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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Mar 02. 2022

디오게네스 변주곡

책 읽기 프로젝트 50 #8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셜록 홈즈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셜록 홈즈>를 읽었거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나오는 영화 <셜록 홈즈> 혹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드라마 <셜록>을 보았거나, 아니면 샤이니의 Sherlock(셜록)이라도 들어봤을 것이다. 셜록 홈즈에게는 형이 있다. 마이크로프트. 마이크로프트는 영국 정부에서 일을 하고 셜록보다도 뛰어난 두뇌를 가졌다. 그는 디오게네스 클럽이라는 곳을 만들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는 싫어하지만 조용한 곳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신문이나 잡지를 보거나 사색을 즐기는 이들이 오는 클럽이다. 누군가 소리 내어 말하기만 해도 쫓겨날 수 있는 그런 클럽이다. (요즘 말로) 미니멀리즘 생활을 주장한 철학가의 이름을 딴 이 클럽처럼, 찬호께이도 자신의 등단 10주년 기념 단편집에 같은 이름을 붙였다.



작가 후기에서 찬호께이는 그저 여러 편의 단편을 이어 붙여 한 권의 책에 밀어 넣는 방식이 아니라, 모음곡 형식으로 포장해 잘 갖춘 모습으로 내놓고 싶었다고 했다. 책의 목차를 보면 마치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 오늘 연주될 교향곡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14편의 단편과 3편의 습작의 순서 배치에도 신경을 써서 마치 4악장으로 구성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중간에 쉬어가는 습작을 제외한 14편의 작품에는 각각 어울리는 곡이 시간 부분에 표시되어 있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새로운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작가가 이 음악들을 하나의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로 묶어서 만들어두었는데,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몰라서 하나하나 찾아가며 들었다.


찬호께이의 디오게네스 변주곡은  빠르게 시작해 긴장감을 높이며 사람을 끌어들인다. 우리가 일상에서 늘 접하고 있는 주제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쪽으로 방향을 튼다. 다만 지난 2008년 등단부터 책을 출간할 때까지 10년간 쓴 이야기를 모은 것이라 시대가 조금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이야기를 읽어 나가는데 크게 방해되지 않는다. 특히 찬호께이 데뷔 시절의 SF 단편은 추리소설집(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보기 힘든 조합도 흥미롭다.


대부분 다 좋았으나 특히 마음에 들었던 단편들을 꼽아보면 전주곡(Prelude)인 <파랑을 엿보는 파랑>, 그리고 왈츠의 속도로(Tempo di valse) 진행하는 <시간이 곧 금>, 슬프고 느리게(Lento Lugubre) 이야기를 이어가는 <추리소설가의 등단 살인>, 그리고 피날레인 <숨어 있는 X>였다.


<파랑을 엿보는 파랑>은 한 블로그를 읽는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블로그의 주인은 자신의 이름이나 사는 곳 같은 개인정보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유추할 수 있는 정보는 너무나 많다.

현대인은 자기 집 유리창은 불투명 유리로 바꾸면서 인터넷에는 사적인 정보를 마구 공개한다.


10년 전 이야기라 블로그로 쓰여있지만, 인스타그램으로 바꾸면 어떤가. 우리도 이렇게 우리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공개하고 ‘공유'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현상이 우리를 얼마나 위험하게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시간이 곧 금>에서는 사람의 시간을 사고파는 흥미로운 거래소가 나온다.


시간자를 조종하는 기술은 사람의 의식에 영향을 줄 뿐입니다. 물론 ‘의식'이나 ‘관측'은 또 다른 물리학적인 문제이기는 하지요. 간단히 말해서, 만약 저희 회사가 고객의 1년을 구입할 경우 그 고객은 다음 순간 자신이 1년 후의 시간에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그 사이의 기억이나 지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났다고 느껴질 뿐. 이 단편에서는 사람들의 우선순위와 선택에 대한 결과를 보여준다. 독자는 시간을 팔아 돈을 받을지, 돈을 주고 시간을 살지 함께 고민할 것이다.


<추리소설가의 등단 살인>은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추리소설가의 이야기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상상하고 이야기한다. 그런 이야기들이 소설이 되고 영화가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써내려 가는 것과 직접 경험한 것을 적어 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적을 것에 대해 반드시 경험해보아야 할 것인가?


마지막 피날레는 <숨어 있는 X>이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추리소설의 감상, 창작 그리고 분석'이라는 교양 첫 수업에서 수강생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그것을 맞추는 사람에게는 A학점을 주기로 한다. 모두 처음 만난 학생들은 서로 질문을 하며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찬호께이의 글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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