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택배

[아나운서 그만두고 34가지 일상기록 - 8]

by 마이 엘리뷰

월요병을 극복할 수 있는 특효약? 회사에 한창 다니던 시절, 유독 피로감이 몰려오던 날엔 주변사람들과 꼭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찾는다고 해서 찾아질 리 없고 그런 특효약이 있다고 해도 이거 얼마나 효력이 가겠냐마는, 그래도 꽤 많은 동료들이 진심을 다해 마음을 모아 고민하고 또 연이어 투덜거렸다. "일요일에 출근하면돼. 그럼 월요병이 올리가 없잖아?", "월요일에는 최대한 딴짓해. 일할 생각을 접어", "월요일엔 칼퇴하고 백화점가서 사고싶던 거 하나 용감하게 '질러'" 등등. 다들 하나씩은 짜낼 수 있는 대로 짜내보려 노력했다. 물론 듣자마자 '피식' 웃어버리고 넘길 소심한 아이디어들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그냥 되는 대로 견디는 수밖에 없는 피곤 덩어리 월요일, 새벽녘 비비크림을 대충 짜내 바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진심으로 출근하기 싫은 느낌. 출근도 안했는데 퇴근하고 싶어지는 강력한 아이러니. 근데 이렇게도 싫어 죽겠는 월요일이 때때로 반가울 때도 있었으니 바로 이름하야 '월요일 택배'. 최대한 적절한 타이밍을 연구하고 고민해서 딱 월요일에 수령할 작정으로 '택배'를 주문해 두는 것.

이 상자를 열면 뭐가 들어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순간들


짠, 나의 설렘을 한껏 올리는 택배상자, 그 작은 마법


"수현 아나운서, 택배왔어요"

월요일 회사에 출근한 뒤 주차 자리를 찾아 빙글빙글 돌다보면 정문을 지키던 경비아저씨께서 기다리고 계셨다는 듯, 방긋 웃으시며 갈색 상자를 내미신다.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괜찮다. 월요일 아침,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꾸역꾸역 커피와 베이글을 밀어넣고 '진짜 일하기 싫은 날이네' 중얼거리며 집을 나섰던 그 월요일. 회사주차장에 도착해서조차 어서 차 문을 열고 나가서 또각또각 커리어우먼 놀이를 해야하는데 몸이 너무 무거워서 도통 움직여지지 않던 그날, 자동차 핸들을 꽉 쥔 채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친구도, 가족도 아닌 그저 상자 하나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평소 쇼핑을 한다고 해봐야, 신간도서나 문구용품 정도일 뿐인데, 고가든 저가이든, 신상이든 철지난 창고정리 아이템이든, 종류 불문 무엇이 되었든 '들뜸' 그 자체였다. 내 이름 석자가 또박또박 적힌 작은 박스 하나, 나에게 소속되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향해 온 무언가의 에너지를 갈망했던 것일까. 단순히 그 물건이 절실히 필요해서만은 아니었을 듯.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아남나, 매일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 세워야만 하는 조직, 그 치열하고 팍팍한 분위기 안에서 오로지 나만 바로보고 최대한 빠르게 도착하려 애쓴 그 물건의 기운이 좋았던 거지. 최대한 얌전한 모양새로 월요일 오전 내내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 아이의 든든하고도 충직한 자태가 예뻐보였던 거지. 실제로 택배를 거머쥔 채 출근한 월요일은 우연인지, 스스로에 대한 쇠뇌인지, 그나마 '버틸 만'했다. 읽고 싶어서 몇 날 며칠 찜만 해두다가 드디어 그 책을 사야겠다고 결심하고 이내 내 손 안에 실물을 들이게 된 그 '월요일'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지나갔다. 완독하지 못해도 종종 피로감이 몰려들 때 한 장 한 장 살짝 몇 문장을 훔쳐보며 하루를 버텼다. 책도 좋았지만 책을 슬쩍 흘깃 눈치껏 열어보며 업무 시간 틈새를 살뜰히 메워나가는 내 에너지도 마음에 들었다.



택배가 온 날은 나도 모르게 세상이 로맨틱해지던 걸
깜짝 찾아온 그 무언가의 매력. 열어보기까지 최대한 천천히 누리며.


