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는 미국 엄마
미국에 와서 불편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전화 걸기’. 수십 년 영어공부를 해왔다고 해도 전화 거는 일만큼은 늘 부담스럽다. 상대방이 눈앞에 있지 않고 내 발음과 억양이 고스란히 의사소통의 성공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셈이니, 발음 하나만 까딱 잘못해도 전화통화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까 봐 내심 ‘쫄게’ 된다. 미국 살이 1년 차 때는 특히 더욱 그랬다. 전화통화는 되도록 피하고 싶어 했고 이메일로 필요한 일처리는 하는 게 편했으니까. 그랬던 내가 당시 용기를 내서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 산부인과, OBGYN. 아기의 성별이 너무 궁금해서 가만히 이메일만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내 발음과 억양이 허술해도 전화는 걸어야만 했다. “아 너무 궁금해죽겠어!”
너네가 이메일 준다고는 했지만
혹시나 해서 전화 걸었어.
혹시 유전자 검사 NIPT결과지가 나왔니?
임신 12주차였다. 꽤나 초기에 속한다. 임신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뒤 한 달 반 남짓 된 시점.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었다고 스스로 안심시키고 싶긴 해도 성별을 알 수 있는 시기는 대개 16주차쯤으로 일컬어진다. 물론 개인차도 존재하고 차후 성별 반전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 시기쯤 초음파를 보면 대부분 아기의 성별을 알 수 있다고들 했다. 미국 산부인과 두 번째 방문 뒤 NIPT 니프트 검사로 일컬어지는유전자 검사 한 종류를 받게 됐다. 임신 고위험군은 아니었으나 보험 커버가 된다면 아기가 건강한지 미리 확인차 받는 것도 좋겠다는 주변 지인의 추천을 받아 시행한 검사. 혈액 채취를 통해 진행된 유전자 검사라 결과지를 수령하면 자연스레 아기 성별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니프트 검사를 받더라도 성별 고지를 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메일을 기다리라고 결과지 보내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젠더가 그렇게나 궁금했다. Girl or Boy?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자면 ‘피식’ 웃음부터 나온다. 그땐 왜 그토록 목 빠지게 성별이 궁금했을까,,, 마치 딸일 것 같다는 잠정적 확신에 태명도 ‘딸스럽게’ 지어두고서 OBGYN (미국 산부인과)에서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 해주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걸까.
해시태그 <#12 weeks pregnant>를 달아두는 시기에 성별이 궁금해 죽겠는 마음은 아무래도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절실히 공감해요. 그 간절함!) 내 브런치의 유입 키워드를 살펴보자면 ‘12주차 성별’, ‘임신 12주 성별’이 매일 빠짐없이 검색된다. 수개월째 이런 현상이 계속되는 걸 보면, 세월이 흘러도 육아 트렌드가 바뀌어도 임신 초기 ‘Gender Reveal (성별 공개)’에 관련한 궁금함은 하루 이틀의 것이 아닌 것 같다. 특정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두말할 필요 없이 이유불문 그냥 너무 궁금한 거다. 약 두 계절 정도를 지나고 만날 그 아기가 아들일지, 딸일지. 현재 자녀가 있다면 이 자녀와 동성일지, 이성일지.
때때로 임신 12주차, 물음표가 하나였던 시기가 그립다. ‘아기가 딸일까, 아들일까’ 물음표를 품었던 그 순간엔 그 하나의 물음표만이 내 하루를 꽉 채웠다. 아기를 출산하고 18개월이라는 시간 키워오다 보니 내 아이에 대한 생각, 육아와 자녀교육에 대한 물음표는 기하급수적으로 몸을 불렸다. 물음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산되고 재가공되어 한정된 내 머릿속을 꽉 채워나간다.
아기가 유독 끙끙 앓았던 날엔 특히 더 그렇다. “내가 어떤 부분을 놓쳐서 이토록 아기가 힘들어하는 걸까?”, “해열제을 먹여야 할까 말아야 할까?”, “혹시 몸속 어딘가에 염증이 생겨서 아픈 건 아닐까?” 등등. 추측하고 가정하고, 안 좋은 상상은 애써 닫아걸었다가, 다시 또 다른 물음표들을 나열하고 켜켜이 축적시킨다. 육아 18개월 차 엄마의 머릿속은 이토록 수많은 물음표가 교차하는 ‘전쟁터’다. 육아가 힘든 건, 단순히 아기와 함께하는 일상에 체력이 달리고 잠을 잘 못 자서가 전부는 아닐 거다. 엄마가 고된 이유는 여러 개의 물음표를 감당해야 해서이기도 하다.
넌 아들이니 딸이니?
어느 쪽이든 무탈히 잘 있어주렴
한 가지 물음표와 한 가지 주문 정도만 단정하게 자리했던 임신 초기. 그리고 고군분투 전쟁 같은 육아 라이프를 치러내며 떠올리는 질문 릴레이의 나날들. 후자를 치열하게 겪는 요즘, 다시 나는 임신 초기 어르신들의 말씀을 다시금 되새긴다. “아들이든 딸이든 무탈히 건강하게만 자라게 해 주세요.” 지금은 앞의 선택 가정을 생략해도 좋으니, 다시 적어보자면, “그저 무탈히 건강하게만 자라게 해 주세요.”
시도 때도 없이 육아에 ‘변수’가 찾아들고, 때로 그 변수는 잔잔히 지나가기도, 혹은 하루종일 엄마의 일상을 꼼짝없이 만들어버릴 만큼 거대한 폭풍 같기도 하다. 아기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엄마는 긴장하고 걱정하고 초조하며, 시어머니의 코드 안 맞는 조언 (이를테면, “애는 다 아프면서 크는 거다. 너 너무 예민하게 애 키우지 마라”) 을 꺼이꺼이 감당하면서도 정성을 다해 최고의 치료법, 최적의 회복 타이밍을 찾으려 애쓴다. 어쩌면 한 가지가 너무 궁금해 죽겠던 그때가 오히려 평온했다. 그땐 모래사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 바다에 입수해 18분쯤 앞을 향해 헤엄친 느낌이랄까. 아기 18개월 차 엄마는 그런 기분이다.
임신 12주
아기 성별이 궁금해요
임신 초기, 아기 성별에 대한 궁금증, 그 물음표를 찍은 분들이 이젠 마냥 부럽다. 초조해하지 않아도 우리 아기의 성별은 그 언젠가 대단히 자연스럽게 밝혀진다. 몇 주 차에 알게 되든, 어떤 결과지가 내게 쥐어지든, 그 어느 쪽의 대답이라도 모두 기쁠 것이다. 하지만 육아 일상 수많은 물음표 아래 살아가는 엄마의 일상, 그 물음표들에 대한 정답은 언제 또렷이 그 실체를 드러낼지도 모를 일. 게다가 그 답들이 엄마의 가슴을 쓸어내릴 쪽인지, 걱정을 배로 키울 방향을 품고 있을지도 아직은 모를 일이니까.
간결한 물음표에 간혹 답답했지만 대부분 설레고 떨렸던 그 순간 임신 12주차의 어느 날,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 오늘을 떠올려본다. 바람은 포근했고 햇살은 참 따뜻했던 가을날이었다. 학교에 가려고 전철역에 서있었고 플랫폼 바닥에 진 내 그림자가 그날따라 근사하고 우아해 보였던 오후 1시와 2시 사이. 핸드폰 수화기 너머로 그들은 아주 또렷하고 심플하게 결과를 알려줬다.
“Congratulations. It’s a 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