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는 미국 엄마 (2화)
“위잉,,, 땡땡땡. 삐리릭.”
부엌에서 흘러 나는 소리가 꽤나 요란하다. 전자레인지는 다 돌았다고 꺼내 달라고 난리지, 오븐은 제 온도에 다 달았다고 부지런히 멜로디를 뿜어내지, 거기에다가 프라이팬에 올려둔 계란말이는 바스락 거리며 자칫하면 타들어갈 위기에 직면해있다. 오 마이 갓! 신이시여 살려달라고 하는 말은 이럴 때도 제격이구나. 부엌이 그야말로 ‘전쟁터’가 되었다. 거대한 집들이를 하려고 대단한 파티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어느덧 이곳은 난장판 ‘꼬라지’가 되어버렸다. 이상 아기가 먹을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현장.
미국에 다시 돌아와서 가장 어려웠던 건 ‘아기 밥 만들기’. 미국에서 출산하고 약 10개월 간 미국 육아를 이어왔었으나, 그 당시엔 사실상 아기와 ‘식사’를 준비하는 루틴이 없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식사’를 할 연령에 도달하지 않았었기 때문. 분유 포트에 약 40도가량에 달하는 물을 깨끗하게 소독된 젖병에 담고 정성스레 분유를 타면 미션 완료. 150일 차부터 이유식을 시작했으나, 종종 미국 배달 이유식 업체를 이용했고 때때로 베이비푸드 메이커에 쌀과 소고기, 고구마를 찌고 갈아 가지런히 담아내면 끝인 일이었다. 허나 16개월 아기의 일상은 전혀 다른 페이지. 돌을 치르고도 넉 달 남짓 자라난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분유 120ml, 이유식 180g으로 감당 가능한 지대를 훌쩍 뛰어넘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미국에 다시 돌아와서
가장 어려웠던 건
다름 아닌 아기 밥 만들기
아기 밥과 반찬을 미국에서도 정기 구독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부질없는 상상 해보기를 여러 차례. 실시간 빠른 배달, 새벽 배송이 활성화된 한국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내내 아쉽고도 속상했더랬다. 365일 다이어트하는 게 주 캐릭터(?)인 나는 내 밥도 안 차려먹기 일쑤. 부엌과 친하지 않음 정도를 가늠하자면 아마 미국 내 엄마들 중 최상위권이 아닐까 싶을 수준. 게다가 나에겐 나보다 훨씬 부엌일을 잘 해내는 남편 님이 계시겠다. 미국 석사 유학 내내 바쁘고 고단하다는 핑계로 남편 밥은 남편 님 스스로 알아서 챙겨드셨더랬다. 이런 내가 아기의 끼니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가 되었다. 분유와 이유식 시기를 다 넘어 정말 아기 밥상을 준비해야만 한다. 팬데믹 (pandemic)을 지칭할 때나 ‘unprecedented (전례 없는)’ 표현을 쓴다고 생각해왔으나 딱 지금 나의 상황이 바로 ‘unprecedented’와 다름없었다.
우선 남편의 손을 많이 빌렸다. 1단계, 남편이 아기가 먹기 좋을 식감으로 밥 해두면 나는 그 질감이 적절하네, 너무 찰지네 평가하기. 2단계, 남편이 끓여놓은 소고기 미역국에 그 고슬고슬한 밥 말아주기. 3단계, 남편이 출근하기 전 양념해둔 불고기 지글지글 구워 덮밥 만들어주기. (부엌 요정 / 남편 없이 / 미국 생활 / 의미 없다). 허나 언제까지 바깥일에도 적잖이 바쁠 남편에게 ‘아기 밥’까지 의존할 수는 없는 일. 내년 가을 학기, 다시 내 학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자그마치 1년간은 가정보육에 힘써보겠다고 다짐하지 아니했던가. 나만의 ‘비기’가 슬슬 필요할 시점이 됐다. ‘요령’을 터득하고 제법 ‘패턴’을 만들어야겠다는 필요를 느꼈다. 이는 #미국엄마 부캐를 선언하고 자존심이 걸린 일이기도 했다.
#미국유아식
#미국이유식
미국엄마 부캐에
자존심이 걸린 일이잖아
부엌일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노력한다고 ‘잘할 수는’ 없는 일. 그래도 ‘최소한’은 해야겠다고 애써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짊어지고 온 딱 두 권의 유아식 책이 있었고 (미국 유아식 책 1권 + 한국 유아식 책 1권), 미국 유아식마저 배달 서비스에만 의존하기에는 영양적으로 너무 허술하고 얄팍해서 안 되겠다는 엄마로서의 ‘양심’이 있었다. (=사랑과 정성.이라고 독자분들께 해독되기를.)
그리하여 5구 식판에 계란말이와 양송이버섯 구이를 종종 썰어내고 야심 차게 첫아기 미트볼 만들기 생산, 공정에도 성공! (거의 공장 하나 가동하는 프로세스와 다를 바 없이 거창하고 심각하게 임했으므로 최강 진지한 단어 선택.) 너무나 신기한 광경을 부엌 최대한 먼 곳에서 떨어져 지켜보며 감격했다. “와아, 아기가 내가 만든 음식을 진. 짜.로. 먹고 있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할 일들이 서툰 미국 엄마에겐 감동과 환희의 순간. 흔히들 말하는 ‘입꾹닫’ (입을 꾹 닫고 음식을 안 먹으려는) 아기인 줄만 알았는데 먹었고, ‘밥안모’ (밥 안 먹는 아기 모임) 가입 회원인 줄 알았는데 먹었다. 먹는 족족 성장 발달에 예민하게 반영될 시기일진대 허겁지겁 잘 먹든, 그냥저냥 마지못해 먹든, 일단 먹어주기만 해도 참 고맙다. 아기는 남편과 참 다른 존재. 남편은 사랑과 의리로 ‘맛이 없어도(?)’ 반색하며 먹어주겠으나 아기는 제 입맛이 아니면 툭 뱉어버리면 그만일지어다. 아직 엄마에 대한 ‘의리’의 정은 형성되지 않았을 게 분명하지 않겠나. 여전히 서툴지만 그나마 엉성한 엄마의 상차림을 받아주는 아드님께 감사드리며, 오늘도 조용히 홀로 되뇌어 본다. 남편 밥, 내 밥은 모르겠고, “아들 밥은 차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