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가고 싶던 아나운서

내 인생에 유학이라니 (1편)

by 마이 엘리뷰
(유학 일기는 매주 목요일 아침 연재합니다)

- 내 인생에 유학이라니 -

(1편) '유학' 가고 싶던 아나운서
ㅡ 사진으로 담아보는 유학 준비 스토리

(2편) 틈새시간, 나처럼 지내봤니?
ㅡ 방송+유학, 두 마리 토끼 잡기
ㅡ 공부 잘되는 카페 명소 TOP 7

(3편) 막상 유학 와보니 말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7년 전. 한창 앞날이 어찌될 지에 대해 관심이 쏠려있던 20대 후반의 직장인은 용하기로 소문난 사주카페에 종종 들르곤 했다. 마음이 힘들면 심리상담 전문가를 찾으면 될 일이고, 일이 잘 안풀려 속상하면 친한 친구랑 주말에 실컷 수다떨고 풀면 그만일 일인데 그 당시엔 자꾸만 이곳을 찾아 발을 들였다. 그 어떤 '예측' 담긴 대답을 들어야 직성이 풀렸던 날들이었다. 정답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왠지 시험지 해답을 먼저 몰래 찾아 읽는 느낌이었달까. 사주카페는 한마디로 힐링이었다. 불안함에 대한 도피처.



해외에 나가서 살 사주가 있어.
나가면 잘 풀릴텐데.


해외라고요? 난 일찍이 유학과 거리를 두며 살아왔는 걸. 유학에 대한 필요를 전.혀. 느낄 필요가 없는 '국어국문학' 전공을 택했다. 늘 이 선택에 만족했고 안심했다. 전공에 대한 심화공부는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선 곳이 최적이고 최고라는 사실이 대단히 편안했었으니까. 돈들여서 모험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대학졸업 전에 원하던 방송일을 시작했으니 안전지대를 딛고 선 내 일상을 굳이 바꾸겠다고 한국 땅을 뜰 필요도 없는 거다. 명색이 한국어 지킴이를 늘 자처하는 아나운서인데 뒤늦게 외국어 공부를 위해 어학연수를 갈 것도 아니고, 꿈꾸던 일을 중단하고 뜬금 유학을 갈 확률도 굉장히 적지 않을까. 이 사주카페 '덜' 용한 것 같은데?


내 미래에 해외에서 살 사주가 있다니? 그게 가능해?


게다가 유학을 갈지, 이민을 갈지에 대해서는 단 1도 궁금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아나운서 준비생들이 그렇듯, 나의 질문은 한결같았다. 조금 더 좋은 방송국으로 이직할 수 있을까. 좀 더 큰 방송사, 좀 더 넓은 방송권역을 지닌 곳에서 방송할 수 있을까. 서울에 회사를 둔 곳에 다시한번 합격할 수 있을까. 지역 지상파 방송사에서 5년여 넘는 시간을 일한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더 평판 좋은 곳, 내 인지도를 좀 더 높일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욕망은 져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직이 아니라 이민수가 있을 수도 있다니? 그렇다고 CNN, ABC에서 일할 건 아니잖아? 난 그저 가을에 있을 3사 방송국에 이번엔 최종합격을 할 수 있을 건지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2017년 늦여름 어느날, 유.학.결.심


그랬던 내가 토플 문제집을 펼쳤다. '해외살 팔자가 있다'는 말을 접한 뒤 자그마치 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평일엔 온라인 강의 프리패스를 끊어 연일 재생해댔고 주말엔 라테 한 잔을 끼고 강남역 영어학원으로 향하곤 했다. 이런...서른살이 넘어서 대학생들과 나란히 앉아 강의를 듣고 있을 줄이야.


안전지대를 넘어서 내 삶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 우물안 개구리에서 폴짝 뛰어 새 세상을 모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불꽃'이 튀던 날들이 시작됐다. '나라는 사람도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 이 희미한 질문에 대한 호기심이 싹트던 때. 꿈꾸던 직업을 가지고 꽤나 안정된 하루하루를 일궈가고 있었지만 그대로라면 나의 40대도 50대도 그럭저럭 '안주하고' 살고 있을 것만 같아서 오히려 불안감이 쌓여가고 있었다. 내 마흔지점에 또다른 전성기를 맞고 싶다는 생각. 그러려면 더 넓은 영역에 나아가야 한다고 막연히 믿었다. 근데 포부도 좋고 다 좋은데 말이지. 토플공부 이거 참 만만치 않네.

3년 전 자주 찾았던 집앞의 스터디카페. MBC 파업이 길어지면서 9to6 카페에 출근했던 날들도 부지기수.


다행히 뒤늦게 모험 해보겠다고 나선 사람들, 나뿐만은 아니더라. 학원가에 나가면 나와 비슷한 몸짓들은 어디에나 있는 듯했다. 마침 서점에도 '퇴사' 열풍을 담은 책들이 슬슬 많아지고 있던 때였다. 다니던 직장을 멈춰두고 한국을 벗어나려는, 이른바 늦깎이 유학준비생들이 어찌나 많던지!


물론 한 순간 한 순간은 쉽지 않았다. 토플 시험 점수 빨리 낸 다음 GRE (미국대학원입학시험) 준비로 넘어가야 하는데 감당해야 할 토플 단어와 문제량만으로도 압박감이 번져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으니, 결국 이도저도 못하고 '유학도전기'를 소심하게 접어야 하는 건 아닐지, 매일매일 막막했다. 이왕 시작한 공부.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유학이 돼버리는 건 싫은데? 어둠 속을 끝없이 걷는 느낌. 이걸 어쩐담.


