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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미 May 05. 2021

욕심많은, 한유선

READ YOU 인터뷰 #4


한 사람의 인생은 곧 한 권의 책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책을 한 권 읽는 것과 같다.
우리와 비슷한,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위로, 용기를 나누고 싶다.




READ YOU : Interview
#4. 한 유 선


한유선씨의 행복은 쟁취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 경쟁상대는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꿈꾸고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 한없이 분투한다. 자신의 욕심을 목표로 치환하고 그것을 달성해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고.
누구나 욕심이 있다. 욕심을 어떤 방향으로 풀어내고 채울 것인가, 그것이 중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자신만의 방법을 깨달은 한유선씨의 욕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ㅣ간단하게 자기소개 한 번 해주세요.


신문방송학과를 진학해 기자가 되기 위한 정석적인 루트를 타고 있다가, 워킹홀리데이(이하 워홀) 비자를 받아 호주로 가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어요. 호주에서 식당에서 일하면서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너 그거(요리)못 해', '너 여자라서 힘들어'라는 얘기를 계속 하니까 열 받아서 '한 번 해봐야지'라는 마음으로 과감하게 요리에 입문했어요. 막상 해보니까 전공에서 컨텐츠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더라고요. 지금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신문방송학과와 요리사이에서 약간은 갈팡질팡한 상태지만 요리쪽으로 도전해보자 생각하는 중입니다. 현재는 호주에서 요리 대학을 다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에서 사이버강의를 듣고 있어요.

여자가 요리하기가 힘든가요?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무거운 쌀도 들어야 하고, ‘웍’질 하는 것도 힘들고. 웍이 가벼운 게 아니라서 근육이나 관절이 받쳐주지 않으면 몸이 망가져요. 그래서 호주에서 일 하고 있던 중식당 사장님께 요리를 하겠다고 처음으로 말씀드렸을 때 '너는 여자라서 안 된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체력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체력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20kg, 30kg까지는 거뜬히 들 수 있어요. 그런데도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오히려 자극제가 된 것 같아요. '왜 못 해?'라고 생각했어요. 자존심이 상해서 그때부터 조깅을 시작했어요. 기초 체력을 늘리는 데에는 조깅만한 게 없다고 하셔서. 그렇게 한 달 정도 했을 때, 쉐어하우스에 살던 마스터께서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그 분이 '너 진짜 요리하고 싶으면 우리 가게에서 해 볼래?',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배워 볼래?'라고 하셔서 알겠다하고 그때부터 부엌에서 일하기 시작했죠.



ㅣ워홀을 떠나야겠다고 마음 먹은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한 번쯤은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어요. 마침 휴학하기 딱 좋은 3학년의 끝이기도 했고. 어디를 갈지 고민하고 있는데 친구가 호주를 가겠다고 해서 저도 같이 가기로 했어요. 목적을 굳이 얘기하자면 언론고시를 준비하기 위한 돈을 모아오자는 것이었어요. 아마 계속 모았으면 천 만원 넘게 모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호주에 살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준비를 하다보니까 계속 쓰게 되고, 그러다보니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300만원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ㅣ로망처럼 실제로 해외에서 살아보니 어땠나요?

일단 모든 일처리가 느리다는 것이 답답했어요. 그렇지만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인들은 특성상 항상 빨리빨리, 많이많이, 열심히. 호주에서는 그렇게 바빠도 한국보다는 여유로웠어요. 정서적으로 말이에요. 그리고 그런 경험이 신기했어요. 내가 벌어 내 한 몸 건사한다는 것이요. 스물 둘, 셋에 경험하기 힘든거니까. 물론 한국에서 만큼이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서 하나하나 몸으로 부딪쳐야하는 건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신기했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나 평생 이렇게 일하면서 살아야 하는구나.' 한국에서 지낼 때는 힘들면 잠시 쉴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비빌 언덕'이 있는데 여기는 없으니까. 내가 일을 하지 않는 순간 바로 굶어 죽게 되는 거예요.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거죠.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부모님도 이렇게 살았나, 의문이 들어서 주변에 아는 언니오빠들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살아야 한대요. 항상 그렇게 일하면서 살아야 한대요. 거기에서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했던 적이 있어요.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 받아들였죠.(웃음) 평생 일하면서 살아야 하는구나. 그땐 '어떻게 그렇게 살아?'였다가 지금은 '응, 그렇게 살아야지. 뭐 어떡해, 인생 그런 거지'하고 받아들였어요. 이건 시간이 해결해 준 것 같아요. 나이가 쌓이면서 받아들이고, 무뎌지고. 그리고 힘들 때 도와줬던 친구들도 있고, 부모님도 있으니까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어?'라는 여유가 생겼어요.


"일단 4년 채워보자. 한 번 살아보자."


ㅣ 호주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언제였나요?

