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에 있는 힘

미국대학원 여름학기 1일 차 짚어보기

by 마이 엘리뷰

때는 바야흐로 2005년. 대학교 1학년 때, 생활과학대 소속의 교양강좌를 들은 적이 있다. 과목명은 '공간 보기 공간 풀기'. 생활디자인 전공 교수님께서 진행하는 '공간 디자인 입문' 수업이었는데 예사롭지 않은 과목명이 산뜻하게 다가와 끌렸다. 학생들의 발표를 통해 참신하게 디자인된 공간들의 사진을 보고 각자의 해석을 더하기도 했고 주말에 교수님과 함께 디자인 '핫'하기로 소문한 장소를 찾아 인테리어 요소들을 샅샅이 뜯어보기도 했다. 요즘 말로 '갬성' 폭발하는 디자인의 공간에 들어서면 마냥 힐링되는 느낌이었고 당시 쓰던 '디카'를 꺼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학점을 따내야 하는 수업이었지만 치유의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는 걸로 봐선 그 어떤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기운이란 참 대단한 것 같다.


같은 공간이라고 해도 누구와 이곳을 공유했느냐에 따라서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공간 공유의 힘.



그 어떤 '공간'이 사람에게 쥐어주는 힘이 있다면 그 공간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어떤 장소에 들어섰을 때 '여기에서 누구와 함께 있었더라?' 생각이 앞서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과 공간, 그 공간 안에 자리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겨나는 끈끈한 연결고리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것. 아마 그래서 그 과목 이름은 '공간 디자인 입문'이 아니라 '공간 보기 공간 풀기' 였던 걸 거다. 공간을 바라다보는 '사람'이 있음을, 그리고 그걸 다시 각자의 시선에 맞게 풀어보는 '주체'가 여럿 존재한다는 걸 은근히 강조하고 싶었던 걸 거라고 짐작해본다.


Safer at home을 권고하는 매사추세츠 주. 대학들의 수업은 여전히 원격으로 이뤄진다. 슬그머니 그리워지기 시작하는 강의실, 그 공간.


미국 대학원의 여름학기 역시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매사추세츠의 Stay at home 권고가 Safer at home 권고로 한 단계 낮아졌다고는 해도 아직 학교의 문이 '활짝' 열린 곳은 없다. 여름학기도 이에 맞춰 화상회의 앱을 켠 채 진행되는 '랜선 강의'로 개강했다. 교수님이 지정해 준 날짜, 시간에 맞춰 앱에 접속하면 수업이 시작된다. 컴퓨터 카메라를 타고 각자의 얼굴이 비치고 마이크를 타고 서로의 목소리를 주고받는다. 참 요즘 기술력 대단하다. 굳이 학교까지 시간 들여 가지 않아도 수업을 이렇게 한단 말이지. 교수님의 수업계획서도 실시간 화면에 동일하게 띄워 공유할 수가 있고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의 수줍은 자기소개도 시시각각 공유할 수 있다. 대면 수업을 할 때 마주했던 개강 첫날과 크게 다른 것 없어 보이는데...? 그런데 참 이상하다. 수업에 좀처럼 집중이 안된다. 아, 도저히 ‘몰입' 할 수가 없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자리할 때는 왠지 더 집중이 잘되는 느낌
위와 공간은 같은데...혼자 있을 땐 자꾸만 산산조각나던 내 집중력.


동상이몽. 이 말은 코로나 시국 속, 온라인 수업에도 적용된다. 겉보기에는 같은 가상의 공간을 공유하는 것 같은데 실로 너무나도 다른 공간에 발을 딛고 있으니 다른 생각을 꿈틀꿈틀 키울 수밖에. 그 누군가는 미국과의 시차를 꿋꿋이 이겨내 가며 본인의 나라로 돌아가 수업을 듣고 있는가 하면, 그 누군가의 반려동물의 끊임없는 애정공세를 견디며 수업에 참가한다. 어떤 학생은 방 안의 조명을 최소화한 뒤 어두컴컴한 분위기 속에서 수업에 집중하고 또 어떤 학생은 환하게 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바짝 붙어서 자연조명 효과를 누리며 수업을 즐긴다. 수업은 '하나'인데 각각이 품고 있는 공간이 너무도 다르니 몰입력 역시 자연히 산산이 흩어져버리고 만다. 누군가에게, 무언가에 몰입하려면 '하나의 공간'이라는 게 필요하구나! 다시금 절감한다.


