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가지 공간으로 풀어보는 직장인 유학준비
(유학 일기는 매주 목요일 아침 연재합니다)
- 내 인생에 유학이라니 -
(1편) '유학' 가고 싶던 아나운서
ㅡ (번외 편)
사진으로 담아보는 유학 준비 스토리
(2편) 틈새시간, 나처럼 지내봤니?
ㅡ 방송+유학, 두 마리 토끼 잡기
ㅡ (번외 편) 공부 잘되는 카페 명소 TOP 7
(3편) 막상 유학 와보니 말입니다!
그 언젠간 추억할 순간이 찾아오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졸업식'처럼 그 어떤 성취를 눈에 보란듯이 마주한 순간도 아니고, '결혼식'에서 내내 느낄 법한 공주같았던 순간도 아닌데 과정과정마다 사진이 꽤나 많이 남아있다. 유학준비의 순간들, 졸업식이나 결혼식처럼 이 또한 그 어떤 의식의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살면서 두고두고 곱씹어 보고 싶고, 자꾸만 되뇌면서 '내가 이랬었노라'고 잊지 않고 싶은 순간들. 공부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던 공간 열 가지를 꼽아봤다. 고3 수험생 때처럼 공부의 영역은 집과 독서실, 학교, 공간 몇 개로 한정되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며 시간을 짜내 공부하다보니 공간은 생활반경을 타고 꾸준히 확장되었고 그 틈새 사이마다 추억이 고였다.
#1. 회사 내 자리
그 첫 번째는 단연 회사. 일과 공부의 영역은 날카롭게 분리해두어야 (회사에 대한) '도리'일 것도 같지만 하루 24시간의 대부분을 회사에 머물렀으니 여기에서의 시간을 적당히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는 일상을 좋아했다. 집에서는 자꾸만 '냉장고 문만 열 뿐', 영 집중이 되지를 않는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럴 바엔 차라리 나를 긴장된 공간으로 얼른 데려다 놓는 쪽을 선호했다. 오후 방송 스케줄, 그러니까 공식적인 내 근무시간 전까지 미리 내 자리에 앉아서 그날 하루 해야한다고 정해둔 공부 시작하기.
(근무 시간 전) 사무실 자리에서는 주로 리스닝을 많이 했다. 사람들이 수차례 지나다니는 자리에 앉아 영어를 듣다보면 집중이 잘 안돼 짜증날 법도 하지만 시험장에선 더한 방해요소들이 많을테니 그 또한 훈련이라고 생각해 뒀다. 스튜디오에서는 라디오 프로그램 편집을 하면서 도무지 잘 외워지지 않는 단어들만 따로 정리해 옆에 깔아두는 걸 좋아했다. 일할 땐 일에 집중하는 게 단연 1순위지만 편집하면서 노래가 덧씌워지기를 기다리거나 파일저장이 완료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멍해져야 하는 시간'들도 꽤 많은 편이다. 방송 진행자의 특성상, 방송스튜디오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기'하며 킬링타임해야 하는 때도 꽤 있다. 이럴 땐 단어암기가 최고다. 핸드폰 단어저장 앱도 요즘 워낙 똑똑한 기능이 많아서 멀티플레이하기 참 좋다.
물론 일처리가 흐물흐물 흐트러지도록 내 공부만 챙기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일에 실수가 없게 더 정신 바짝 차린다는 전제 아래 이 모든 게 가능하다는 것을 재차 밝혀둔다. 아! 생방송 뉴스데스크 진행이 모두 다 끝난 뒤, 그냥 퇴근하면 집에가서 쇼파에 쓰러져서 미드보다 잘 것만 같아서 괜히 사무실에 엉덩이를 바짝 붙여둔 적도 많다. 토플 롸이팅은 이때가 최적이다. 깊은 밤이니까 글쓰기 감성(?)도 잘 살아나는 것만 같고! 자정무렵까지 사무실 내자리에서 영어 에세이 몇 편 쓰고 검토하고 가는 스케줄, 이거 강추한다.
#2. 춘천 별다방
난 미국 어느 지역이든
스타벅스만 있다면 살 수 있을 것 같아.