다른날보다도 유독 당충전이 절실한 월요일, 우연히 친구가 보내 준 저칼로리 간식택배는 그 어떤 택배보다 고맙고 귀한 선물. 기대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도착한 그날은 서프라이즈의 정성에 취해서 오후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춤추듯이 하루를 즐겼던 기억이 난다. 기대하고 있던, 예정된 주문 택배에도 제 시간에 오기만 해준다면 마냥 들뜰진대, 하물며 서프라이즈 선물 택배는 오죽할까. 내가 전혀 인지 하고 있지 못했던 시간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정성을 들여 주소를 적고 박스 안에 정성을 다해 물건을 눕히고 안전하게 뽁뽁이를 덧대고 있었다. 깨지지 말라고 혹은 뒤틀리지 말라고 마음을 다해 휘감는 충격완화용 무수히 많은 동그라미들 안에는 송신자의 마음이 올곧이 원상태 그대로 잘 담겨있었. 이 택배, 짧은 시간안에 무사히 잘 도착하라고 쓰다듬고 테이핑한 그들의 손길도 손상되지 않고 따뜻한 온도가 되어 그대로 상자 안에 스며들어있다. 테이프를 뜯어내고 직사각형의 상자를 분해하는 매초마다 이미 하루치 칼로리를 몸안에 넉넉히 채워넣은 기분. 그만큼 넉넉하고 배부르다. 택배의 매력, 택배의 마법.


낯선 땅에서 받아보는 익숙한 글씨. 그리움과 묘한 흥이 적절히 섞여서 최고의 오후를 요리해내곤 한다.



낯선 땅에서 마주한 엄마의 택배도 그러했다. 한국에서의 00 로켓배송이나 0마켓 스마일택배와 크게 다를 게 없지 않나.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저곳의 건물입구를 가득 채운 아마존 박스를 발견하곤 하는 여기.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유독 튀는 한국 글씨의 상자를 마주했을 때의 마음이란! 어디서 많이보던 '우체국' 글씨 상자인데 이미 두 개월을 이곳에서 살아 냈다고 그 대단한 적응력이 순간 무섭다. 한국판 우체국의 택배상자가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이 찾아왔다니.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든, 날 향해 오고 있는 줄 몰랐던 택배가 애써서 타국까지 건너와줬다는 사실 그자체가 감격이요, 위안이었다. 최대한 천천히 상자을 분해했다. 빨리 열려고 할수록 그 한껏 들떠있는 심리까지 열린 틈새로 순식간에 증발될어 버릴까봐 아까웠던 거겠지. 늘 모든지 급했던 내가 손을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직장인 시절 월요일 택배가 도착하기만 하면 한껏 낮아져 있던 활기가 하이퍼 상태를 향해 솟구치곤 했듯이 마찬가지였다. 엔도르핀이 차근차근 계단을 밟고 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순간. 택배의 마법이란, 회사원일 때든, 퇴사했을 때든, 한국에서든, 타국에서든 마음 다해 날 흥분의 세계로 이끈다. "얼굴펴요. 내가 왔잖아요!"


그어떤 달콤이들보다도 찐한 당충전, 이미 오늘 칼로리를 다 채운 것만 같은 배부름.
세상 그어떤 달달구리들이 날 유혹한다해도 택배 상자 너만큼 중독적일 수 있을까. 받고 또 받고싶은 너.


엄마의 손길이 꼼꼼하게 담긴 한국판 간식 택배. 훨씬 더 화려하고 다양한 당충전거리들이 미국 여기저기 널려있다고 해도 이 작은 상자 안에 담긴 아이들만큼이나 달콤할 수는 없겠지. 한인마트에 가서 최대한 비슷한 먹거리를 찾아 부엌을 채워둔다고 해도 이만큼 배부르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딸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고르는 손길에서 이미 슈가파우더를 능가하는 당이 '엄마사랑' 속에 실렸고, 내 딸을 위한 택배 최대한 빨리 도착하라고 서두른 엄마의 몸짓은 (꽤나 높은 EMS 택배비용 속에 담겨) 그 엄마사랑의 농도를 한껏 짙게 높였으므로. 미국에서조차 칼로리 관리를 한답시고 저녁 늦은 시간에는 철저히 금식을 하리라 다짐했던 나인데 이 '엄마사랑' 깜짝 택배는 굳은 결심마저 휘휘 헐겁게 풀어내고야 만다. 이것저것 맛을 보고, 먹고남은 과자 껍데기들이 바닥에 나뒹구는 풍경을 마주하고서야, 택배상자를 다시 한켠에 가지런히 덮어둘 수 있었다. 왠지 이렇게 도착한 상자는 좀처럼 잘 버려지지가 않는다. 처음 마주했을 때, 약간의 놀라움이 양념된 '설렘'의 마음을 쉽게 떠나보내기가 싫어서인가. 빈 상자, 혹은 내용물이 절반이 되어버린 조금은 허전한 모양새만이라도 자꾸 쳐다보게 된다. 그만큼 귀하고 귀한 충전제.



