물'로 보였으니 말이다. 에바는 휴양지에서 만난 한 아름다운 부인에게 그녀처럼 아름다워지고 싶다고 말한다. 

어릴 때는 삶 자체가 아름다움이란다. 아름다움은 모든 것의 목적이자 의미가 될 수도 있어. 아름다움은 동경과 유혹이자 그 자체만으로도 신에 이르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단다. 시인들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제할 수도 있다고 했어. 그런데 아름다움이 뭘까? 무엇이 진정한 아름다움일까? 나는 아름다움의 공허함과 덧없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세월을 보냈단다. p.460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외관의 아름다움도, 내면의 아름다움도 시대와 장소에 따른 기준에, 혹은 누군가의 잣대에 의해 평가받는다. 꼭 그래야만 할까? 삶 자체가 아름다움인데 말이다. 소설을 덮으며 생각했다. 에바는 아름답다.


3개월도 채 지속되지 않은 나의 보잘것없는 경험도 나에게는 큰 영향을 준 일이었는데, 일생을 그렇게 남들과 다름을 느끼며 살아가야만 했던 에바의 고통을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서 다시 첫 장면을 읽었다. 에바가 어째서 그런 결정을 했는지, 그게 최선이었을지, 그리고 그 후에 본인의 삶이 나아졌다고 생각했을지 궁금했다. 에바가 행복하기를. 


노르웨이 작가 에릭 포스네스 한센의 <사자를 닮은 소녀>는 2006년 출간되어 노르웨이에서 좋은 평을 받고 2016년 The Lion Woman으로 영화화되었다. 책을 읽으며 쉽게 상상되지 않던 에바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했을지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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