미국에 와서 생활하기 이전, 남편과 장난삼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워낙 좋은 카페들이 테마별로 많은 요즘이지만, 난 자칭 타칭 별다방 마니아. 무엇보다 공간이 널찍널찍한 매장이 많아서 공부하기 좋다는 게 큰 매력. 춘천지역에서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대형 마트 안에 입점한 매장 하나, 도청 근처 매장 하나 정도가 전부였지만, 10여 년가까이 살면서 널찍한 평수를 자랑하는 매장이 꽤나 많이 생겼다. 오픈 시간에 맞춰 등교하듯이 입장하면 공부하기 좋은 단골 자리, 최대한 깊숙하게 그늘진, 구석자리는 늘 내꺼가 된다. 라디오 생방송 시간 전까지 주로 '리딩' 영역을 풀기 딱이다. 적당한 소음 속에서 읽는 훈련하기도 제격이다. 일단 회사에 머물면 틈새시간을 짜내서 공부할 수 있을 뿐이므로! 통으로 문제를 푸는 공부는 나만의 시간이 1시간이상 확보될 때, 방해 안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최선을 다해 pick할 것!
#3. 춘천시립도서관
MBC 회사 파업이 한창일 때 노조활동이 끝나면 이곳도 자주 찾았다. 마침 리모델링이 끝난 직후라서 건물도, 시설도 '신상'이었다. 인테리어 하나하나가 새감각이고 예쁘다는 생각에 자주 들러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다만 시립도서관은 '어린이 장난감 도서관'으로 특화되어 있어서 아이들과 엄마가 자주 찾는 편이다. 방과 후 주변 학교의 학생들이 많이 찾아서인지 다소 번잡하게 느껴지는 감이 있기는 했다. 큰 규모에 찾는 사람도 많다보니 내부는 조용하더라도 건물자체에 '분주함'이 가득 스며있다. 이 느낌이 별로다 싶으면 시립도서관에서 각 동마다 운영해두고 있는 좀 더 작은 도서관을 찾으면 된다. 나는 회사 바로 옆에 위치한 '춘천 청소년 도서관'과 종종 '신사우도서관'을 찾곤했다. 생각보다 국가고시나 기타 다른 자격증 시험 공부하는 어르신들도 많은 편. 지역에는 '도서관' 시설이 꼭 필수겠구나! 싶을 정도로 지역주민들 애용도와 충성도가 높은 공간들. 냉방, 난방시설이 너무나도 우수해서 한여름과 한겨울엔 더욱더 붐빈다.
#4. 강남역 학원가
한 주간의 지역근무를 마치고 서울 집으로 향하는 주말. 하지만 유학준비에 푹 빠져있을 땐 집에 편안히 몸을 뉘일 때가 거의 없었다. 이른 새벽, 해도 뜨기 전부터 밥도 한 술 안 뜨고 학원으로 향해버리느라 엄마를 서운하게 하기 일쑤였던 시절. (새벽 5시쯤. 결혼하고 보스턴에 와서도 새벽5시에 벌떡벌떡일어나 공부하러 카페로 나가버릴 때가 잦아서 남편을 서운하게 했다? )
그래도 어떡하나. 학원에 나가보면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로 그득그득해서 '난 아직 멀었어. 더 열심히 해야돼'라는 마음만 되새기게 되었던 걸. 자극받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공간이 또 있겠나 싶다.
학원 주말 반에서 가장 많이 도움받았던 건 롸이팅 영역. 교환학생 준비중인 대학생들부터 나와 같은 30대 직장인까지 나란히 앉아 도움되는 템플릿을 외우고 응용하는 풍경들. (하나같이 같은 템플릿을 외우는 게 바보같아 보일 수도 있겠으나 언어공부의 기초공사는 어쩔 도리 없이 좋은 문장을 외우는 게 최선이자 최고라 생각한다.) 애쓰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위안이었을까. 워낙에 혼자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주말에 강남역 학원가를 다녀오면 좀 더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독해질 수 있는 기폭제가 필요하다면 별다방 아메리카노 벤티사이즈와 편의점표 아몬드초콜릿을 사들고 이곳으로.
