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그만두고 34가지 일상기록 -4]
남편이 출장을 떠난 지 3일차 아침, 한참을 두리번 거렸다. 남편의 흔적이 허전해서가 아니라, 있어야 할 그녀가 없었기 때문. 가까이 다가오진 않더라도 늘 시야 안에서는 어슬렁 거렸는데 어쩐 일인지, 털끝하나 눈에 띄지 않다니. 침대 밑, 이불 속, 고양이 화장실, 쇼파 뒤 편 좁은 공간까지 세밀히 눈을 뒀지만 "어? 고양이 진짜 어디갔지?" 남편의 최애 그녀. 고양이가 보이질 않는다. 새벽녘에 사료 통을 덜컹거리는 소리는 분명히 들었던 것 같은데, 문이 열려있던 것도 아니니 가출했을 리는 없다. 아무리 사람만큼 똑똑해도 서랍문을 열고 어디 들어가 있지는 않겠지. 그럴 만큼 그녀의 손끝과 발끝이 섬세해보이진 않았다.
이쯤 하면 내가 뭘 잘못했나, 이유없는 자책이 시작되던 순간, 잠깐의 스트레스에 급격히 당이 떨어졌는지, 긴급 충전을 위해 뭐라도 먹어보려 육포봉지에 손을 갖다대는데! 그 순간 "끄르릉" 거리는 소리. 그러면 그렇지. 내 걱정 품은 한숨소리가 육포 봉지 비닐을 타고 살포시 들어가 앉기도 전에 바로 반응보여주시는 식탐 그녀. 낯선 그대, 고양이는 바로 옆 캣 타워 안쪽에 고고하게 숨어계셨다. 남편이 떠난 뒤, 내 곁엔 고양이가 남았다. 그녀와 내가 단둘이 동거한 사흘째 아침, 육포 한 조각 위에 얻힌 질투 섞인 신음소리를 들으며 반쯤 감겨 있던 눈을 희번득 뜨며 그녀의 자조섞인 한모디를 해석해봤다. "너만 먹냐옹." 너 지금 이렇게 말한 것 맞지?
큰일 났다
우리 잘 지낼 수 있겠니
보스턴에 와서 새댁생활을 시작하며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롱디 3년 차, 떨어져 있는 시간이 오히려 익숙했던 커플이었기에 둘의 생활방식을 조율해 나가는 것도 만만치 않을 거라 생각했던 차, 아차차,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보스턴 라이프에서 미처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한없이 미뤄뒀던 중요한 변수 하나. 바로 '고양이'였다. 어릴 때 한번도 강아지며, 고양이며,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았던 나에겐 어쩌면 가장 큰 숙제가 될 영역. 어떻게 접근해야할 지 막막함, 그에 따라붙은 막연한 불안감,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본능적으로 '고양이 키우기'에 대한 생각 회로 자체를 닫아버렸던 것 같다. 어떻게 같이 지내야 할까. 친해질 수는 있을까. (정말 초보적인 궁금증, '물지는 않을까?'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질문이 산더미였을 만도 한데 여기에 도착하기 전까지 남편에게 진지하게 묻고 제대로 이야기 해보려하지 않았다. 걱정을 내비치는 순간, 수 년간 애묘인 삶을 살아온 남편까지 마음 안 좋아질까봐.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아예 '잊고 있었던' 나의 머리와 마음은 보스턴 신혼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어쩔 줄을 모르는' 상태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남편은 출장을 떠났고, 집에는 나와 고양이만 남았다. 이거 큰 일 났다. 우리 잘 지낼 수 있겠니.
자유롭게 움직여도 될 지에 대해
조곤조곤
재고 있는 듯했다
그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남편과 같이 밥을 먹을 땐 "뭘 먹냐옹"하는 듯 늘 종아리 근처에 와서 서성였고, 뭔가 뚝딱뚝딱 부엌에서 식기를 만질 땐 "그거 내꺼냐옹"하는 눈초리로 한번은 째려봤다가 귀엽게 애교섞인 슈렉고양이 눈동자를 내비치곤 했었지 않았나. 그가 떠나간 자리, 내가 무슨 행동을 해도 한 자리에서 지켜만 보는 그녀. 감시하는 눈빛이거나 감독관의 자태는 아니다. 그냥 굉장히 조심스럽고 스스로 애써 침착해지려고 애쓰는 듯하다. 내가 쓱 돌아보기라도 하면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외쳤을 때 돌연 '일시정지'가 된 친구를 연상케 하듯 '얼음'이 된다. 같이 놀자는 건가? "얼음 땡!"해주려고 조금만 다가서면 '화르륵' 놀라서 뒷걸음질. 또 다시 훽 돌아보면, 또 다시 일시정지, 그러다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눈을 흘겨뜨기를 몇 차례. 고양이도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새로운 초보 집사 앞에서 자유롭게 움직여도 될 지에 대해 조곤조곤 재고 있는 듯했다.