코로나 시국 이전, 매주 드나들던 강의실의 풍경을 찬찬히 되짚어 본다. 그 공간 안에는 교수님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악착같이 짚어내는 학생도 있고 끊임없이 모바일 메신저의 전송 버튼만 눌러대는 학생도 있다. 역시나 각자의 습관과 성향은 달랐지만 어찌 됐든 한 건물 안, 과목에 따라 지정되어 있는 '공간'은 끊임없이 자연스레 공유되고 있었다. 4046호 강의실에 모여서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온도와 습도마저 균질한 느낌으로 나눠 가졌다.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 사이에서 교수님이 강조했던 이야기는 그 시각, 그 공간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를 덧입고서 더 잘 기억되는 느낌이었다. 또 다른 날, 조금 달라진 조명 속에서 서로의 생각을 치열하게 나눴던 순간, 각자의 땀이 뒤엉켰던 열띤 토론의 기억은 공간을 주춧돌 삼아 그 위에 켜켜이 얹혀있다. 온라인 강의에는 부재하는 그 어떤 기운이 스며있는 셈이다.


"교통비 줄어들어서 잘됐어"
"같은 내용이라면
원격강의가 훨씬 고효율이지"


땡! 틀렸다. 교통비는 상당히 줄겠고 그에 따른 에너지 소모도 바짝 아낄 수는 있겠으나 쓸데없이 다른 것까지 아끼게 될 줄이야. '몰입지수'와 '집중력'까지 아끼고 싶진 않았던 거잖아. 강의가 모국어가 아닌 탓도 있겠으나 교수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노트북 모니터 너머로 붕 떠도는 느낌이다. 강의노트에 필기하는 건 강의실이라는 공간에 잘 들어맞는 몸짓이었던 게 틀림없군. 같이 수업 듣는 동기들의 발표 역시 발표 단상이 있는 그곳에서 들어야 제맛인 것을! 실시간 화면은 공유되고 같은 주제의 이야기가 바삐 오고 가지만 내용은 이해될지언정 학문 습득의 쾌감과 보람이 부재한다. 그 콘텐츠 안에 나도 모르게 푹 젖어들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용을 공유하고자 선 자들이 너무 제각각의 공간에 서있다. 우리에겐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


공간을 공유하며 강의를 듣던 순간들. 졸업하기 전에 다시 가능해질 수 있을까. 긴장 속에 팽팽하게 오고가던 서로의 발제들이 그리워.


언제쯤 다시 우리는 '하나의 공간'을 공유할 수 있을까. 몰입할 수 있는 그 공간의 힘에 취해 서로의 발표에 집중하고 교수님의 콘텐츠에 몸과 마음을 온전히 녹일 수 있을까. 생활 속 효율이 높다고만 믿었던 제법 괜찮은 기술들이 쏙쏙 한계를 드러낼 때면 자꾸만 '예전의 그것'을 그리워하고 더듬는다. 예전의 아날로그적인 교실, 그러니까 최첨단적인 요소가 하나 둘 빠져있는 그런 풋풋한 공간들이 아련히 그립다.


집콕 라이프가 길어지면서 '홈코노미'라는 용어가 생겨나고, 결국 집을 기반으로 한 라이프스타일이 새로운 대세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혼자 떨어져 집콕하면 몰입과 집중력이 배가 될 줄 알았는데, 그와 정 반대. 공간을 공유하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함께하는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의 힘을 놓쳤었던 결과다.


교수님이 앞에 계시다면 집중은 더 잘 될텐데 말이에요!


각자의 공간에서 인터넷으로 책을 서둘러 주문해 읽는 것보다는 익명의 누군가와 서점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던 기억이 그립다. 모바일로 쓱쓱 지나가버리고 마는 사이버 졸업식이 아니라, 졸업 가운의 냄새가 차곡차곡 쌓인 공통의 공간, 그 안에서의 의식을 원한다. 지금 이 시국에 '공통'의 무언가를 원하는 자는 나뿐만이 아니리라 짐작해 보는 순간.


혼자의 공부보다는 여럿의 공부가 필요한 요즘.


공간을 공유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이 심정이 가을학기까지 이어져야 한다면 어떡하지.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지 못한 아쉬움만 쥔 채, 공중에서 내 집중력 산산이 또 한 번 부서져 내린다면, 그 허무감을 어떡한담. 오늘도 어김없이 집콕하는 오후 풍경. 각각의 공간만이 잔잔히 남아있는 오늘 이 시각, 같은 공간을 공유했던 순간들을 가만가만히 반추해본다. 집콕 라이프스타일이 '뉴 노멀'이래도, 공간 공유에 대한 갈망은 유행처럼 다시 찾아들 거라고 단단히 새겨보는 목요일 오후.

영역을 공유하는 너희들이 부러워서 찰칵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