#5. 파업 현장
2017년에 있었던 방송사의 파업은 정말 끝이 보이질 않았다. 길고 캄캄한 터널을 걷는 느낌. 처음 시작할 땐, 9월 말 추석 연휴 전에는 끝나겠죠? 이야기했는데 빼빼로데이마저 넘겼더랬다. 파업을 둘러싼 너무나 많은 배경과 이야기들이 있겠고 조직으로서나 개인으로서나 득과 실이 다양하겠으나, 지극히 '유학준비중인 30대직장인'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분명한 건, 고정업무에서 벗어나 공부 시간 확보에 조금 더 유연할 수 있었다는 점. (마음이 무겁고 불편하다보니 마냥 공부에 집중이 잘 되기만 했던 것도 아니라는 건 다소 함정.)
생각보다 파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런저런 활동참석일정이 있더라도 '뜨는 시간'이 꽤 많았다. 노조원 선배들도 함께 모여 있을 때 '지루함'이 번져온다 싶을 때면, 틈틈이 책이나 잡지를 보며 시간을 쓰시곤 했다. 시간이 엉성하게 훅 지나가버리는 걸 절대 못견디는 나는 스피킹이나 롸이팅 템플릿, 어려운 단어들을 꼬박 꼬박 핸드폰과 작은 수첩에 꽉꽉 담아가지고 다녔다.
언론노조 총 파업 현장에 집합해야할 때 내 작은 가방 안에는 늘 각종 영어관련 자료들이 가득가득했다. 서울 상암 사옥으로, 혹은 광화문광장으로 원정투쟁을 간다고 하면 그 전날밤엔 한나절 야외에서 틈틈이 보기좋을 콘텐츠를 챙겨두느라 바빴다. 핸드폰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거나 유튜브를 보는 것 같았겠지만, 난 늘 템플릿을 외우며 내 문장으로 다시 적어보거나 이도저도 집중이 안되면 그냥 토플 배경지식을 다룬 온라인 강의라도 귓가에 흘려뒀다.
난 참, 시간이 엉성하게 훅 지나가는 걸 못 견딘다. 누군가는 독하다고 하겠지만, 난 1분1초가 꽉찬 느낌으로, 생산적인 느낌으로 지나가는 걸 '좋아할 뿐'이다. 그러고보니 육아를 하고 있는 지금도 그렇네. 눈으로는 아기와 대화하고 있지만 내 귓가에는 항상 영어콘텐츠를 흘려두고 있는 중. 파업현장이나 육아현장이나 다를 게 없다. TMI.
#6. L 스터디카페
'독서실' 같은 카페를 정해두고 다닌 것도 처음이었다. 나 대학 다닐 쯤엔 조모임하기 좋은 '스터디 공간'들은 하나 둘 생기고 있었지만 1인 스터디를 위해 칸막이가 쳐져있는 카페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일반 카페에서 공부하기 좋은 자리를 찾는 게 아니라 완전히 '공부'만 하게 되어있는 전용카페에 입장한다는 게 참 신기했다.
파업기간이 길어지면서 노조모임이 없을 땐 이곳에 아예 출근해서 시간을 보냈다. 마침 집이 대학가 근처였던 덕분에 새로 생겼다고 열심히 홍보중인 스터디카페가 있었으니 이 또한 공부에 마음껏 매진하라는 계시. 아침 9시부터 저녁6시까지 총 9시간을 이용하는 1일권을 구입하면 음료 한 잔을 받고서 눈치보지 않고 앉아서 공부할 수 있다. 1일권 하나에 7천원ㅡ8천원 정도였던가? 독서실의 앞뒤 꽉 막힌 공간보다는 이런 '카페분위기', 듣기좋은 팝송이 귓가에 흐르고 구릿빛 조명이 눈을 적당히 간질이는 분위기를 더 선호한다.
#7. 아파트 독서실
진짜 독서실도 다녔다. 파업기간에는 회사에 공식 출근을 하지 않다보니, 본가가 있는 서울에 머물렀었는데 덕분에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 안에 있는 공용시설들을 참 본전빼면서 잘 이용했다. 관리비가 아깝지 않네? 카페분위기를 워낙 좋아하지만 하루종일 카페에서만 공부할 수 없는 거니까 오전과 낮시간대는 카페. 저녁시간대는 독서실. 이런 식으로 동선관리를 했다. 주민들을 위해 마련된 독서실, 소정의 이용료는 지불해야했지만 한달 내 자리를 지정받아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아깝지 않은 금액이었다.