고양이에게도
주머니가 있다면
나에게 쓰는 '사표'가 숨겨져 있진 않을지
한마디로 '고양이 눈치'. 나만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게 아니었다. 그녀도 지금 어쩌면 참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거겠구나 싶었다. 고양이 너란 세계에 이런 해석이라면 유사하려나. 10년 다니던 직장에 돌연 내 부서를 잘 모르는 국장님이 입성한 셈이잖아. 그것도 아직 지역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때때로 어리바리함을 가감없이 내보였으며 가끔은 집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돌발행동'을 하지를 않나. (가끔 필라테스 자세를 하거나 발레스트레칭을 하겠다며 살짝 점프만 해도 고양이, 그녀가 아주 싫어했으므로). 새로운 환경에 잔뜩 긴장했으나 애써 그러지 않은 척하고 있는 내가 조금은 안쓰러우면서도 '새주인'은 새 주인이니 적당한 예우를 갖춰주려고 부단히 노력했겠지 싶다. 그러한 노력의 몸짓이 바로 너의 '눈치'라는 것으로 온몸에서 발현된 셈. 되짚어 생각해보니 내가 온 뒤 한번도 내 앞에서 '싫은 내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눈치만 봤다.침대 위로 올라오려다가 내가 흠칫 놀라기라도 하면 미안한 듯 어서 내려가 주기를 수차례. 고양이도 직장인이었다면, 얼마나 그만 두고 싶었을까. '새 주인' 밑에서 냥이 놀이를 한다는 것. 아마 고양이에게도 주머니가 있다면, 그녀의 새까맣게 좁은 털 틈 사이엔 나에게 쓰는 '사표'가 숨어있진 않았을지. "미안. 나 이제 너 그만 눈치보고 싶거든. 눈치보기 지겹거든. 눈치없는 고양이 세상에서 살고 싶은 거거든. 냐옹"
나도, 당신도
고양이 같은 시절이 있었다
눈치보는 고양이 앞에서 10여 년의 직장생활, 그 속에 담겼던 '눈치'의 기억들을 하나 둘, 휘리릭 꺼내본다. 적당한 눈치는 '일 잘하는 센스'라 불렸고, 과도한 눈치는 소심한 직원의 '무기력한 투정' 정도로 비춰졌다. "이렇게 행동해도 괜찮은 건지" 잔뜩 긴장한 상태로 조심조심 품었던 새내기 시절의 '눈치'라는 형체들은 시간이 흐르며 "인생 뭐 있니. 이렇게 하면 조직이 나를 어쩔건데" 라는 툭 튀어나온 못된 모양새로 외형을 바꿔가기도 했다. 입사해서 퇴사할 때까지 눈치라는 걸 간직하지만 모양도 색깔도 그 안에 깃든 농도도 쉴 틈 없이 꾸준히 달라져 갔다. 그렇네. 나도 고양이 같은 시절이 있었다. 고양이 눈치를 닮은 그 시절들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단화를 신고다니는데도
낮아진 굽의 높이에 '눈치'가 잔뜩 실려서
결국 걸음걸음마다 피곤하기는 마찬가지
새 동네에서도 눈치는 매일 매순간, 이어졌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발걸음엔 늘 눈치가 실린다. 외국 여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관광객들은 대개 자물쇠를 몇 개씩 달아 잠근 짐가방을 보호하듯, 몸짓하나하나에 '눈치'라는 것으로 보호막을 장착한다. 이렇게 하면 혹시라도 현지인들이 싫어하려나, 어글리 코리안이 되지 않으려 꼿꼿하고 바르게 움직이려 애쓰고 올바른 관광객의 룰을 따라가고자 가이드의 조언, 블로그의 수많은 팁에 따라 눈치보며 움직인다. 하물며 열흘과 보름 사이 짧은 '여행'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할 '이방인'의 몸짓이야 오죽할까. 하이힐이 아닌 단화를 신고다니는데도, 낮아진 굽의 높이에 '눈치'가 잔뜩 실려 결국 걸음걸음마다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인 셈. 그나마 걷는 길이 울퉁불퉁하지 않은 매끈한 도로였음 좋기를 일분 일초 바라볼 뿐. 꽃길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그저 오늘 걷는 길 속에서 자갈들에 채이지나 말았으면. 상처가 나더라도 투명연고 적당히 덧칠하면 흔적 사라질 가벼운 흉이었으면. 오늘 본 눈치 때문에 오늘 밤, 마음이 '까무룩' 시들시들해지지만 않았으면. 아주 적당한 높이만 눈치로 채울 수 있었으면.
