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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Sep 08. 2021

아기와 ‘거리두기’

부캐는 미국 엄마 (4화)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맛보면 끊을 수 없는 것’


중독성 높기로 소문난 이름난 K 도넛일 수도 있겠고, 슴슴하고 밋밋하나 자꾸만 찾게 되는 한 노포의 평양냉면일 수도 있겠다. 때때로 찾는 베이킹 클래스의 힐링 정도가 상당한지라 꽤나 고가임에도 자꾸만 등록하게 되는 원데이 클래스일 수도 있겠고, 혼밥이나 혼술의 해방감이 좋은 사람은 자꾸만 그 루틴을 반복할 테지... 특정 운동 종목이나 취미에 꽂혀서 나도 모르게 시도하게 되는 것들도 있을지어다. 안 해봤으면 안 해봤지, 한번 그 맛을 보고 나면 아예 그 맛을 몰랐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게끔 날 단련시켜버리고 마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육아를 시작한 이에게 그것은 어. 린. 이. 집.


어린이집 재밌단 말이야. 가면 친구도 있단 말이야. 어린이집 갈래앵. (어린이집 보내고 싶단 말이야. 엄마만의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야)



한 번도 안 보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보내보면
안 보냈던 시절로 돌아가기 힘든 것.


코로나 시국에 아이를 원에 보낸다는 것은 당연히 조심스럽다. 한 때 거리두기 기준 강화에 따라 어린이집 ‘휴원’ 기간이 상당 기간 이어졌던 적도 있었다. 생활 속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휴원 조치가 해제됐던 시절, 갓 돌 무렵 아기와 함께 어린이집 문턱을 밟았다. 아, 정확히 말하면 ‘내’가 밟았구나. 아기는 아기 띠 속에 숨어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있던 시절이었으므로. 아기와 함께 하는 시간은 너무도 소중하지만 ‘장기적 육아’ 관점에서 엄마 개인의 시간이 하루 24시간 속 잠깐이나마 샘물처럼 솟아나는 것 또한 너무도 귀하다.


그 시간 동안 뭐 대단한 쇼핑을 즐길 것도 아니거니와 지인들과 여유 부리며 맛집 탐방을 가고픈 욕심 때문도 아니다. 잠깐이나마 생각과 생활을 정리하려면 아기와 ‘거리두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소소하게는 은행 볼 일도 볼 수 있고, 오늘 아침 배달 온 택배를 찬찬히 뜯고 정리할 수도 있다. 책 한 권은 안되지만 읽고 싶던 최근 이슈 기사 한 꼭지를 읽을 수 있고, 잠시 클럽하우스에 접속해 육아 관련 정보나 영어 콘텐츠를 살짝 들어보기도 한다.


이토록 소박한 시간 확보가 때때로 인사이트를 안겨준다. 내가 잠깐의 한숨을 돌리는 사이 아기가 혼자 소외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참 고마웠던 부분. 내가 잠시 물러선 사이 그 자리는 아기의 또래 친구들과 어린이집 선생님과의 소통이 잔잔히 들어찬다.


소박한 시간 확보의 맛
아기와도
 ‘거리두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미국에 와서 지내며 이 ‘끊을 수 없는’ 어린이집의 맛을 놓아둬야만 했다. 이곳도 당연히 데이케어 시스템이 있지만 이런저런 면에서 한국 같지가 않다. 일단 비용적인 부분. 한국은 정부지원이 전면 가능해 사실상 어린이집을 등록해 보내는데 공식적인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런저런 준비물을 챙기고 예쁜 아이템을 마련해 학부모 역할을 자처하는 부분은 내가 좋아서 쓰는 비용이니까.


아아, 오늘도 집에서 아기랑 지지고 볶아야만 하는가. 아기 잠든 틈타 공부하는 것만이 정령 최선이란 말인가.