정확하게 얘기하면 살고 싶다라기 보다는, 내가 했던 말을 지켜야겠다. 여기서 요리할게요, 배울게요, 최소 2년은 머물겠다고 일할 때 약속한 게 있었어요. 결국 지키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나는 내가 그 말을 뱉었던 걸 기억하니까 그 말을 지키러 돌아가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 그리고 아직 신문방송학과라는 전공을 선택할지, 요리라는 새로운 길을 갈지 정하지 않았어요. 전공은 4년 동안 했는데 요리는 안 해봤잖아요. 그러면 비교 선상에 둘 수 없는 거죠. 요리도 4년은 해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4년 뒤에 또 다른 길이 생길지 알 수 없는 거니까. 일단 4년을 채워보자. 한번 살아보자. 제대로 유학 생활을 해보자 하게 된거죠.

ㅣ워홀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인간사를 배웠다고 할까요.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과 같이 일할 때 제 모습이 어떤지를 알게 되었어요. 사장님 성향이 약간 군대스타일이었어요. 저는 제가 납득이 되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설명을 해줘야 해요. 그렇게 좋은 직원은 아니었죠.(웃음) 그래서 갈등도 있었고, 화해도 하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한국에서도 깨달았을 것 같기도 한데, 해외에서 겪어서 더 극적으로 와닿았던 것 같아요.

ㅣ워홀 다녀오길 잘 한 것 같나요?

네. 후회하진 않아요. 그 이후로 시야가 트인 게 느껴져요. 해외에서 살아보고, 뭔가를 개척해보고, 사람들과 부딪치며 관계를 새로 만들어보고. 이런 것들을 안정된 곳에서 하는 것과 아무 기반이 없는 곳에서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해본다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ㅣ워홀을 추천한다면 어떤 사람들에게 하고 싶으세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사람도 추천하고, 자기만의 틀이 큰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어요. 부산 사는 사람 중에 부산을 벗어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게 많아요.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알을 한번 깨면 탁 트이는 경험을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더 폐쇄적인 사람들에게 더 추천하고 싶어요. 영어실력이 안 늘고, 돈을 많이 못 벌어도 괜찮아요. 해외에서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흔한 건 아니니까.

ㅣ이제 현재 이야기를 해볼게요. 요리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호주 QTHC 대학에 입학해서 요리를 배우고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호주 입국이 제한돼서 한국에서 줌으로 화상강의를 하고 있어요. 지금은 한 학기가 끝나서 잠시 쉬는 기간이에요.

ㅣ요리를 어떻게 화상으로 배우나요? 상상이 잘 안 가는데.

이론이 필요한 수업 위주로 했어요. 경영, 접대, 위생안전 같은 거요. 특히 안전이 정말정말 중요하거든요. 또 호주는 RSA라는 주류서빙 자격증이 있어요. 이게 없으면 술을 팔 수 없어요. 이런 이론들을 배웠어요. 실습은 당연히 못하죠. 칼질하는 영상을 몇 번 보여주긴 했는데... 글로 요리를 익히는 것과 몸으로 익히는 건 완전히 달라요. 예를 들어 소스의 농도가 이 정도라고 배운다고 해도 내가 만들 수 없어요. 직접 먹어봐야 하는데 집에서 혼자 해본다고 소스 맛이 맞는지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학교에서 저한테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쉴지, 아니면 온라인으로 다음 학기를 진행할지 물어봤어요. 몇 번 안되는 이론수업을 앞으로 당겨서 다 듣고, 추후에 호주에 가게 되면 실습수업을 몰아서 듣는 거죠. 전 후자를 선택했어요. 그리고 언제 호주에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한국에서 운동하고 필요한 자격증 같은 것 따고, 돈도 벌면서 준비를 하려고요.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한유선씨의 수업 노트필기


ㅣ학교에 가게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있나요?

유니폼을 수령하고 싶어요. 학교 유니폼이 있거든요? 셰프복도 있고 교복도 따로 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년동안 교복이나 과잠도 입지 않았어요. 유니폼에 대한 기대가 있어요. 그리고 사이즈에 대한 걱정도. 내가 주문한 이 사이즈가 제대로 맞을까. 호주랑 여기랑 사이즈가 조금 다르니까. 최대한 맞춰서 주문하기 했는데.
그리고 칼질을 제일 먼저 배우고 싶어요. 요리는 칼질이 기본이에요. 기본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식당에서 칼질을 하긴 했지만 그건 음식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칼질이었기 때문에, 정석을 배우고 싶어요.

ㅣ요리가 즐거운가요?