다시 고양이 이야기로 돌아와서! 내 눈치보는 고양이, 저 아이는 지금 얼마나 고단할까 다시금 생각해본다. 아니 반성해본다. 말하지 않아도 눈치보는 자들의 피로감은 봐 본 사람은 다 알지 않는가. 저 새로운 여자 주인, 초보집사가 시간 맞춰 내 먹이를 잘 놓아두기는 할 것인지, 내가 오늘 저 여자 옆에서 이불덮고 같이 잠을 청해도 안전할 것인지, 아니면 깔끔히 포기하고 침대 근처에도 안 가는 게 신상 편할 일일지, 침대 진입에 대한 허가장은 받아내도 괜히 자다가 나한테 성질 부리는 것은 아닐지! '에라모르겠다' 캣타워가 안전지대로구나. 그냥 이렇게 생각해버리고 말아야하는 것인지. 얼마나 많은 눈치가 머리부터 꼬리를 타고 스트레스 세포와 함께 회전하고 있을까. "너너. 그렇다고 지금 사표 꺼내는 거 아니지?"
나도 너처럼 눈치를 봤어
내 마음을 읽은건지, 조곤조곤 혼잣말을 읆조리는 내 입술에서 또 하나의 눈치를 챈건지, 늘 쌩하고 잘만 도망다니던 고양이가 웬일로 내 옷에 얼굴을 부비며 바짝 다가온다. 한 바퀴 빙 돌다가 드러눕고, 또다시 비비고 또 한 바퀴 빙. 이 쯤하면 나 집사 2인자쯤으로 인정 쪼끔 해주겠다는 건가. 나도 또 한번 고양이 눈치를 쓱 살핀다. "야. 아직아니그릉?" 그릉그릉 내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 묵직하고 짙은 느낌으로 들린 건 나만의 느낌인 걸까. '너 아직 내 눈치 좀 더 봐야되겠다'고 질책하는 것 같기도 하고, '너가 눈치를 보든 안 보든 신경안 쓴다그릉'. 무심하게 정색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생은 틀렸어.
눈치만 보다가 끝날 것 같아. 냐옹
그래도 말이지, 내심 안아달라고 보채는 듯한 표정을 읽은 것 같은데 맞으려나 (1. 선배 집사님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치 하나). 나 좋다고 너 이러는 거 맞지 않니? (2. 다시한번 동의를 구하는 초보집사의 고양이 눈치 보기 둘). 그런 생각하기 전에 어서 고양이 화장실이나 좀 잘 정돈해주지 그래? (3. 멀리 출장가서 왠지 날 다 지켜보고 있는 듯한 남편 눈치 셋). Hey, Don't you look at your T-shirt being covered with your cat's fur! How terrible!!! (4. 고양이 털 이나 좀 제발 떼고다니지 그래요. 카페 옆 좌석에 앉은 사람들 눈치 넷). 저기요. 그런데 이글 이 문단에서 이제 끝나긴 끝나는 건가요? (5. 브런치 본격 시작한 지 겨우 1주차, 소심해지는 초보작가의 독자들 눈치보기 다섯). 아아, 이쯤하면 끝나지 않는 눈치 인생! 뭔가 배배 꼬여가는 뒤틀린 심경을 읽어냈는지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2인자 집사에게 끄르릉 야옹. 소심하게 쳐다보는 야옹이 녀석. 그래 너도 나도 결국엔 눈치 인생인가봐. 아아, 이번 생은 틀렸어. 눈치만 보다가 끝날 것 같아. 냐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