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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Feb 16. 2022

망내인(網內人)

책 읽기 프로젝트 50 #6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이 있다.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의뢰인의 개인정보를 수집해서 영구적인 파기를 해주는 일을 한다. 이름과는 다르게 꼭 사망한 사람의 정보만 지워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도 의뢰가 가능하다. 이런 직업이 생긴 배경을 생각해보면 조금 무서워진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물리적으로 살고 있는 이 세계보다 온라인, 모바일 세계에 더 많은 정보를 남겨두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정보는 내가 지우고 싶다고 해서 모두 찾아 지울 수 없고,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에도 남아있을 것이다. 게다가, 리벤지 포르노나 누군가가 나를 겨냥해 남긴 악의적이거나 잘못된 정보의 경우에도 어디로 퍼져 나가서 어디에 흔적이 남았는지 일일이 찾기 힘들다. 사람들의 ‘잊힐 권리'를 위해 생겨난 이 직업이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잘 보여 준다.


이 시대의 정보는 너무 빠르게 퍼지고, 진위를 확인하기는 너무 어렵다. 악플이나 가짜 뉴스가 문제가 된 지는 한참이 되었고, 악의적인 내용에 대한 관심에 비해 그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내용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이내 잊힌다. 어떤 이들에게는 하루 저녁 안주거리에 불과한 내용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예전과 다르게 많은 범죄가 온라인으로, 모바일로 넘어왔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쉽게 타깃이 되거나 피해를 입는다.



현재 중국어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추리소설 작가인 찬호께이(陳浩基)는 소설 <망내인(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를 통해 인터넷에 사로잡힌 우리의 삶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어우야이(歐雅怡)는 중앙도서관 직원이다. 부모님, 동생 어우야원(歐雅雯) 네 가족이 홍콩 쿤통 지역의 공공주택에 살고 있었지만, 오래전 아버지가 업무상 재해로 돌아가시고, 작년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 두 자매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동생 어우야원은 아주 밝은 아이였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몇 달 전,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경찰 조사 등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언니 어우야이는 동생이 그 모든 걸 이겨내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최근 홍콩의 인기 온라인 포럼인 땅콩 게시판에 성추행 가해자의 조카라는 사람이 가해자의 결백을 주장하며 어우야원을 음해하는 글을 올렸다. 며칠 수, 어우야이는 퇴근길에 아파트 앞에서 투신자살한 동생을 발견한다.


어우야이는 동생의 자살이 땅콩 게시판에 올라온 글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경찰에서는 자살 사건이므로 그 글에 대해 조사할 수 없다고 말한다. 힘들어하는 그녀를 보던 직장동료는 탐정인 자신의 삼촌을 소개해준다. 그녀는 그 글을 올린 사람 찾기를 모(某)탐정에게 의뢰한다. 탐정은 조사를 했으나 자신이 조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자기 대신 다른 해결사이자 해커인 아녜(阿涅)와 연결해준다. 괴짜처럼 보이는 아녜는 처음에는 평범해 보였던 이 사건의 의뢰를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어우야이의 방문의 수차례 받고, 또 사건의 특이점을 발견해 이 사건 의뢰를 수락하게 된다. 그리고 아녜와 어우야이는 사건을 파헤쳐간다.


한 편, 가십을 사고팔 수 있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는 스중난(施仲南) 야심이 큰 인물이다. 그는 한 벤처 캐피털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투자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그 기회를 잡으려 한다.


이야기가 꽤 길고 두 개의 이야기를 넘나들지만 찬호께이는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어간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긴장감을 더해간다. 소설 속 아녜는 요즘 사람 답지 않게 인터넷이나 모바일 앱에 무지한 어우야이에게 어떻게 인터넷 게시판이 대중들에게 사용되는지, 혹은 악용되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자신이 그 서버들을 해킹해서 범인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방식을 알려주는데 그런 부분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한 소설을 읽으며 가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은 이런 일이 우리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는 홍콩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홍콩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고, 그들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소설 속에서 말한 ‘자본주의'의 단면은 꼭 홍콩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홍콩에 산 지 9년이 넘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공공주택을 신청하고 배정받는 부분이나, 중고등학교 생활 같은 모습들도 책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표지에서 보이는 몽콕의 거리 모습, 빅토리아 하버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침사추이의 호화로운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나, 란콰이퐁 근처 바에서 대화를 하는 모습 등 홍콩 여행을 자주 다니던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동네, 길 이름들도 자주 보일 것이다. 아녜가 사는 사이잉푼(西營盤)은 내가 살던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소설 속 아녜의 단골 국숫집이 꼭 눈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아 나도 참지 못하고 집 근처 막스 누들(Mak’s Noodle)에서 완탕면과 굴소스를 얹은 초이쌈을 사 먹었다. 홍콩이 그리운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와닿을 책이다.


아녜는 매력적인 캐릭터고, 어우야이의 관찰력과 답답함(!)이 조화를 잘 이룬다. 물론 마지막에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나 하는 싶은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앞으로 아녜 시리즈가 나온다고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호께이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통해서였다. 홍콩에 살면서도 홍콩 작가의 책을 읽은 기억이 거의 없어서 기억해두었다 읽어보려 했지만 한참을 미뤄두었다. 작년 작가의 대표작 <13.67>을 중국어로 구입했다. 중국어 책은 일 년에 한 권도 읽을까 말까 한데, 아무래도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고 멈춰있다. 그러던 중 구독하고 있는 ‘밀리의 서재’에서 찬호께이의 한국어판 책을 발견하고 <망내인>을 읽기 시작했다. 즐겨 읽던 영미권이나 일본의 추리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 찬호께이의 다른 작품도 바로 읽고 싶어졌다. 코로나 오미크론으로 거의 락다운인 상태에서도 여전히 화려한 홍콩 센트럴의 야경을 공유하며, 찬호께이의 다른 작품 속 홍콩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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