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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May 22. 2022

도시악어

책 읽기 프로젝트 50 #19



내가 원해서 여기에 온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살아가야 하지

쓸쓸한 도시의 밤을 내려다보며 악어는 이야기한다. 도시는 되려 차가워 보인다. 편안한 옷을 입고, 자기가 사는 집 베란다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악어는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악어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도시에 사는 악어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여기에’ 오게 된 이유를 생각하는 것은 비단 악어가 ‘물리적’으로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니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도시라는 장소도, 인생의 이 시점에서 현재의 ‘나'라는 모습도 내가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만들어온 모습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악어는 한눈에 봐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다른 사람들처럼 옷을 차려입고, 물건을 사고, 길을 걸어도 다르다. 사람들은 그를 무서워한다. 악어는 자신이 이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갈 수 있는 모습을 생각한다. 뾰족한 이빨 때문일까 해서 이를 깎아내고, 남들에게 없는 자기 꼬리가 문제일까 꼬리를 잘라내는 수술을 위해 상담을 받는다. 그러면 악어는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섞여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람들은 대부분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회사에서의 나와 집에서의 나는 다르다. 중국어를 할 때의 나와 영어를 할 때의 나는 한국어를 할 때의 나와 다르다. 가끔은 의도적으로 다른 내가 되기도 한다. 진짜 나의 모습을 잊지만 않는다면 그것도 괜찮다.


악어는 물을 두려워했다. 물에 빠져 자신이 사라질까 무서웠다. 물에 빠진 악어는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이 악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호흡하고,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벗어던진다. 물속에서 헤엄쳐서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그렇게 물속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그 전처럼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밤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옷을 주워 입고, 가면을 쓰고 사람들 사이로 나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면 말이다.


사실 이 책에 있는 글을 모두 옮겨 적어도 한 페이지가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짧은 글과 강력한 그림으로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애쓰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짧은 책이지만 여운은 길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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