월요일이 아닌데도 월요일 같은 날이었다. 한국에서부터 열심히 날아온 '택배' 덕분에 노곤노곤해져가고 있던 그 어느날의 오후풍경에 '활기'가 자동 실렸던 날. 몇 달 전, 몇 해 전의 월요일 같았다. 월요병을 이겨내보겠노라고 애써 짜낸 묘안으로 출근길 택배를 맞춰받곤 했던 그 시절의 '들뜸'이 매우 닮았다. 핸들을 만지작 거리며 회사를 향해 한걸음도 떼기 싫다고 마음으로만 외쳐대며 징징거림 최고조였던 그 어떤 월요일, 그나마 잔뜩 주문했던 책 택배가 도착한 덕분에 나홀로 소심하게 스트레스를 내리눌렀던... 그러니까 안좋았던 그 어느 날의 풍경이 택배하나로 나아졌던 그 오후 한 자락과 너무 닮아서 또한 월요일 같았다. 기다리지 않았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 깜짝스러운 상자의 등장에 마음이 좋아지는 건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마찬가지. 이쯤하면 택배, 피로회복제, 영양제 를 꾸준히 챙겨먹는 것만큼이나 똑똑한 성능을 지녔다고 하겠다. ㅇㅈ? ㅇㅇㅈ (인정? 응.인정)



때때로 그 비용은 만만치 않아서 그 부담스러운 무게가 날 짓누르지만

조만간 우체국에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보내는 데 들여야 하는 서비스 비용, 쉽게 말해 '택배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특히나 미국에서 한국, 한국에서 미국은 선물 비용보다 택배 비용이 더 비쌌던 적이 꽤나 있어서) 바보같은 짓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뭐 그렇게 따지고 보자면 세상 어디 현명하게만 사는 순간이 얼마나 되던가. 배보다 배꼽이 더 클 때가 있을 지라도, 택배가 가져다 주는 설렘과 흥분치를 고려하건대 그 자체로도 충분히 귀한 몸값을 자랑할 만함은 분명하니까. 택배가 스치는 공간들 한 지점 한 지점마다 송신자의 마음이 그 길을 지나고, 수신자에게 도착하기까지 그 긴 여정 속에 애정을 눌러담아 흔적으로 남긴다.



그 누구나의 마음의 비슷할 거라면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는 방법으로 택배를 선택해봐야겠다. 그 사람 받는 순간, 꽤나 설렜으면 좋겠다고. 좋아서 그 날 하루만큼은 방방 들떴으면 좋겠다고. 월요병 극복하려고 월요일 택배를 선택한 그 누군가의 월요일 같았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상상해 본다. 너무나 짜증섞여서 누구랑도 대화하고 싶지 않은 날, 몸도 마음도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어떤 이의 안 좋은 날이 살금살금 부드러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상자하나가 그렇게 하루의 촉감을 다르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겠다. 내가 그러했듯이. 아무도 없어서 세상에 나 홀로 내던져 진 것 같은 추운 날 역시, 택배의 마법덕분에 누군가의 썰렁한 마음 속 온도가 휙 하고 올라가 버렸으면 좋겠다. 이쯤하면 택배의 마법에 너무 취했나. 택배 애정자의 마지막 한 마디로 마무리. 택배, 그 효과는 다시말해 ㅇㄱㄹㅇ ㅂㅂㅂㄱ (이거레알, 반박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