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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Feb 17. 2023

미스터 프레지던트

책 읽기 프로젝트 50 #37

미국회사에 다니며 어렵게 배운 것이 있다. 내가 한 것을 사소한 것이라도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홍보하는 거다. 내향적인 내 성격과 한국과 중국에서 받은 교육으로 인해 내가 이룬 것에 대해 내가 말하고 다닌다는 게 그저 어색하고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겸손이 미덕이고,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었으니. 처음 입사해서 내가 일만 열심히 하면 내 노력을 상사들이 알아주거나, 그에 맞는 적당한 평가를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내 자리에서 최선만 다하면 된다고. 어느 날 당시 내 팀장이었던 J가 말했다.


“네가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나는 알지만, 네가 주변에 알리지 않는다면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내가 하는 일의 난이도나 복잡한 정도, 그에 들인 노력과 그 결과가 가져다주는 효과는 내가 가장 잘 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팀원들, 그리고 상사에게 알리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는다. 내가 한 일을 잘 포장해서 홍보하는 것까지도 내 일인 것이다.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의 책 <미스터 프레지던트>를 읽으며 어느 일이나 다 그렇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북콘서트, 토크콘서트의 장르를 만든, 행사 기획과 콘서트 연출을 전문으로 하는 저자가 지난 5년간 있었던 대한민국 국가 기념식과 대통령 일정에 관해 쓴 것이다. 국가 기념식과 행사는 매년 있는 것이지만, 지난 한 해 동안 정부와 각 부처가 어떤 일을 얼마나 했는지 국민들에게 알려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5년간 1,195개가 넘는 일정을 진행하면서 칭찬과 찬사도 받았을 테지만 그에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오해와 비난, 질타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쓴 것이 아닐까. 정부가 한 일을 알리기 위한 행사나 기념식, 그 행사나 기념식을 준비하며 한 일들을 알리기 위해서, 그리고 의전비서관으로서, 행사 기획 자문가로서의 5년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말이다.


책은 대통령의 입장으로 시작해 퇴장으로 끝난다. 마치 그가 준비했던 행사의 형식을 따르는 것처럼. 책에서는 형식과 내용 그리고 의미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형식적 아름다움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내용이 없으면 결국 공허해진다. 형식은 반복되고 유지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내용은 매번 새롭게 해석되고 변화할 때 의미가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국가 행사 구성은 형식을 유지하되, 그 안에 새로운 내용을 채우는 것이어야 한다. 음악은 그러한 형식만 남은 행사에 내용을 채워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p.313


그래서인지 행사의 이름이나 행사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각 장의 제목으로 삼고, 그 옆에는 스마트폰으로 스캔할 수 있는 QR코드가 나란히 들어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관련 행사 유튜브 영상을 바로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행사의 결과물을 보고서 그 행사를 준비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뒷이야기를 읽으니 조금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지 않았으면 몰랐을 배경음악이나 참가자들, 장소가 선정된 이유와 의미를 알고서 보면 이런 국가 기념식, 행사들이 그저 형식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보였다. 그 자체로 홍보의 의미도 있지만 위로하고, 감사하고, 기념하고 또 기억하기 위함이다.


한 국가가 무엇을 기념하는지를 보면 그 민족이 거쳐온 역사의 질곡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기념일이든 거기에는 사건이 있었고, 또 사연이 있었다. 사건과 사연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한 ‘현실’이기도 하다. p.211
커다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쉽게 꺼내 보여주지도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해와 공감도 쉬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p.213


책의 초반에 트럼프 대통령 선물 준비 회의 경험을 통해 대통령 행사에서 얼마나 조그만 것까지 조율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사전 조사를 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지 깨닫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1,200여 개의 행사가 모두 각 부처의 그런 노력이 들어있는 것이라는 걸 독자들은 쉽게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한 에피소드도 가득했다.


역시 누군가를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공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p.225


앞으로도 국가 기념식이나 행사가 있다면 그 안에 사소한 것들을 눈여겨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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