리딩 리스닝 스피킹 라이팅. 할 건 많은데 원하는 점수는 언제나올까. 공부할수록 점점 더 불안해졌던 순간들. 유학, 그게 내 인생에 가능해?


그냥 했어.
해야 하니까 그냥 했던 거야.


정말 별 것도 아닌 말 하나가 엄청난 힘을 보탰다. 지금 남편이자 당시 남자친구였던 그가 흘린 한 마디. "도대체 이 많은 공부를 언제 다해? 너는 토플 공부할 때 어땠어? 이렇다가 점수 결국 안나오면 어떡해? 외울 단어가 너무 많아. 리스닝 점수가 너무 안나와. 앞으로 어떻게 점수를 더 올리지? 오르긴 오를까? 나도 너처럼 유학갈 수 있는 걸까." 이런 걱정, 저런 걱정, 초조한 마음만 잔뜩 늘어놓는 내게 당시 전 남친 현 남편이 했던 말은 바로 이거 하나. "그냥 했어. 해야 했으니까, 하고 싶었던 공부가 있으니까 그냥 했던 거야."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에 있는 독서실 등록. 새벽1시까지 꼬박꼬박 꼴등으로 불끄고 나오기. 하루 16시간씩 스터디모드였던 회사 파업기간.


토플시험에 대한 대단한 스킬도, 조목조목 유학준비에 대한 조언도 늘어두지 않았으나 나는 이말이 참 좋았다. 그냥 했다는 한 마디. 문제가 어렵든, 점수가 도저히 나올 기미가 보이든 안보이든, 가고 싶은 길이었고 그래서 가야 했으니 그길을 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에 불만을 품거나 걱정하지 않았던 거다. 그냥 '묵묵히' 그 과정을 견뎠다는 그 태도에 무릎을 쳤다. 점수가 안나온다고, 어렵다고, 이 많은 공부량을 언제 다 해서 어느 세월에 학교에 지원하고, 미국으로 떠날 수 있는 거냐고, 애를 태울 필요가 없는 거였다. 하고 싶은 건데 해야 하는 게 있다? 그럼 그냥 하면 되는 거였다. 모든 불안, 불만, 불가능에 대한 두려움을 내리 누르고 '꾸역꾸역' 그냥 하다보면 뭐라도... 되.겠.거.니 생각하며. 그렇게 수개월을 지나보냈다.


태도를 바꾼 덕분이었을까. 토플문제집을 처음 펼쳤던 2017년 6월.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보스턴에서의 유학 일상을 또 아무렇지 않게 이어가고 있다. 신기하게도 나는 막연하기만 했던 '유학'을 와 있는 거다. 가을학기, 봄학기를 다 지내고 여름학기 강의를 듣고 있는 요즘이지만 '해외 살 팔자'가 현실이 되어있는 지금이 여전히 안 믿긴다. 실로 그 꾸역꾸역의 힘은 대단했던 셈이다.


타이밍 절묘하게 유학준비기간은 MBC 파업기간이었다. 덕분에 (?) 토플공부에 좀 더 가속도를 낼 수 있었다.
정말 진심다해 꿈꿨던 아나운서 자리를 내려놓고 유학을 오기까지...내 삶에서 영어공부를 가장 독하게 했던 시간들.


때때로 추억해본다. 방송일을 이어가면서 토플문제집을 붙들고, 생방송 전후로 방송국 옆 도서관에 출석해가며 주경야독을 했던 일상. 딱 '방송'하는 순간만 빼고는 참 아나운서답지 않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고3때보다 더 무거운 책가방을 이고 다니며 화장기 없는 얼굴로 멋이라고는 하나 찾아볼 수 없이 수험생활하기. 그렇게 그렇게 '그냥 공부를 하며' 그 언젠가 다가올 모험의 순간을 마냥 꿈꾸고 기다렸다. 문제가 잘 풀리면 잘 풀리는 대로, 영어가 꼬이면 꼬이는 대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나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데?'가 품고 있는 호기심과 남편이 던져 준 '그냥 했어'의 무심한 꾸준함이 환상 콜라보를 펼쳤던 결과다. 지금, 나는, 여기에 자리하고 있다.


2017년 추석연휴, 내겐 토플에 대한 기억뿐. 꾸역꾸역 그냥 하는거야!


해외 나가살 팔자가 있어.
거기 가면 일도 잘 풀릴건데?
나갈 계획 없어?


7년 전 사주카페에선 이렇게 이야기했다. 외국물 먹으면 좋은 기운이 스밀거라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앞으로 더이상 내게 찾아들 행운이 부재하다고 할 지라도 뭐 어때. 난 이미 괜찮다. '꾸역꾸역'의 진리가 날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냈으니. ‘그냥 하면 된다’는 무심함의 기술이 '영영 안주할까봐 무서워했던' 시간과 공간에서 날 결국엔 꺼내줬으니!


“어렵다. 이거 어떡하지" 하는 순간이 다시 찾아든다면, 난 아마도 또 한번 나의 유학준비 과정을 차근차근 곱씹어볼 것 같다. 영 안 될 것 같던 날들, 내 팔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결국엔 이뤄냈으니까. 지금 현실로 살고있는 거니까. 즉, 아닐 것 같던 것들도 내 영역에 들일 수 있는 거니까.


2017년에서 2020년, 3년 사이 완전히 달라진 풍경.


지금 여기, 2020년 보스턴, 대학원 여름학기 듣는 ‘스터딩맘’ 일상을 이어가다! 새벽에 아기 재우고 과제하는 희열이란.
“내가 진짜 미국에 유학 와 있을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