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핀 빵을 먹어야 해?
런던살이 3년 차, 여행에 날개를 달았다. 2년 차보다 더 많은 여행 계획을 세웠는데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한국이 심했을 때도 잠깐 유행하다 말겠지 했는데 착각이었다. 핀란드 로바니에미 여행을 마지막으로 2020년 3월 23일, 런던에 갇혔다.
일상이 여행이었는데 셋이서 락다운 강제 집콕으로!
마트, 병원, 약국을 제외하고 모두 문을 닫았다.
문을 열었지만 사람들의 사재기로 아무것도 살 수 없는 런던 마트. 온라인 장보기는 마비된 지 오래. 2-3시간 클릭질을 해서 로그인이 되나 싶더니 슬롯(배송시간) 잡기는 하늘에 별따기나 다름없다. 포기다.
대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2019년과 다르게 집콕에 통조림 음식 먹어야 할지도 모르는 2020년 봄이 되었다.
“근래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나요?”
“다른 동네 마트 다 뒤져서 계란 60개를 발견한 날이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기분이랄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요. 계란이 이런 행복감을 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영국 코로나19가 다소 누그러졌을 때 분위기를 잘 써놓은 신문기사가 있다.
에든버러대학교에서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 나오거나 개인의 종교나 식습관을 고려하지 않은 음식이 제공돼 논란이 됐는데요. 학생들은 기숙사를 영국에서 가장 비싼 감옥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대학들 사정도 마찬가지인데요. 하루 세끼를 샌드위치와 과자, 초콜릿 바로 해결하고요. 신선식품이나 야채 없이 냉동식품만 많이 든 식료품 꾸러미로 일주일을 버티기도 합니다. 지금 영국은 하루 확진자가 1만 4천여 명에 달할 만큼, 코로나19 확산세가 무섭습니다.
출처: 이상미 기자. “코로나 걸릴까 봐 '자퇴'한 사연..英 "학교 안 보내면 벌금" 논란” EBS(한국교육방송공사). 2020년 10월 13일 https://news.v.daum.net/v/20201013142049684
코로나19가 심각해지자 광풍의 휴지 사재기 현상을 보니 마트는 총알 없는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당시 ‘영국 살이’ 카페에 올라오는 글에는 ‘휴지 좀 주실 분? 휴지가 다 떨어져 주변 마트 다 돌아다녔는데 휴지가 없어요. 신문지로 처리 중인데 도와주실 분 있을까요?’라는 글도 자주 올라온다. 이 정도로 사재기를 할 줄이야…
엘라의 온라인 수업도 한몫한다. 구글 클래스의 로그인부터 숙제 확인, 숙제 업로드 등 부모가 봐줘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숙제를 안 하면 빨간색으로 ‘미제출(missing)’이 뜨고, 잘된 것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칭찬 게시판에 올리니 안 할 수가 없었다.
7살 숙제가 아니라 부모 숙제나 다름없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빡빡한 일정으로 수업과 숙제가 있었는데 제시간에 끝낼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저녁 먹고 나서도 숙제를 하고 있을 정도로 정신적 육체적 피로도가 심했다.
셋이서 함께 집콕 생활을 하다 보니 쟁여놓은 음식도 이리 빨리 떨어질 줄이야. 비상식량이 동나는 만큼 엄마로서 마음의 불안감도 커졌지만. ‘내일은 아껴둔 마늘빵이 있으니 그걸로 해결하면 되지 뭐.’라며 호기롭게 잠든다.
그런데 아침 먹으려고 꺼낸 마늘빵에… 곰. 팡. 이가 피었다. 곰팡이 핀 게 별일이야 싶지만, 배가 고프니 예민해지고 그렇다고 다른 대안은 없고. ‘곰팡이 핀 부분만 도려서 먹자.’며 빵 사진을 찍어 동생한테 보냈다.
“락다운에 우리 이러고 살아.”
“헐… 그러고 사는 거야? 뭐라도 보내주고 싶다.”
(당시 항공권도 묶여 택배도 안 되는 상황)
멘탈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서러움과 고마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지나고 보니 ‘나는 강하다.’라고 최면을 걸었을 뿐, 속 빈 강정에 우울함이 가득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