미국은 말해 뭐해, ‘완전’ 다르다. 내가 직접 알아보기도 전에 혀를 내 둘렀던 건 보스턴 지역 기준 풀타임 (오전부터 오후 내내) 데이케어가 무려 3000달러 (한화 360만 원 선) 넘어선다는 정보 탓. 요일과 시간을 선택해 보내는 ‘파트타임’은 당연히 그 비용적 부담이 덜하겠으나 여전히 2000달러 (한화 240만 원선) 남짓을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 (미국 내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두시길). 외벌이 가정에 대학원 유학을 아직 진행 중인 (=현실적인 고정수입이 없는) 나로서는 풀타임이든, 파트타임이든, 어떤 선택지도 ‘편안하지 않을 수밖에’. 좋게 좋게 가정보육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벌지 않으니 (애) 봐야지’라는 초 기본적이고 단순한 원칙에 순응하기로 했던 거다.  


어린이집. 아예 안 보내봤다면 모를까, 한번 보내본 자는 도무지 잊기 힘든 감동의 루틴을 느낀다. 잠깐 거리두기에서 오는 소박한 휴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립고 때때로 회상하며 부질없을지라도 다시 희망한다. 어린이집을 말이다. 한번 그 ‘등원’의 맛에 길들여진 초보 학부모였을진대, 어찌 그 잠깐의 고마운 해방감을 쉬이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미국의 어린이집, 소위 ‘데이케어 (daycare)’라고 지칭하는 그곳의 맛은 어떨지 상상해보며 유독 마음이 고단한 날엔 빼꼼히 그 맛에 대한 애잔한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등 하원 루틴에 대한 그리움이 한껏 고양됐던 날, 한국에서 다니던 어린이집 선생님께 안부인사를 넣었다. “잘 지내시죠, 저희도 잘(?) 지내고 있어요.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네요. 타국에 나와보니 더 선생님께서 주신 사랑이 얼마나 컸었는지 날로 깨닫습니다. (=어린이집 너무 보내고 싶어요)”


너무 애쓰지 마세요.
아이들은 엄마 아빠
사이좋은 모습만 보고 자라도
밝은 아이로 자란다고 하더라고요



가정보육에 한껏 지쳐버린 내 마음을 들켜버린 걸까. 육아 선배, 인생선배인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은 마치 멀리서 지켜보고 계셨다는 것처럼 가볍고도 묵직한 메시지를 이 먼 곳, 미 동부까지 던져 주셨다. 부사와 동사, 어말어미 서넛이 두루 얽힌 짧은 한 마디였는데 그 말은 누군가와 서너 시간 수다를 나눈 듯한 힐링효과를 품고 있었다. “너무. 애쓰지. 마세요.”



어린이집에 가면 더 재밌고 신나게 놀 수 있을 텐데. 너도 나도 지금보다 더 해방된 느낌일 텐데.



여기에서 어린이집 못 보낸다고 속상해하지도 말 것. (실로 한국과 비용 차이가 어마어마한 것). 어린이집 가서 풍부한 체험하고 오질 못하니 내가 대신 채워주겠다며 엄마 본인이 너무 ‘나대지’ 말 것. (쉽게 곧 지쳐버릴게 분명하므로). 일 순간 대단한 포부로 아기 보는데 열의와 정성 다 뽑아내지 말 것. (육아는 장기전이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오늘 하루 이 순간 아기 얼굴, 내 얼굴 번갈아 바라보며 일상을 즐겁게 받아들일 것. 아기의 담임선생님께서 토스해주신 가벼운 한 마디를 나는 이렇게 장황하고 거창하게 아로새겼다. 한 마디에 실린 기운 덕분에 그날의 육아 피로가 산산이 멀리 흩어져 가던 느낌.


너무 애쓰지 말기로 한다. 그마저도 결코 쉬운 다짐은 아니겠으나 ‘애쓴다’고 훌륭한 육아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기에. 3000달러 남짓의 데이케어 없다고 마음 달아하지도 말 것, 뒤쳐진다고 생각하지 말 것. 오늘 하루 행복할 수 있다고, 나도 크고 아이도 자랄 수 있는 기회라고 돌연 생각해보기로 한다.


오늘 하루도 ‘되도록’ 애. 쓰. 지. 말아보자 (과연…). 일단은 말이다. (=파트타임이라도 보내고 싶은 절실한 마음은 이글에서만큼은 ‘살짝’ 감춰두는 걸로).



“엄마, 나 오늘은 어린이집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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