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게 좋아?

좌충우돌, 미국맘 성장기 (22)

by 마이 엘리뷰
@ 미국맘 성장기는 매주 월요일 아침 (한국시간) 업데이트


'뜨겁다'는 형용사는 긍정적인 기운을 담아 쓰일 때가 꽤나 많다. '열정'이 뜨거운 건 좋은 거다. 신입사원의 열정, 새내기 대학생의 열정, 온도가 높을수록 그 활력과 패기는 더 좋은 쪽으로 묘사된다. 더. 죽. 뜨. 도 '뜨거움'의 긍정성을 담고 있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더워 죽어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먹겠다고 귀여운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매일 아침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블랙커피를 내려 마셔줘야 직성이 풀리는 나 같은 사람. 연인의 사랑도 식어버리기 전, '뜨거운' 열기를 잔뜩 품고 있을 때 설렘이 극대화된다. 그러한 열이 최대한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 때 상대방에 대한 신뢰도 높은 온도로 간직될 수 있는 거겠지.


타오르는 노을의 순간, 가끔은 그 빨강의 순간이 부담스레 느껴지기도.


하지만 '육아'에 있어서 뜨거운 건 실로 좋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우선 분유 온도. 가장 먹기 좋다는 분유온도 40도를 알면서도 마음이 급해서 온도가 덜 떨어진 물을 사용한 적이 있다. 식어버린 온도의 분유도 아기가 밀쳐내기 마련이지만, 물이 충분히 식지 않은 분유는 아기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한다. 온도가 예상보다 너무 높다면 입천장을 델 수도 있을 노릇. 여전히 그 순간이 아찔하다. 아기가 배고프다고 혹여 자지러지더라도 '뜨거운' 분유는 금물! 충분히 식을 때까지 반드시 기다릴 것. 회사에서 방송 틈틈이 마시던 코코아도 늘 너무 뜨겁게 제조한 탓에 마실 때마다 입을 뎄던 기억이 있다. 일주일 내내 따갑고 텁텁한 기억이 생생한 것을... 아기에게조차 그런 불편한 기억을 벌써부터 전달할 수야 없지.


커피가 너무 뜨거워도 입천장을 데어버리듯이 분유온도도 조심조심



말해 무엇하리. 아기의 몸도 너무 뜨거운 건 위험하다. 며칠 전 생후 4개월 예방접종을 마치고 왔던 날, 아니나 다를까 듣기만 했던 접종열 증상이 나타나고야 말았다. 평상시에도 아기의 몸이 따뜻한 편인 걸 고려해 '금방 괜찮아지겠지' 믿었지만... 그다음 날로 넘어가던 새벽 결국에는 체온계 38이라는 숫자를 찍고, 경고등까지 번쩍 번쩍이는 순간을 마주하고야 말았던 것. 육아 책에서 본 대로 다급히 아기 옷을 벗기고 혹시 몰라 아기용 타이레놀을 준비해뒀다. 병원에서 일러준 대로 위험수치를 넘기면 바로 투약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연히 온도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마음, 그 간절함이 더해갈수록 체온이 떨어지는 속도가 더디기만 했던 것 같은 느낌. 손수건 한 장 걸치는 것도, 아기를 달래려고 꼭 안아주는 것도 체온을 떨어뜨리는 데 도움이 안 된다니 난감할 뿐이었다. 몸에 열이 가시는 데까지는 접종 이후 꼬박 24시가 정도가 걸렸다. 이런 열기는 정말이지 곤란하다. '뜨거운 건 정말 싫어'.


아기 열이 빨리 내리기를 기다리는 마음. 뜨거운 건 너무 싫어.
병원에서 미리 받아왔던, 아기열내리기 지침서


뜨거워서 위험해지는 건 '아기의 몸'뿐만이 아니다. 엄마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도 최대한 '지양'해야 할 요소 중 하나. 임신 출산에 이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육아의 순간들, 아기가 마냥 예쁜 것에 심취해 '육아'를 완벽하게 잘 해내야겠다는 에너지가 넘치면 본인도 모르는 새 몸도 마음도 뜨겁게 활활 타오른다. 적절히 따뜻한 건, 아기에게 사랑으로 투여되지만 육아에 대한 에너지가 손이 델 정도로 과한 온도를 자랑한다면 왠지 아기에 대한 집착으로 변질될 것만 같다. 너무 애정을 쏟다 못해 아기를 내 맘대로 내 의지대로 조종하며 그 방향성을 내내 쥐고 싶은 욕심까지 쏟아질 게 분명하니까. 과유불급이란 말은 어디에서나 통한다. 열정이 과한 건 '독'이 될 테지. 엄마 마음에도 온도 조절이 필요하다.


왠지 마음이 헛헛해지는 날, 몸은 바스러질 것 같아도 아기를 꼭 껴안는다. 아기 몸의 따뜻한 기운이 한순간의 포옹으로 내 몸에 여과 없이 스며들 때, 그 온기는 곧 소소한 활력이 된다. 뜨거운 아기의 체온은 '걱정'이지만 적당히 따뜻한 아기의 몸은 힘든 육아의 날들에 '힐링'을 선물한다.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날이 체감하는 요즘, 얼마 전 아기의 우유병이 식어버리지 않게 40도 온도 유지를 도와준다는 휴대용 보틀 워머를 장만했다. 보틀 워머는 분유가 끓어오르도록 유도하지 않는다. 그저 온기를 상실하지 않게 꼭 감싸주는 역할을 할 뿐. 보틀 워머 같은 육아의 날들을 보내야지. 살을 델 것만 같이 뜨거운 100도의 물을 끓이는 데 집착하지 않고 적절히 오래도록 따뜻하게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재밌게 봤던 창작 뮤지컬 <더 플레이>에서는 '뜨거운 게 좋아'를 노래하지만 노노, 나는 뜨거운 건 당분간 지양하겠다. 따뜻한 게 좋아. 적당한 온도를 사랑해.


적당히 따뜻한 핑크선셋이 좋아.
과하지 않은 저녁하늘, 보기좋게 따뜻함, 무겁지 않게 담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