그럼요. 일단 요리하는 행위 자체가 너무 즐거워요. 우리가 생활하면서 직접적으로 바로 결과를 볼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보통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결과가 나오는데, 요리는 엄청 직접적이에요. 당장 내가 칼질을 하면 재료가 직접 썰려요. 바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죠. 내가 이 양념을 넣고 안 넣고에 따라서 맛이 바로바로 달라지는 것도 그래요. 그리고 내가 만든 요리에 대한 상대방의 리액션을 보는 게 좋아요. 저는 애정표현을 주로 요리로 많이 하거든요. 내 애정표현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졌을 때 기쁘잖아요. 선물 같은 거죠. 요리는 관계성을 짙어지게 하기에 정말 좋은 행위예요. 그래서 친한 사람들에게 그런 장을 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ㅣ요리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아까도 언급하긴 했지만 저의 애정표현이죠. 올해 나의 가치관을 정립해보자고 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 가치관은 '인애(仁愛)'예요. 결국은 사람이랑 더불어 살아야 되고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요. 세상에 혐오가 많지만 저는 그렇게 살고싶지 않아요. 요리는 사람들을 대하는 저의 애정표현이에요.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내 지인들과 나의 고객이 될 수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요. 그리고 저는 유명해지고 싶어요. 스스로의 욕심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면서 살고 싶어요. 거기에 있어 정말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요리라고 생각해요.




ㅣ공통 질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꿈꾸고 목표하고 쟁취해내는 삶. 여기서 포인트가 쟁취인 거죠.(웃음) 저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에요. 욕심도 많은 애고. 뭔가를 얻어내는 게 즐거운 거예요. 제가 얼마전에 봤던 구절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인생이 계단이라고 치면, 계단을 몇 개 올라가고 '난 여기가 만족스러워, 이 높이에서 살고 싶어'라고 하면서 멈춰서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있고, '난 더 올라가겠어'라고 하면서 멈추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후자인 것 같아요. 계단을 많이 올라가고 싶고, 뭔가 더 많이 하고 싶은 사람. 그래서 저는 쟁취해내는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닌가 싶어요. 

ㅣ앞으로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일단 호주를 가서 학교를 졸업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 그리고 컨텐츠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을지 음식 만드는 걸 업으로 삼을지 정해보자. 컨텐츠는 글이 될 수도 있고, 미디어가 될 수도 있고, sns로 할 수도 있겠죠? 최종적인 목표는 널리널리 유명세를 떨치고 싶어요. 그렇게 생긴 나의 영향력을 좋게 쓰고 싶어요.

ㅣ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라디오요. 성시경의 음악도시. 정식 제목은 <FM 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예요. 그게 신문방송학과를 가게 한 결정적인 계기였거든요. 내가 사연이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사연을 쓰면 실질적인 물건으로 되돌아와요.(웃음) 일단 내가 좋아하는 DJ가 내 이름을 불러줘요. 1차 성취죠. 그리고 2-3개월이 지나면 상품이 와요. 그게 2차 성취예요.(웃음) 쌀, 신발교환권, 에너지바, 커피포트, 치킨교환권, 문화상품권 이런 것들이 오니까. 그래서 성시경에 한창 심취해있을 때 아빠가 성시경이 밥 먹여주냐 하길래 아빠가 지금 먹고 있는 쌀이 그 성시경이 준 쌀이라고 말할 정도였어요.(웃음)

ㅣ그 때 썼던 사연 중에 기억에 남는 사연 있나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고등학교 때 한창 연애를 하다가 헤어질까 말까 고민 중이라고 보낸 사연이요.(웃음) 성시경이 항상 얘기하거든요. 고2 겨울방학이 제일 중요하다고. 그때 열심히 하면 엎을 수 있다고. 그 때 제가 고2였어요. 좀 있으면 고3이라 공부를 해야하는데 어찌할지 모르겠다고 보냈더니, 단호하게 헤어지라고.(웃음) 제 이름을 목놓아 부르면서 '유선아, 그러면 안돼. 고2 겨울방학이 제일 중요한데 니가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너한테만 얘기할게' 이러더라고요. 그걸 듣고 '오빠가 공부하라 그랬으니까 헤어지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 갔죠. 성시경이 젓가락질 고치라 그래서 젓가락질도 고쳤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 장르도 그 시절 들었던 음악들이에요.


ㅣ마지막 질문입니다.
   '나'라는 사람을 책으로 쓴다면, 그 책의 첫 문장을 뭐라고 쓸 것 같으세요?


"매 끼니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 사람이 있다."







오랜 기간 한 가지 일을 하다 내려놓을 때면, 그 기간동안 들인 나의 시간과 노력도 내려놓는 것 같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 같고, 여태까지 헛수고한 것 같다. 이러한 걱정은 두려움이 된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기에 다시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내려놓는 법을 알아야 한다.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그 동안의 나의 노력과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나의 노력과 시간은 차곡차곡 쌓일 것이고 이것들이 모여 나를 완성해 나갈 것이다. 시간과 노력은 퍼즐과 같다. 한 부분을 잡고 맞추다 더이상 나아갈 수 없을 때가 되면 그것을 잠시 옆으로 밀어두고 새 부분을 맞추어 나간다. 일련의 과정들을 반복하다보면 옆에 밀춰두었던 부분들이 어느 순간 서로 들어맞기 시작한다. 퍼즐이 완성되어 간다. 그렇게 수십번의 시작을 반복하는 것. 그것이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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