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프로젝트 50 #36
어느 일요일 아침, 기쁜 소식과 함께 일어났다. 한동안 부진했던 손흥민이 FA Cup 경기에서 두 골을 넣고 토트넘이 이겼다는 뉴스였다. 뉴스를 보고 며칠 전 읽은 책이 생각났다.
날카로운 눈매, 굳게 다문 입술, 단호하게 낀 팔짱,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표정, 진지하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한 남자. 무뚝뚝하고 단호하고 무섭기만 할 것 같은 이 사람은 2022년 월드컵 팀대한민국 캡틴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님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대부분 축구 팬이다. 4년에 한 번 축구를 본다 하더라도 말이다. 2002년을 경험했든, 2022년을 경험했든, 아니면 둘 다 경험했든, 붉은 유니폼을 입고 잔디 위를 달리는 선수를 응원하고, 함께 기뻐하고 슬퍼한다. 손흥민은 그런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어린 나이에 독일로 건너가 두각을 드러내고, 영국 프리미어리그 팀에서 찬사를 받으며 득점왕까지 해내는 축구선수다. 손흥민이 유명해지면서 그의 아버지 손웅정 님의 교육방식과 희생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손웅정 님이 직접 본인의 유년시절부터 축구선수로서의 삶, 지도자로서의 철학 등을 써낸 것이다. 책은 경기가 시작하지 마자 손흥민 선수가 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서도 눈부신 활약을 했던 경기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가 잘 아는 사건들로 시작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까지 풀어나가는 것이 이 책을 보는 재미 중 하나지만 그런 이야기로만 채워진 것이 아니다. 이런 사건과 경험들이 저자의 생각과 철학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혹은 그 반대로 이런 저자의 신념이 삶의 선택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의 챕터는 ‘성찰’, ‘집념’, ‘기본’, ‘철학’, ‘기회’, ‘감사와 겸손’, 그리고 ‘행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 전체를 요약하는 키워드들이다.
손웅정 님은 본인의 축구이야기가 싫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충남 서산의 외진 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우연히 축구를 만났다. 동네 친구들을 따라 간 교회 대항 축구대회에서 서산에 있는 초등학교 축구부 아이들과 맞붙었고, 첫 골을 넣었으며 이겼다. 그것도 맨발로. 그 축구부 코치와 체육 교사가 축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지만, 쌀 다섯 말이 필요한 가입조건은 가난했던 그에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그의 아버지가 장터 식당에서 축구부 코치와 체육교사의 옆 테이블에 앉았고 그렇게 설득을 당했다. 그리고 손웅정 님은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또래에 비해 늦게 시작했지만 그만큼 노력했다. 이 ‘연습벌레’는 충남 대표로, 또 나중에 중, 고등학교에서는 강원도 대표로 전국소년체육대회에도 나가고, 프로 팀에도 입단한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불합리함에 맞서는 곧은 성정, 혹은 고집, 아닌 건 아니라는 믿음으로 축구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그는 28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심한다. 늦은 나이에 축구를 시작해 기본기, 개인기를 완성시키지 못했고, 스피드 하나 믿고 덤볐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그 결과 몸이 금방 망가졌다. 아들 둘이 축구를 해보겠다고 말했을 때,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과는 정 반대의 시스템을 갖추고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저자가 축구, 운동, 독서 그리고 가족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전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영국에서도 한국 책을 주문해 읽으실 정도로 독서를 독서방법도 흥미로웠다. 마음에 드는 책을 보면 세 번 읽으시는데, 처음에는 검은 펜으로, 두 번째는 파란 펜으로, 마지막에는 빨간 펜으로 기억하고 싶은 구절에 표시를 하고 독서 노트에 옮겨 적는다. 그리고 책은 버린다. 한 때 (다 읽거나 읽지 못한) 책들을 쌓아두는 것으로 만족감을 얻었던 내 과거가 떠올랐다. 나는 내가 책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책에 소유당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것에 소유당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내가 무엇을 소유한다’라고. 하지만 그 소유물에 쏟는 에너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도리어 뭔가를 자꾸 잃고 있는 것이다. p.41
독서를 통해, 경험을 통해, 그리고 사색을 통해 다져진 손웅정 님의 내공이 느껴진다. 기본적인 기술과 체력 훈련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겸손’과 ‘성실’을 강조하는 교육,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내 마음에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 내면을 들여보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성공하는 이들에게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저자는 책의 서문에 ‘아버지와 아들로 강하게 결속돼 있지만’ 엄연히 다른 존재이고, 손흥민의 축구는 오로지 손흥민 그의 것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시작했다. 손흥민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든 성공이지만, 그의 삶의 태도와 축구에 대한 마음은 분명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랐을 것이다.
마음에 따르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을 스스로 조종할 수 있도록 매일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마음이 흔들리는 대로 따르지 말고 내가 주도권을 쥐고 내 마음의 흐름을 조종해야 한다. 온갖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평온한 마음을 위해. P.431
쓸데없는 일과 물건들로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는 ‘단순한 삶’, 가진 건 없어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자유로운 삶’, 다른 사람의 평가나 명예, 권력과는 무관한 ‘담박한 삶’ p.434
내가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것이다. 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힘은 들었지만 그때 게으름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살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했던 너의 삶은 잘 산 삶이었다고. 고맙다고. P.433
책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저자는 과거의 본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과거의 나에게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떤 자기 계발서보다 더 배울 것이 많고, 또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