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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May 30. 2022

작별인사

책 읽기 프로젝트 50 #20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방학 때면 친구에게 손편지를 썼다. 처음으로 우편함에 편지를 넣던 날, 우표를 붙여야 하는 것도 몰랐던 나는 우표도 없이 덜컥 우편함에 편지를 꽂아 넣었다. 다행히 편지가 완전히 들어가지 않았고, 엄마가 꺼내어 다시 우표를 붙여 주었다.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에는 이메일이 생겼다. 중, 고등학생 때는 문자를 주고받았고, 대학교 때는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모든 일을 다 스마트폰으로 한다. 기술 발전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인공지능 자동화로 사라지게 될 직업은 아마도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소설 <작별인사>는 지금보다 기술이 더 발전한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통일된 한국 평양에서 휴먼매터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박사인 자상한 아버지, 그리고 고양이 세 마리와 사는 소년 철이가 그 주인공이다. 휴먼매터스 캠퍼스에 사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홈스쿨링을 하는 철이는 음악을 사랑하고 고전 영화와 소설을 즐겨 본다. 그러던 어느 날, 장을 보러 갔던 아빠를 뒤따라 시내로 나갔다가 누군가에게 잡혀가고 만다. 그리고 철이의 온 세상이 바뀌게 된다.


김영하 작가가 9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 소설이다. ‘밀리의 서재'에서 발표했던 소설에 살을 덧붙여 책으로 발간했는데, 소설의 주제도 내용도 한층 더 깊어졌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가끔 내가 그저 생각하는 기계가 아닐까 의심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면 그렇지 않음을 깨닫고 안도하게 된다. 봄꽃이 피는 것을 보고 벌써 작별을 염려할 때, 다정한 것들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날을 떠올릴 때, 내가 기계가 아니라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 그럴 때 나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에 가 있지 않고 바로 여기, 현재에 있다. 그렇게 나를 현재로 이끄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 p.305


철이가 처한 상황과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는 모습, 그리고 소설 속 인물과 나누는 대화들도 아주 흥미롭다.


“자기가 누구인지 잘못 알고 있다가 그 착각이 깨지는 것, 그게 성장이라고 하던데?” p.83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끊임없이 던지고 받는 질문들은 모두 ‘존재'와 관련이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생명과 의식의 존재, 그 의미에 대해서 독자들도 곱씹어보게 된다. 일상에서 늘어나는 로봇이나 인공지능 등의 영향이 우리의 존재와 그 가치를 바꿀 것인가. 인공지능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해질 수 있을 것인가. 인간과 비슷한 인공지능은 인간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점점 발전해가는 이 세상에서 미리 생각해보아야 할만한 것들이 많다.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도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세요.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기계의 세상에서는 자아가 사라지고 과거와 미래도 의미를 잃습니다.” p.160


인간들이 참 무정한 게, 자기들은 어둡고 우울하면서 휴머노이드는 밝고 명랑하길 바라거든요. p.184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고 자라고 죽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라는 존재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까를 고민했다. p.286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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