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는 소리 없이 나를 만든다

평범함의 가치에 대하

by 몌별

돌이켜보면 이 평범한 하루들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요즘 나는 일상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교실 안에서는 늘 아이들의 속도와 감정을 먼저 살피느라

내 하루를 돌아볼 틈이 없었는데, 퇴근 후에야 비로소

오늘을 무사히 지나왔다는 사실을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교사가 된 지 시간이 쌓이면서 일은 차츰 정돈되었고,

하루를 굴리는 나만의 순서가 생겼다.

불필요하게 애쓰지 않아도 될 지점과 끝까지 책임져야 할 순간이

자연스럽게 구분되기 시작했다.



이 루틴은 요령이라기보다 수없이 돌아가며 배운 몸의 기억에 가깝다.

그래서 요즘은 그 익숙함이 고맙다.



어느 날 종례를 마치고 나가던 아이 하나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말했었다.

“선생님, 오늘도 좋았어요”

특별한 칭찬도, 감동적인 장면도 아니었지만

그 한마디에 그날의 하루가 조용히 자리를 찾는 느낌이 들었다.



교실에서는 그런 순간들이 하루를 버티게 하는 작은 기준이 된다.

아이에게 그날은 그저 지나가는 하루였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 말 속에서 자기 몫의 하루를 살아냈다는 흔적을 보았다.



그 장면 앞에서 필사 노트에 적어 두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삶의 무대에서 주인공이 아닌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고수리





아이들을 오래 바라보며 알게 되었다.

잘 보이지 않아도, 앞서지 않아도 자기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면 이미 충분히 주인공이라는 것을.




영화를 볼 때도 시선이 달라졌다.

최근에 본 <자백의 대가>는 그 변화를 또렷하게 느끼게 한 작품이었다.

출처 : 나무위키

이야기의 긴장감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 오래 남은 건 전도연, 김고은, 박해수의 연기였다.

대사를 밀어붙이지 않아도 눈빛과 호흡만으로 장면을 채우는 순간들을 보며

한 장면이 완성되기까지의 시간과 노력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결과보다 과정에 시선이 머무는 건,

아마 교실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오래 지켜본 교사로서의 습관일 것이다.

단번에 드러나는 성취보다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낸 변화에 더 마음이 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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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차 안에서 혼자 음악을 듣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쉼이다.

교실의 소음이 백미러 너머로 멀어지고 비로소 나의 호흡이 운전석으로 돌아온다.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루가 유지되고 있음을 느낀다.



요즘엔 몸에도 변화가 있다.

적당한 살이 붙고, 운동을 병행하며 체력이 차오른다.

'버텨내는 하루'가 아니라 '살아내는 하루'에 가까워졌다는 감각이 나를 조용히 기쁘게 한다.




의외로 행복은 맛있는 식사 앞에서
집 앞 공원 벤치에서 항상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든 걸음에는 이유가 있다>, 김아영

돌이켜보면 이 평범한 하루들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 앞에 서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

지치면서도 다시 교실로 들어갔던 날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요즘의 나는 이렇게 조용히 지켜온 하루의 얼굴들을 떠올리며 감사 속에 살아간다.

감사한 게 많아지니 이게 모두 행복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행복을 더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이 평범함과 이 조용함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따뜻한 행복이고,

그 행복이 이미 여기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Epilogue>

내일도 저는 같은 시간에 교실로 향할 겁니다.

아마도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또 한 장 조용히 쌓일테죠.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그 하루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서두르지 않으려구요.

오늘처럼, 소리 없이 남을 하루를 차분히 살아내면 되니까.

특별하지 않은 내일이, 오늘처럼 조용히 나를 만들 거에요.

@지혜롭게, 몌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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