함께 이용하는 사람들은 예닐곱 명 정도. 중고생들도 있었지만, 주로 엉덩이 떼지 않고 오래도록 집중력을 유지하는 쪽은 나와 같이 나이 좀 있는 언니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무슨 공부를 하는 걸까 궁금할 땐 서로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문제집들을 흘낏흘낏 쳐다보곤 했는데 임용고시 준비생도 있었고 공무원준비를 하는 분도 있었다. 내 책상위에는 리스닝, 리딩 문제집 한 가득. (여기서 잠깐! 독서실에서는 옆 사람에게 방해될까봐 자판을 두드릴 수 없으니 롸이팅 모의 연습은 할 수 없고 스피킹을 위해 중얼중얼하는 것도 불가능함을 기억하자. 조용함이 100% 유지되어야 하는 공간에선 리스닝, 리딩이 최적이다, 반대로 스피킹 공부는 별다방 창가자리에 앉아 혼자 신들린 듯이 중얼중얼하는 게 최고)
#8. H대 스타벅스 창가자리
바로 이 자리다. 스피킹 최적의 공간. 회사 파업기간, 매일 아침 8시부터 11시까지 항상 '스피킹' 영역에 몰두했는데 일단 스피킹 영역 문제 두 텀을 쏵 풀고, (2017년 기준 총12문제) 잘 안풀린 문제에 대해 최적의 답변을 다시 한번 고민하며 중얼중얼 말하기 연습을 한다. 창가 자리에 앉아 바깥 풍경을 친구 삼아 중얼 거리다보면 다른 고객들 눈치볼 필요도 없으니 민망하지도 않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새어나가도 누군가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통화하는 줄 알았을 거라고 믿어보며. 그래, 이상해보이지 않았을거야!
#9. 집에서 나가기 직전 현관
공부할 짐 잔뜩 들고나가기 전에 꼭 한 컷씩 찍는 게 습관이 됐다. 내가 너무 예뻐서 못견디겠어서가 절대 아니라! 그날 공부량과 그날 내표정에 담긴 결연한 의지 확인용. 난 정말이지 헤비패커다. 들고나간 것들 다 공부못하더라도 내가 필요할 때 그 어떤 자료가 없는 걸 결코 못 견딘다. 무조건 그 때 그 때 손에 잡혀야 해! 그래서 무조건 ‘필요할 지도 모르겠는’ 문제집, 영어자료들은 몽땅 들고나가야 직성이 풀렸던 성격. 책가방 한 짐 짊어지고 거기에다가 보조가방까지 또 하나 들고다녔다. 오늘은 얼마나 공부하고 이 집에 다시 들어오게 될 것인가. 기대하고 계획하고 상상하는 재미가 한 컷에 담겨있다.
#10. 서울-춘천 오가는 기차 안
미국에 온 뒤로도 그렇지만 '공부'를 할 땐 운전을 안하는 게 정말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틈새공부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정말 많기 때문에! 지금도 보스턴 도심에 위치해 있는 학교와 그보다 좀 더 외곽이 떨어져 있는 집을 오갈 땐 커뮤터레일과 전철을 이용하는데 (물론 코로나 시국 이전에!) 아나운서 직장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차를 타고 오가는 한 시간은 짧게 훅 흘러가지만 앞서 말했듯, 시간이 술렁술렁 흘러지나가는 걸 못견디는 성격.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들여다보다가 시간 지나가버리는 게 너무 싫어서 늘 뭐라도 듣곤했다.
대중교통 안에서 들리는 주변 소음을 무시할 수가 없으므로 이럴 땐 '리스닝'이 최적. 누군가의 수다소리로부터 방해받지 않을 수 있고 기차 덜컹거리는 백색소음과 잠깐잠깐 중간 역에 정차하는 기본 소음에 견디며 영어를 듣는 훈련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미국 생활 2년차인 지금도 그 습관은 똑같다. 결국 직장인에게 유학준비란, 틈새시간을 얼마나 잘 쓰는지가 관건인 게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